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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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런 예감이 들어."

 남편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훨씬 합리적이야. 그렇잖아, 우리도 왜 '가족'이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 없다고. 단체 미팅에서 만나 조건이 맞고 성격도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해 남매처럼 살고 있으니까."

취기가 올랐는지 남편은 혀 꼬인 소리로 말했다.

 "'가족'이라 명명한 존재가 남과 어떻게 다른지, 이제 아무도 설명하지 못해. 우리는 이미 그걸 잃어버린 거야." (p. 177)


 때로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사랑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무라탸 사야카의 새로운 작품, '소멸세계'는 바로 그런 세상을 그린다. 제목 그대로 남녀 사이의 사랑이 소멸된 세계를 말이다. 여기엔 더이상 개인의 쾌락을 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몸을 섞는 사랑은 그렇다. 부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세계에서 부부 관계란 오직 자녀의 양육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으로 성립되고 지속된다. 부부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동료나 협력 관계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 오직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결혼인 것이다. 진짜 사랑은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다른 데서 찾는다. 아니, 남편과 아내에서 사랑을 찾아서는 아니된다. 왜냐하면 이 곳의 부부란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친남매 같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남매끼리 사랑을 나누는 근친상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성교까지 하는 것은 변태 행위의 극치다. 지금 우리 시대의 상식인 부부 간 성교를 통해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이 세계에선 변태 중의 변태 행위인 것이다. 인공수정이 보편화 되어 육체간 성교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까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은 몸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섹스 해 본 적 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에 그는 놀란 듯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교미를 말하는 거죠? 애인은 있었지만, 그런 고풍스러운 행위는 해본 적이 없어요." (p. 119)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꼭 실제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이 시대 사랑의 대상 대부분은 환영의 존재들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고 모두들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해 준다. 오타쿠들 중엔 미연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들은 진짜 여자친구로 삼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연애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이런 세계에 살면 좋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소설의 주인공 여성 아마네도 그러하다. 그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사랑한다. 첫 경험이라고 할만한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타인의 눈엔 자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이 세계엔 자위와 사랑이 그렇게 구별 되지도 않으니 별 상관은 없다. 이렇게 '소멸 세계'가 그리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 비정상이 완전히 뒤바뀐 곳이다. 여기선 정상이 그 곳에선 비정상이며 그 곳에서 비정상이 여기선 정상이다. '소멸 세계'는 그를 통하여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것은 아마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엄마, 원시시대에는 다부다처제가 정상이었대. 섹스는 의식이고, 의식을 올리는 날이면 젊은이들이 모여서 집단 난교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어. 하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다들 정신이 나갔다고 하겠지? 엄마가 하는 행동이 바로 그거야. 시대가 바뀌었어. 정상의 기준도 바뀌었고, 고릿적 기준을 아직도 못 버리지 못하는 건 광기야.(p. 158)




 아마네는 태생부터 예외의 존재였다. 부부 간의 성교로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을 남에게 숨겨왔다. 그렇게 태어나게 만든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 낳은 건... 사랑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어. 태어났을 때부터 이 세상은 미쳐 돌아갔어. 나만은 정상이고 싶었지.(p. 158)


 그녀는 아마네에게 기억하라고 한다. 자신이 그렇게 해서 아마네의 몸에 '올바른 세계'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그것이 광기인 세상에서 아마네를 바로 잡아줄 것이라 단언한다. 그 때문일까? 아마네는 세상과 잘 섞이지 못한다. 아니, 세계의 보편적인 모습과 닮지 못한다. 고풍스럽거나 악취미가 되어버린 육체의 성교에 집착하며, 남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자신만의 아이에 집착한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는데, 그녀는 낡고 사라진 것에 집착한다. 마음은 그런 세계의 정상이 되고 싶은데, 되지 않는다. 그래서 괴로워한다. 세상과 점점 더 어긋나는 자신을. 그런 아마네에게 엄마는 말한다.

 "넌 원래 주변 영향을 잘 받았어. 지금도 세뇌된 것뿐이야. 엄마랑 같이 가자. 여기 보다는 원래 있던 세상이 훨씬 나아."

 아마네는 이렇게 항변한다.

 "엄마는 세뇌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세뇌되지 않은 뇌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해? 그럴 바에야 이 세상에 가장 적합한 광기로 미치는 게 훨씬 낫지?(p. 271)

 그녀는 엄마를 원망한다. 자기 육체의 근본에 정상이라는 것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비정상으로 살고 싶은데도 결국 정상에게 따라 잡혀 정상으로 살게 된다고. 그녀는 이렇게 절규한다.

 어떤 세상에 있어도 완벽하게 정상으로 존재하는 나를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광기가 뭔 줄 알아? 바로 정상이라는 거야. 안 그래?(p. 272)

 어떻게 보자면, 이 소설 '소멸 세계'는 히스테리의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의 억압에 짓눌리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써의 히스테리. 그것은 세상이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독립적이며 고유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고자 하는 투쟁인 것이다. 이는 아마네가 소설 속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사랑의 대상으로 끝까지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저편의 환영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이 역시 세상이 원하는 정상이란 것에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단호한 표현인 것이다. 앞서 '소멸세계'는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말을 했다. 아마네의 투쟁을 통해 소설이 들려주는 대답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출현하여 지속되어온,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화'에 불과하다. 토마스 쿤 식으로 말하자면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주눅들거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고유한 주체성 속에서 어떤 길로 갈 것을 결단했다면 당당하게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네가 소설의 결말에서 이 세상에선 비정상적 행위의 가장 극단이라고 할 만한 행위를 태연히 저지르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그녀는 끝까지 비정상의 영역에 남는다. 히스테리를 히스테리 그대로 온전히 남겨둔다. 바로 거기에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이 태어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마네의 모습은 그녀가 속한 실험 도시에서 누구의 아이도 아닌, 모두가 엄마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과 얼마나 정반대인가? 그들은 모두를 엄마라 부르며 끝없는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아마네의 남편도, 한 때 애인이었던 남자도 다 마찬가지다. 처음엔 아마네처럼 비정상을 향한 탈주를 감행했으나 결국 정상에게 따라잡혀 고유한 주체성을 잃어버렸다. 이로써 이 소설이 말하는 '소멸세계'는 정말은 무엇이 소멸된 세계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고유한 주체성이 사라진 세계라는 것을. 모두가 공장에서 똑같은 틀로 찍어낸 기성품이나 다를 바 없는 세계가 바로 '소멸세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그런 세계를 그리는데 사랑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는가도 이제 알 수 있게 된다. 사랑이야말로 상대의 고유한 주체성을 존중하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게 말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개인과 개인 간에 일어나는 일이고 그런 면에서 두 고유한 주체성의 대면이라 할 만하다. 또한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기에, 역시 고유한 주체성이 발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은 사랑을 하는 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그 사랑의 감정은 오직 자신만이 향유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자신을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과 늘 연결시켜 주는 '탯줄'이다. '소멸세계'가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 주요한 테마, 즉 사랑과 주체성은 이렇게 연결된다.

 '소멸세계'는 오늘의 세상과 완전히 정반대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여 상식으로 굳어진 것을 다시금 헤아려 보게 만드는, 이를테면 '사고 실험' 같은 소설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덕분에 오랜만에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주체성과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이 세계의 문을 두드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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