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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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충격이란 말이 결코 아깝지 않은 작품을 하나 만났습니다. 아, 이런 둔중한 충격은 실로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 이후 처음이네요. 놀라운 반전입니다. 예언 하나 할게요. 분명 두 번 읽게 되실 거고 두 번째 읽으실 때는 처음보다 훨씬 더 눈을 크게 뜨고 읽게 되실 겁니다.


 이런 이런, 충격의 여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탓에 어떤 작품인지 소개도 안 드렸네요. 웬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 뜬금없음을 잠재우기 위해 얼른 소개하도록 할게요. 일본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의 '성모'란 작품입니다. 조성모의 성모가 아니구요. 흔히 기독교에서 예수의 어머니를 부를 때 쓰는 말인 성스러운 어머니를 뜻하는 성모(聖母)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이야기도 아니에요. 미스터리 소설이랍니다. 그것도 4살 짜리 유아가 목이 졸려 살해되고 성기마저 제거된 채 무참히 버려지는 사건이 등장하는, 끔찍하며 엽기적인 소재의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죠.



 그런데 왜 제목이 '성모'냐구요? 주인공이 어머니이기때문 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하도 생리가 오지 않자 검진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에 걸리면 난포가 여러 개 만들어지고 일정 크기까지 자라지만 결코 배란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군요. 네, 아이를 낳기 힘든 몸이었던 겁니다. 그녀는 대학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는데, 그 남성 또한 외동 아들이라 자손이 귀해 시댁에서 은근히 압박이 들어옵니다. 그녀 역시 어머니가 되는 것을 신성하게 여겼기에 불임 시술도 여러 차례 받고 체외 수정도 시도합니다만 아이는 쉽게 찾아와주지 않습니다. 어렵게 자궁에 안착한 태아조차 두 번이나 유산하고 맙니다. 그토록 험난한 과정을 거쳤으니 간신히 얻게 된 딸 가오루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이겠습니까? 주인공 호나미는 가오루 앞에서 여러 차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그 맹세가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엽기적이고 끔찍한 유아 살해가 바로 호나미가 사는 동네에서 벌어졌기 때문이죠. 살해 대상이 가오루와 비슷한 나이인지라 호나미의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 열심히 수사를 하지만 그렇다고 호나미의 불안이 가셔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기껏 목격한 수상한 남자조차 별 혐의 없다고 풀어주는 경찰을 보면서 호나미는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잡아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이 호나미의 반대편에 마코토란 고등학생이 있습니다. 그는 검도부로 학교에선 1학년인 검도부원들을 가르치는 한편, 봉사의 의미로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에게 검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의 바르고 성적도 발군이며 외모 또한 아주 수려한지라 자기 학교 여학생 뿐만 아니라 이웃 학교 여학생에게마저 동경의 시선과 애정 고백을 받는 일이 허다합니다. 마코토의 그런 모습이 소설 초반부터 나오는데, 읽는데 '뭐, 이런 부러운 녀석이 다 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그러나 신은 공평합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마코토이지만 그 모든 장점을 아무 소용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크고 통제할 수 없는 어둠의 충동을 주었으니까요. 그 충동이 무엇인지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문맥상 능히 짐작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설은 전반부부터 대결 구도를 명확하게 깔아 놓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자, 호나미와 억누를 수 없는 충동 때문에 아이를 없애고자 하는 자, 마코토의 대결 구도인 것이죠. 거기에 살인범을 수사하는 다나자키와 사카구치 혼성 형사 콤비까지 비슷한 분량을 차지하며 끼어들기에 삼파전을 하듯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끝까지 내내 읽게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뒤집힙니다. 

 반전이 가져온 격동 속에서 손은 결말이 아니라 앞 페이지를 향해 재빨리 움직입니다. 내가 뭘 착각했고 뭘 놓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소설은 제법 읽어왔고 그래서 더이상 충격 받을 일도 없다고 자부했는데, 웬걸 그 자부가 얄팍한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마에 얼음을 대듯 선명하게 확인하게 되네요. 정녕 놀랍습니다. 아직도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다니.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두 번 읽었습니다. 더하여 제목처럼 모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지켜준다'는 것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분명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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