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우시 왕 1세 네버랜드 클래식 50
야누쉬 코르착 지음, 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이지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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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였더라?

 어쨌든 아주 오래 전에 친구와 어릴 때 읽었던 책들에 대해 얘기하다 친구가 '혹시 어린 애가 왕이 되는 이야기 읽어봤어? 나 그거 읽은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났다. 왕이 되어 아이들은 어른 일을 하고 어른은 학교로 가서 공부하고 시험치는 이야기였는데, 아이라면 한번쯤 바랐던 일이 이야기에 그대로 나와있어 꽤 재밌게 읽었었다. 그러나 나도 이야기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 후, 시간이 제법 흘러 드디어 이야기 제목을 알게 되었다. 바로 '마치우시 왕 1세'였다. 작가는 아동 인권 보호를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주장하고 평생을 바쳐 활동한, 폴란드 국적의 야누쉬 코르착. 요즘 뜨고 있는 비고츠키와도 입장이 비슷한 지라 아동 발달을 공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하다. 제목을 알게 된 건, 야누쉬 코르착의 삶을 다룬 영화 때문이었다. '재와 다이아몬드'와 '대리석 남자'로 유명한 안제이 바이다가 감독한 '코르착'이 바로 그 영화다. 



 1878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난 코르착(원래 이름은 '헨릭 골드슈미트'로 '야누쉬 코르착'은 공모전에 참여하려고 만든 필명이라고 한다.)은 의사와 작가로 살아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을 계기로 아동 인권과 복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참전 중에 전쟁 고아들의 비참한 모습을 너무나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 결심 그대로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무려 30년 동안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을 헌신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1939년, 커다란 위기가 닥쳐온다. 독일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한 것이다. 유태인인 코르착은 곧 체포되어 게토에 갇힌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코르착은 아이 돌보는 일을 쉬지 않았다. 이미 작가로, 아동 인권 운동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했기에 거기서 탈출하라고 여권과 은신처까지 제공하는 등 실제적으로 많은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으나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버릴 수 없다면서 그 모두를 거부하고 결국 아이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특히 그가 수용소로 끌려갈 때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그 때 코르착은 자신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아이들이 공포와 불안에 젖을까봐 자신이 선두에 서서 소풍을 간다고 하면서 재밌게 행진하며 걸어갔다고 한다. 그 마지막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줘,  지금도 바르샤바에 가면 그 모습이 동상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유명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바로 여기에 영감을 얻었다. 코르착은 그의 신념을 오롯이 실천한 사람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둘도 없는 귀감이다. '마치우시 왕 1세'는 그런 그의 깨달음과 철학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아홉 살이라는 왕위에 오른 마치우시는 모든 게 불안과 초조의 가시밭길이다. 국무총리나 장관처럼 자신을 보좌해야 할 관리들은 하나같이 '코흘리개'라고 무시만 할 뿐,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도무지 알려주려 하지 않는다. 결국 마치우시는 혼자 힘으로 왕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아가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왕국 바깥에서 우연히 사귀게 된 친구, 펠렉에게서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바보라는 말을 듣고 왕으로써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따라간 그 전쟁에서 마치우시는 아무도 자신을 왕으로 봐주지 않는 가운데 보통의 아이가 되어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이며 어리석은 일인지 톡톡히 깨닫는다. 자신의 활약으로 세 나라와의 전쟁에 승리를 거둔 마치우시는 자신과 싸웠던 나라 중 '슬픈 왕'의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듣고 전쟁 같은 어른들의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아이들 중심의 체제로 나라를 개혁할 것을 마음 먹는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건 아무 위험한 일이에요. 그때야말로, 왕이 왜 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지요."

 마치우시는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왕이 왜 있는데요?"

 "왕은 왕관이나 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떻게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개혁을 해야만 합니다."(p. 142)



 그것을 위해 마치우시는 슬픈 왕의 나라를 본받아 아이들이 참여하는 국회도 만드는 등 이전과 다른 체제로 나아가는데, 그러나 뜻대로 쉽게 되진 않는다. 민주적인 운영을 위해 만든 국회가 다양한 이해관계와 잦은 토론 때문에 자기 정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거기다 이웃 나라의 스파이까지 나타나 펠렉을 교묘하게 꼬드기는 바람에 펠렉의 주도로 국회는 결국 어른들을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아이들은 어른의 직책을 맡게 되는 법을 제정하고 만다. 그러나 어른의 일을 하게 된 아이들의 무책임함과 장난과 직업을 구별하지 못하는 행태 때문에 마치우시의 나라는 일대 혼란에 빠지고 그 틈을 노려 일전에 패배한 나라들이 다시 침공을 시작한다. 마치우시는 다시 찾아온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아이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보는 공상이다. 이런 경우라면 보통 아이들이 나라를 맡아 다스려도 아무 문제 없으며 오히려 어른이 다스릴 때보다 더 행복해졌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마치우시 왕 1세'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무책임과 방종 속에서 모처럼 아이 중심의 나라가 몰락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서 야누쉬 코르착의 아이 교육에 대한 철학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 철학은 그대로 유즘 꽤 인기를 얻고 있는 비고츠키의 것과 비슷하다. 오래도록 한국 아동 교육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피아제는 교육에 있어 아주 개인주의적, 주관주의적 관점이었다. 그러나 야누쉬 코르착과 비고츠키는 상호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특히 어른과 아이의 상호 관계다. 아이 교육에 있어 피아제에선 간과 되었던 어른의 적절한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면이 '마치우시 왕 1세'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이들만의 나라가 어른들이 배제되자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지만 이외에도 슬픈 왕과 마치우시의 관계 역시 이 철학을 나타내고 있다. '슬픈 왕'은 현명한 어른의 이성적인 가르침은 아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존재다. 어쩌면 당시 아이 교육에 대해 완전 무관심했던 어른들이 아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도록 각성시키려 이렇게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른 뜻대로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자기 주도를 충분히 인정한 상태에서 그가 보다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이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야누쉬 코르착의 말은 귀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추억 속의 책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나 반가웠다. 무엇보다 폴란드 어를 전공한 이의 번역이어서 작품을 더욱 제대로 즐긴듯한 느낌이다. 아동 인권과 교육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야누쉬 코르착의 존재를 논외로 하더라도 작품 자체만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마치우시 왕1세' 이야기의 가장 처음엔 이렇게 작가의 아이일 적 모습이 사진으로 나와있다. 마치우시 왕의 이야기를 쓸 때의 사진보다 정말로 왕이 되고 싶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른 책은 처음부터 불완전하고 덜 현명했던 어린시절은 없었다는 듯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런 것 보다는 이렇게 아이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이 그것을 보며 자신도 이 작가처럼 장관이나 여행가 혹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사소한 것마저 신경쓰는 데서 야누쉬 코르착의 인품이 스며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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