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 : 주사위는 던져졌다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최근 스웨덴 산 노르딕 느와르는 다변화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 읽은 에밀리에 셰프의 '마크드 포 라이프'도 그랬는데, 이번에 나온 제니 롱느뵈의 '레오나'도 그러하다. 지킬과 하이드 처럼 법과 불법 사이의 묘한 경계에 서 있는 자들을 주인공으로 그린다. '마크드 포 라이프'의 경우, 주인공은 어릴 때 세뇌되어 암살을 한 과거가 있다. 현재 그녀는 그 기억이 깨끗하게 지워져 법을 수호하는 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잊혀졌던 과거가 점점 현실로 고개를 쳐드는 일이 발생한다. '레오나'의 경우는 형사다. '마크드 포 라이프'의 주인공과는 다르게 남편과 자녀도 있다. 겉으론 가장 안정적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녀는 심한 도박 중독자다. 그것도 영화 '타짜'에서 딸의 수술비를 도박으로 날렸던 교수처럼 아들의 수술비마저 도박으로 탕진할만큼 중독이 심하다. 때문에 그녀는 날마다 남편이 잠들면 몰래 일어나 데스크탑으로 가서 온라인 포커를 친다. 낮에는 법을 수호하고 밤에는 불법을 자행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킬과 하이드로 부를 수밖에. 




 결국 도박 때문에 그녀는 끔찍한 범죄까지 감행하고 만다. 우리는 이 소설의 처음에서 심하게 학대 받은 아이를 통하여, 아이가 지닌 미리 녹음된 테이프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아이가 더 심한 학대를 받을 것이라고 은행원에게 협박하여 돈을 가져가는 것을 본다. 너무나 잔인한 수법의 범죄라 이 사건은 삽시간에 스웨덴 전역의 관심을 모은다. 바로 이 수사를 레오나가 맡는다. 그러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레오나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주인공 보정을 받기 힘들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녀는 살인까지도 저지르지 않는가!


 정의감이 투철한 독자에겐 인내를 요구할 수 있는 소설이다. 더구나 레오나는 자신이 저지르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양심 상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아이들을 사랑하며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오직 문제가 있는 것은 그녀 뿐이다. 바로 도박. 그것을 계속하기 위해 그녀는 거짓말을 반복하며 주위 사람들을 속이고 어린 아이마저 범죄에 이용한다. 남편은 그저 필요하기 때문에 부부로 있는 것 뿐이며, 아이들만은 사랑의 감정을 다소 느끼나 그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만큼 자신의 욕망에 더없이 충실하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다. 그녀 스스로도 보통 사람들이 공감이라 부르는 감정들이 차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주인공의 면모 때문에 이 소설은 더없는 독특함을 가진다. 이런 여성 주인공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르 소설에서 등장한 악녀 중에서도 상급이라 할 만하다. 대개 주인공이 악녀일 경우 악행을 저지르는 데 있어선 그래도 뭔가 대의라고 할 만한 게 있었다. 이를테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자식이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레오나는 그런 것조차 없다. 그녀는 가정을 기꺼이 파괴해서라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 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돈을 챙겨 도박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나라로 홀로 떠나는 것이 목적이다. 너무나 색다른 모습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뭐, 그렇게 만드는 동기는 어쩌면 상반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레오나가 어서 처벌 받는 것을 보려고 읽을 것이며, 누군가는 레오나가 어떻게 법망에서 벗어나는지 보기 위해 읽을 것이다. 또 어떤 누군가는 여성 주인공이 너무나 정도를 벗어났기에 페미니즘적 입장으로 읽으려고도 할 것이다. 보통 악녀라는 낙인은 가부장제 사회가 정한 상궤에 벗어나는 여성의 이마에 찍혀지므로 악녀는 페미니즘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존재로 많이 여겨졌다. 레오나 역시 아이에 대한 것이나 자식에 대한 것이나 모두 전통적인 여성상에 극명하게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페미니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악녀의 형성은 바로 가부장제의 지하실에서 이뤄졌다. 레오나는 어려서부터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차별을 많이 당했다. 아버지는 철저하게 남자인 오빠만을 위했고 레오나가 그 서열에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면 곧장 지하실에 홀로 가둬버렸다. 그 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녀는 늘 무의식의 공포로 자리잡은 지하실의 격리와 어둠으로부터 달아나려 애쓴다. 그녀가 경찰이 되고자 한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다시는 자신을 가뒀던 그 질서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질서를 만들고 지키는 자가 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박 중독이 남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균열을 일으킨다. 알고 보면 그녀에겐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욕망이 있는 셈이다. 하나는 아버지와 같은 남성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것은 바깥에서 강요로 주입된 욕망이다. 아버지의 부당한 처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박 중독은 순전히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난, 오직 자신만의 것이다. 도박 충동,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독립된, 고유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모습이다. 그녀가 형사와 아내 그리고 엄마로서 보다 더 남성 사회에 편입될 수록 마치 거기에 반발하듯, 도박 충동이 거세지는 것도 그렇게 해석하도록 만든다. 한 편, 아버지와 레오나의 관계는 다시 아빠와 올리비아의 관계로 반복된다. 올리비아는 사실 어린 시절 레오나의 분신이다. 재밌는 것은 반복된 올리비아와의 관계에서 레오나가 엄마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레오나는 이중적이다. 올리비아를 한 편으로는 아버지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아버지의 지배에 거듭 종속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작가는 레오나에게 왜 이런 이중적 지위를 가져다 준 것일까? 그러고 보면 형사로서의 레오나도 그렇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레오나도 그렇고 다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아직 이것의 의미는 내게 모호한 채로 남아 있는데 이야기가 좀 더 진전되면 분명해지지 않을까 한다. 현재 나온 레오나의 이야기는 삼부작 중 1부에 불과하다.


 레오나 외에 다른 인물까지 눈을 돌리면 페미니즘적으로 볼 여지는 더욱 많아진다. 일단 여자 검사 니나가 그러하다. 그녀는 처음에 원칙주의자로 나오는데, 소설 중반에서 레오나의 유혹에 넘어가 레오나와 한 편이 된다. 바야흐로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에서 가장 멀리 달아난 '악녀들의 연대'가 탄생한 것이다. 이것은 남성 중심의 사회 또는 가부장제 질서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소설 속의 두 여성 약자들의 모습은 악녀가 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여성들의 유화적 혹은 타협적인 제스쳐들이 소용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두 여성 약자들이란, 하나는 범죄에 이용되는 학대 받는 어린 여자 아이 올리비아이고, 다른 하나는 남성 권력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했던 매춘부 디나이다. 올리비아는 주로 아빠에게 당하는 소외와 고통을 호소하는데, 그것은 그대로 사회의 가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 관료들에게 당하는 디나의 고통과 이어진다. 그런데 그런 디나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는 게 뭔지는 내가 더 잘 알아요. 뭐 하나라도 변화시킬 수 있기를, 내가 얼마나 바랐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처지에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결국은 내가 똥물을 뒤집어쓰고 말 테니까. 젠장, 지금 이 문제를 놓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요.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고요."(p. 355)


 디나는 남성 중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뭐든 해 봤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소용 없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자신이 당했다고. 디나의 행위엔 오직 하나가 빠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악녀가 되는 것. 그런 의미에서 디나의 절망이 악녀들의 연대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다. 남성 중심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디나가 말한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문득 이와 비슷한 말을 들려주었던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바로 '에이리언'으로 유명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다. 델마와 루이스는 평범한 주부로 그들끼리 여행을 떠났다가 남성들의 부당한 처사를 경험하고는 그들만의 고유한 정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은 범죄자가 되는데,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모습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들이 남성 중심 사회와 결코 타협하지 않고 차로 절벽에 뛰어드는 장면이다. 리들리 스콧은 절벽에서 벗어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화면을 멈춰 그들이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해방의 비상을 하는 것이라 암시한다. 나는 레오나와 니나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섣부른 단정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지금 읽은 '레오나'는 원래 3부작으로 계획된 것의 첫 부분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지금 내가 한 말은 완전히 허황된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고, 들어맞을 수도 있다. 과연 어떨까? 그 최종 확인을 위해서라도 얼른 3부까지 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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