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1
한수산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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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극적인 역사일수록 단단히 기억에 새겨두어야 한다. 망각은 언제나 비극의 반복을 부르기 때문이다. '군함도(하시마 섬)'. 지하 1.000m까지 내려간 갱도는 해저보다 더 깊은 곳이었기에 언제나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또한 여건상 통로의 위 아래가 아주 좁을 수밖에 없어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채굴을 해야했다. 그래서 현지 일본에서도 막장 중의 막장으로 불렸고 당연히 갖은 인명 사고가 뒤따랐다. 태평양 전쟁 말기 노동력이 부족하자 일본은 조선인 남자들을 강제 징용하여 끌고 갔다. 처음엔 돈을 벌게 해 준다고 꼬드겼지만 나중엔 그런 것조차 없이 마구잡이로 끌고 갔다. 그렇게 강제로 군함도로 끌려온 조선인들이 마주한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갱도와 최소 12시간에서 최대 16시간에 이르는 탄광에서의 노동이었다. 그것도 몸에 걸친 곳이라고는 고무줄 속옷 하나에 머리에 쓴 헬멧 뿐이었으며 식사라고 주어지는 보통 비료로 사용되는 콩기름을 짜고난 찌꺼기로 만든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를 버텨야 했다. '군함도'는 일본의 식민지 역사상 가장 참혹한 강제 노동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잊혀진 기억이었다. 그러나 최근 나온 한 소설이 그것을 발굴하고 있다. 바로 한수산 작가의 '군함도'이다.



 원래 이 소설은 2003년에 '까마귀'란 제목으로 나왔었다. 그 때가 처음이었다. '군함도'의 비극이 대중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그런데 이 '군함도'가 지닌 아픈 역사의 상처를 작가가 우리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전두환의 군부 독재'라는 어둡고 아픈 우리네 역사 때문이었다.


 한수산. 그는 원래 70년대부터 잘 나가던 작가였다. 전두환이 군부 독재를 하던 1981년. 그는 한 신문에 '욕망의 거리'라는 소설을 1년째 연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 중 어떤 인물이 전두환을 암시한다는 것과 군복 입은 이들을 비하했다는 단 두 가지 이유로 그는 당시 집필을 하고 있던 제주도에서 갑자기 보안사에 끌려가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그렇게 당한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당시 연재를 한 신문사의 담당 기자들까지 모조리 연행되어 작가와 똑같이 심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 때 시인 박정만도 한수산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끌려갔는데 역시나 온갖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박정만 시인은 그 때의 고통으로 늘 괴로워했으며 매일 소주 두 명을 마셔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 이유없이 사라지는 일도 잦았는데 그러다 결국 전두환이 전 세계에 자신의 위세를 떨치려 개최한 서울올림픽이 폐막하던 날, 화장실 변기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한수산 작가의 필화 사건은 독재 권력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쉽게 그리고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로 한수산 작가 역시 끝내 그 때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여 88년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 버린다. 그는 일본에 한 4년 정도 머물렀는데 바로 거기서 일제 식민지 시절, 실제 '군함도'에 강제 징용되었다가 나가사키 원폭 투하 때 피폭까지 된('군함도'는 '나가사끼' 인근에 있다.) 재일동포들을 만났고 바로 그들의 육성 고백을 통해 '군함도'에 대해 알게 된다. 당시는 '군함도'에 강제 징용 당한 조선인들이 당한 아픔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때라 작가는 그것을 기록해 두었다가 꼭 세상에 알릴 결심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93년, '군함도'에 대한 집필을 시작했고 10여 년만에 '까마귀'란 제목의 장편 소설로 결실을 맺게 된다. 그리고 다시 7년이 지난 현재, 그 '까마귀'를 다시 전부 개작하여 두 권의 책으로 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군함도'이다.


 소설은 '군함도'가 강제 징용 당한 조선인들에게 얼마나 지옥이며 죽음의 땅인지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이대로는 죽겠다 싶어서 탈출을 감행하는 조선인들이 있고 그 중 하나였던 태복은 도중에 체포되어 다시 군함도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받다 고문하던 일본인 사이또오를 살해한다. 한 마디로 '군함도', 그 곳은 화해와 공존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암시다. 그것은 군함도만이 아니라 조선도 마찬가지다. 뒤어이 등장하는 지상과 서형은 서로 사랑해서 혼인한 부부다. 하지만 곧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지상의 아버지는 친일파로 가진 재산도 꽤나 많은 이였는데, 그런 그 역시 일본의 강제 징용을 피해갈 수 없어 장남을 대신하여 둘째 지상을 징용에 보내기로 한다. 지상은 아버지의 친일이 민족에게 큰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죄값을 자신이 강제 징용을 당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치를까 하여 기꺼이 응한다. 원래 지상의 아버지는 군수에게 돈을 써서 지상을 보다 편한 보직으로 보낼 심산이었으나 그렇게 뒷돈을 준 보람도 없이 지상은 결국 군함도로 오게 된다. 이렇게 하여 군함도의 실상이 펼쳐진다.  가혹한 노동 환경과 늘 당하는 죽음의 위협 그리고 일본인들의 갖은 폭행과 억압 속에서 하루하루가 늘 지옥이었던 지상은 뜻이 맞는 조선인들과 탈출을 결심하고 1권의 끝에서 조선인 여자 금화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탈출에 금화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곧 들통나 그녀는 일본인들에게 잡혀가고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결국 죽게 된다. 한 편, 지상과 함께 탈출을 모의했고 금화에게 마음까지 준 우석은 탈출에 실패하고 섬에 남게 되는데 그러다 금화의 죽음을 알고 복수를 맹세한다. 얼마 가지 않아 일본의 폭압에 대한 조선 징용자들의 인내는 임계점에 이르고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들이 퍼져 봉기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모처럼 벌인 거대한 저항은 이전부터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던 일본과 내통하는 조선인들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고 예전부터 군함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과 그것에 대한 저항이나 탈출마저 초연해 있던 명국을 더욱 회의에 젖게 한다.


 한편, 군함도에서 무사히 탈출한 지상은 운좋게 한 일본인 노인의 도움으로 나가사키 항구에 이제 막 조선에서 징용되어 온 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자리를 얻는다. 그는 조선에서도 '상록회'에 소속되어 조선의 계몽을 위한 교육에 힘썼는데,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제국의 첨병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다. 이 지상의 삶은 한 역사를 살아가는 삶을 다룰 때 한수산의 시선이 좀 더 어디에 가 닿는지 느끼게 한다. 특히나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한 경우, 그것에 대해 오늘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어떤 선험적 잣대를 가지고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삶 안으로 들어가서 바로 그들의 눈으로 그들이 한 선택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은 우리의 기대와 어긋나는 면이 좀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군함도에서 모처럼 일어난 봉기가 실패하는 장면이 그러하다. 솔직히 한국 독자로서 이 장면은 뭔가 카타르시스를 줄 수도 있는 장면이었는데, 소설은 그런 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설의 성공을 바란다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이라 바로 그런 면에서 작가의 신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인기 소설을 여럿 발표한 그가 어떻게 써야 독자들이 좋아할 것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실망을 줄 지도 모를 구도를 택했다는 것은 작가 자신이 소설 '군함도'의 사명을 상업적 성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묻혀진 비극적 역사의 온전한 복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어떤 문학적 과장이나 왜곡 없이 있었던 혹은 있음직한 사실 그것만의 재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왜 맥락에 맞지 않는 대사들이 뜬금없이 튀어 나오는 지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현실은 이야기처럼 매끄럽지 않고 다양한 군상들은 저마다 다른 말을 하니까 말이다. 역사적 현장의 진실된 재현과 그것을 통한 독자의 생생한 체험. 바로 이것이 저자가 부여한 '군함도'의 사명이며, 소설은 그것을 훌륭히 완수했다고 보여진다. 어쨌든 '군함도'가 어떤 곳이었으며, 반드시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비극의 장소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가사키에서 일하게 된 지상은 결국 원폭 투하까지 경험한다. 그러나 '군함도' 보다 더한 지옥의 현장에서도 그는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엔 아마도 역사의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아직 고향에 오지 못한 상태라 볼 수 있는 '군함도'의 비극적 역사를 이 소설을 통하여 비로소 환향할 수 있게 하려는 작가의 비원(悲願)이 서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 역시 한동안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 적이 있었던 지라 그 귀향의 염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으리라. 부디 그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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