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데뷔작 '마션'으로 단번에 가장 유명한 SF 작가 중 하나가 된 앤디 위어의 신작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이름인 '아르테미스'. 제목 그대로 이번엔 화성이 아니라 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마션'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션'의 마크 와트니처럼 아무도 없는 황량한 달에서 로빈슨크루소처럼 살아남는 이야기라는 말은 아니에요. 이야기 속의 달은 이미 인류에게 개발 될대로 개발되어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살고 있기 때문이죠. 구체적인 연대가 소설에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70년 후 쯤으로 추정됩니다(2080년 쯤. 앤디 위어는 한 인터뷰에서 인류가 2060년에 달에 도시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라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인공이 마크처럼 힘들다고 하냐고요? 그건 이 달이 아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철저하게 가진 돈에 따라서 생활 수준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의 삶이 더 극단적으로 되어버린 곳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곳이 바로 '아르테미스'의 십대에다 아랍계(국적은 '사우디 아라비아'. 아버지는 용접공인데 지금 한창 메카를 향해 제대로 기도할 수 있도록 자전축까지 고려해 정확하게 기도할 방향을 잡아주는 기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주인공 재즈가 살아가는 곳입니다.


표지 디자인은 아무래도 전에 나온 '마션'과 통일성을 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아르테미스'란 달에 만들어진 최초이자 유일한 도시의 이름입니다. 다섯 개의 반구로 된 돔으로 형성된 도시인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지요. 그 도시는 가지고 있는 돈에 따라 엄격하게 위계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여기에 대해서 앤디 위어는 달 이주와 거주가 국가 주도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요즘 한창 떠오르는 민간 우주산업처럼 상업적인 이익을 바라는 기업 주도로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로 달에 만들어진 도시 사회는 자본 중심으로 가게 될 거라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재즈는 가장 밑바닥 계층으로 흙수저 중에서도 발로 밟아 짓이기까지 한 흙수저라 할 수 있습니다. 흙수저들이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라고 할 만한  길드조차 들어가지 못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부자들이 원하는 밀수나 중개해 가면서 근근히 먹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오늘만 바라보고 살고 있으니 '마션'의 마크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죠. 생존률이 희박한 무인도는 저 바다 건너편에만 있지 않습니다. 내일 살아남을 길이 막막한 곳이라면 어디나 무인도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세상이라면 그런 무인도를 가급적 줄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세상도, 이야기 속의 아르테미스도 그런 덴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까 하는 것에만 골몰할 뿐.


'아르테미스'의 모습입니다.


 어쨌든 재즈는 늘 자신에게 밀수를 의뢰하는 최우수 고객이자 '아르테미스'의 최상위 부유층 트론이 한 가지 제안을 받습니다. 자신이 알루미늄 사업에 진출하려 하는데 기존 기업이 도시에 산소를 공급하는 대가로 전기를 공짜로 무한정 쓰고 있어 경쟁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산소 공급을 중단시키기 위해 알루미늄을 채취하는 기계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일을 재즈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불법적인 일을 하다 걸리면 지구로 바로 추방되기 때문에 하지 않으려 했지만 평생의 목표인 4만 슬러그(달에서 통용되는 화폐 단위입니다. 이 돈으로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구에서 달로 가져올 수 있는 지를 나타낸다고 합니다.)를 훨씬 뛰어넘는 백만 슬러그를 준다고 하니 돈 없어서 쩔쩔매는 재즈는 결국 수락하고 맙니다.


 이렇게 '마션'이 서바이벌에 치중하고 있다면, '아르테미스'는 케이퍼 장르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케이퍼 장르가 대부분 그렇듯이, 사건이 결코 훔치고 망가뜨리는 것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죠. 보통은 주인공이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음모와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물론 '아르테미스'도 그러합니다. 제의 받은 것을 완전하게 완수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속한 돈을 받기 위해 의뢰한 트론을 찾아갔는데, 거기서 그만 재즈는 트론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을 본 것입니다. 재즈는 그렇게 받아야 할 돈을 날린데다 수확기를 부순 것이 자신이라는 걸 눈치챈 경찰에게서 추적까지 받게 됩니다. 10년간 고군분투 하면서 간신히 지탱하면서 쌓아올라왔던 자신의 삶이 하루 아침에 깡그리 붕괴될 지도 모를 위기에 봉착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알고 보니 트론은 암살된 것이었고 그것도 재즈가 했던 일 때문에 죽은 것이었습니다. 배후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 살의는 재즈를 향합니다. 지구 중력의 6분의 1 밖에 안되어 누구나 지구보다 가볍게 살 수 있는 그 곳에서 오히려 지구보다 60배 무거운 중력의 삶을 혼자서 버텨가야 하는 재즈는 과연 이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마크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듯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앤디 위어의 소설적인 재미는 이야기보다 행성이 가진 아주 현실적인 자연 조건과 실제하는 온갖 물리법칙과 과학적인 지식이나 기술들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융합되는지 지켜보는 데 있는 것이 더 크죠. SF의 매력이란 바로 그런 것이죠. 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이 작품, '아르테미스'는 그런 재미를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하고 싶네요. 물론 '마션'만큼은 아니었습니다만. 뭐, 이야기 자체가 '마션'과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 그런 건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하드SF 적인 면모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저는 작가가 재즈에게 도시를 벗어나 화성처럼 황량한 달의 벌판에서 활약할 기회를 주는 케이퍼 장르를 취한 게 아닐까 생각되네요. 아무래도 하드SF의 특성인 아주 현실적인 자연 조건과 물리 법칙을 리얼하게 구현하고 그것을 이야기 속에 무리없이 섞어 놓으려면 케이퍼 장르처럼 무언가를 노리고 덤벼드는 것만큼 좋은 것도 또 없으니까요. '미션 임파서블'이나 '오션스 일레븐'처럼 말이죠. 이 작품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는데, 앤디 위어는 아무래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그 조건의 제약을 최대한 받으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마션'도, '아르테미스'도 결국은 그런 이야기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앤디 위어의 이야기가 널리 환영받으며 읽히는지도 모르겠네요. 무인도로 가득한 대양처럼 세계 어디든 '헬조선'인 요즘이니까요. 밑바닥도 모자라 지하까지 내려가는 척박한 환경 속의 삶이지만 그래도 삶이 야박하지 않아서 뚫고 나올 구멍 하나 정도는 슬쩍 감춰놓았으니 포기하지마라는 응원일까요? 뭔가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이토록 무인도가 많은 세상, 자신의 작품이라도 뗏목이 되어서 그걸 줄여주고 싶다는. 네, 너무 수사적인 거 인정합니다. 요즘 제 상황이 어느 정도는 무인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 말과 아무 상관없이 '아르테미스'는 앤디 위어의 전작을 좋아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손에 들어도 좋을 작품입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문득 '그래비티'의 스릴러 버전 스타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하찮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후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