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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ㅣ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평점 :
오래도록 기다렸던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지의 제5부가 드디어 나왔다. 제목은 '카이사르'.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공화국 로마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제정 로마가 시작되는, 그렇게 법의 지배에서 사람의 지배로 나아가는, 로마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클라이막스인 시기가 바야흐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2차 원정 때, 그의 부하 트레바티우스가 폼페이우스가 쓴 편지 두 통을 카이사르에게 가져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브리타니아 2차 원정은 카이사르에게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찾아온 천재지변 때문이었다. 운명의 장난 같은 것. 여태껏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총애를 각별하게 받아온 카이사르였는데, 이제 포르투나가 숱이 적은 카이사르 머리 위에 올려두고 있었던 애정의 손길을 거두기라도 한 것일까? 트레바티우스가 가져온 편지엔 카이사르가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불운한 소식이 담겨 있었다. 바로 자신의 딸이자, 폼페이우스의 아내인 율리아가 사망했다는 것. 율리아. 그녀는 현재 원로원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이자 그들이 가진 능력으로 볼 때 언제든 로마의 일인자 자리를 놓고 격렬한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를 하나로 묶어두는 유일한 존재였다. 비록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카토가 로마제국이 결혼상담소냐고 툴툴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자신이 총애하는 브루투스와 율리아의 약혼까지 억지로 깨고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에게 준 것이었다. 브루투스가 아주 오랫동안 율리아를 흠모했으며 그 사랑이 거의 맹목에 가깝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도착한 그의 정부이자 이 소설의 메데이아라고 할 수 있는 세르빌리아의 편지에서 브루투스가 율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피우스 클라우디우스의 딸 클라우디아와 결혼했음을 알게 된다. 오직 그녀가 폼페이우스가 자기 아들 혼인 상대자로 점찍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브루투스는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빼앗긴 복수를 한 것이다. 이로써 카이사르는 비로소 브루투스에게 율리아가 어떤 의미였는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브루투스가 율리아가 죽자 마침내 결혼한 것은 율리아가 살아 있을 동안 내내 그녀와 이어질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뜻인 것이다. 그만큼 그의 사랑은 좋게 말하면 지고지순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맹목적이었다. 그리고 카이사르에 대한 원망을 억누를 수 있는 바윗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율리아는 없다. 연대의 매듭은 산산히 깨어졌다.
콜린 매컬로가 그 편지로 5부를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5부란 갈리아 지방이 로마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며 이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로마 최고 권력을 놓고 아주 격렬한 내전을 펼치게 되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이제 로마라는 이름 아래 하나된 모든 것들이 균열과 파열을 일으키고, 뜻을 함께 했던 동지마저 칼 끝을 겨누고 등 뒤를 찌르게 된다. 이처럼 모든 연대가 낱낱이 부서져 버리니, 연대 종말의 상징과도 같은 율리아의 죽음을 담은 편지로 시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까? 일종의 신호탄인 셈이다. 그 편지를 든 트레바티우스가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카이사르의 직속 부관 라비에누스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카이사르가 가장 신뢰하여 자신의 배후까지 맡겼던 자였지만, 폼페이우스와 치른 내전에서는 카이사르를 버리고 폼페이우스에게 투항하여 그의 장수로서 카이사르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이렇게 콜린 매컬로는 5부가 유대의 파괴로 점철될 것임을 꼼꼼하게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도 과거의 것에 기댈 수 없고, 이제 자신의 힘으로 닥쳐온 난관을 타개하며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로마는 이제 그런 시기에 완벽하게 접어들었다. 카이사르가 주인공이 되는, 법이 지배하던 시대에서서 사람이 지배하는 시대로의 변화는 바로 그런 것을 뜻한다. 그러나 여전히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과거의 것에 기대려는 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귀족들의 원로원이 그러하다. 온갖 비리에, 매관매직에 로마의 자랑인 선거마저 돈과 폭력에 오염되어 공정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인 상황이 되었으나 원로원은 자신의 기득권에만 집착하여 자꾸만 침몰해가는 로마를 바로잡을 줄 모른다. 누가 봐도 깊이 가라앉고 있는데, 귀족들은 자기만 괜찮으면 로마가 다 괜찮은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들에겐 그들이 곧 로마인 것이다. 폼페이우스도 그랬다. 그 역시 자신을 로마라 여겼다. 그는 로마의 모든 권력을 혼자 쥘 수 있는 독재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로마를 개혁하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이 뛰어난 자로 태어난 자신에게 걸맞는 자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로원에게 로마가 과거의 기득권과 동의어라면, 폼페이우스에게 로마는 자신의 가치를 빛내 줄 훈장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타인을 위해서 로마를 생각하거나 자신을 로마로 여기지 않는다. 평민을 위해 싸우겠다며 귀족의 지위를 버린 푸블리오 클로디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여전히 키케로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복수를 위해 그는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
클로디우스의 가장 큰 약점은 복수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존엄을 모욕하거나 손상시키면 그를 복수 대상 명단에 올린 뒤 자신이 당한 그대로 되갚아줄 완벽한 기회를 기다렸다.(p. 231)
평민을 선동하여 그가 평민의 유일한 편인 것처럼 여기게 하고 그것을 통해 해방 노예들을 각 선거구에 은밀히 보내어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호민관 10명을 만들려 한다. 콜린 매컬로는 로마의 연대가 무엇 때문에 깨어지는가를 이렇게 샅샅이 보여준다. 바로 이기심이라는 것을.
타인을 위해서 로마를 생각하며 자신을 로마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은 카이사르가 유일하다. 그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초월한 로마를 위해 사는 것을 자신의 존엄이라 여겼다. 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갈리아의 베르킹게토릭스에게 카이사르는 이렇게 반대하는 말을 한다.
"사람들에겐 왕이 필요하오. 눈 한 번 깜빡하면 새로 바뀌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주주의에서는 어느 한 집단이 이득을 보고 그다음엔 또다른 집단이 이득을 볼 뿐, 전체가 이득을 보는 상황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소. 결국엔 왕정만이 유일한 해답이오.(...) 당신은 이미 왕이오, 카이사르! (...) 당신은 우연히 투표권자들에게 선택을 받은 알렌산드로스 대왕이요."
"나는 여전히 전체의 일부일 뿐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었을 때 마케도니아도 죽었소. 그의 나라는 그와 함께 사라졌소. 그는 스스로 왕이라 생각했기에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제국의 중심을 다른 곳으로 옮겼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나라가 위대했던 것은 오로지 알렉산드로스 대왕 때문이었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갔소. 그는 왕이었으니까, 베르킹게토릭스! 그는 자기 자신을 목적으로 착각했소. (...) 반면 나는 내 나라의 종복이오. 로마는 로마가 낳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위대하오. 내가 죽더라도 로마는 계속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낳을 것이오.(...) 민주주의에서는 바보와 현자가 늘 공존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가의 계보보다는 낫소. 위대한 왕이 하나 나오려면 보잘 것 없는 왕을 열 명은 거쳐야 하니까."(p 196 ~ 197)
존엄은 로마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존엄을 중시하는 것은 로마인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존엄에 대한 해석은 모두가 달랐다. 폼페이우스도, 그의 부추김에 의해 클로디우스를 암살하게 되는 밀로도,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충족되려는 직전에 생명이 꺼져버린 클로디우스도 존엄은 오직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거기에 고귀함은 없었다. 오직 권력과 동의어인 존엄만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재산이나 권력을 가진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다. 권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어떠한 비열하고 비천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았다. 광장은 정치적인 이유로 폭력이 횡행하는 장소로 변했고 선거는 돈과 협박으로 검게 물들었다. 정의와 고귀한 명예를 지키려는 이들은 조롱당했고 음모의 희생자가 되어 추방이라는 차디찬 냉대를 받아야 했다. 로마가 세계 만방에 자랑했던 민주주의는 완전히 무너졌다. 다만 뼈다귀만 있을 뿐이었다. 카이사르를 공공연히 반대하는 카토를 비롯한 보니파는 다만 그 뼈다귀에 묻어 있는 얼마 안되는 살점을 뜯어먹고 있을 뿐이었다. 개도 안 쳐다볼 그 희박한 살점이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변화는 필연이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의 베르킹게토릭소에게 말한 것처럼. 카이사르는 자기 어깨에 놓인 시대의 의무를 느꼈다. 포르투나의 은총은 그 때문에 그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클로디우스가 죽고, 폼페이우스마저 보니파와 손잡은 지금 개혁 진영엔 이제 카이사르만이 남게 되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없었다. 율리아의 죽음과 더불어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카이사르에게 남은 것은 오직 로마의 올바른 재건 밖에 없다는 것을. 5부의 이야기는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과 카이사르와의 전면전이다. 갈리아 지방의 변화를 두고 카이사르와 베르킹게토릭소와 벌였던 논쟁 그대로. 결전의 시기는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너무나 몰입해서 읽었다. 이야기가 지금 우리 상황과 결코 멀리 있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과거의 모습과 기득권을 고수하는 세력과 싸운다. 문자 그대로 적폐 세력이다. 지금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유시민의 말대로 지금 상황은 그저 대통령 하나만 바뀐 것에 불과하다. 적폐세력은 어디든 아직도 건재하다. 개혁을 위해 외롭게 분투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정부나 카이사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읽다보니 소설의 모든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의 말처럼 권력의 추구는 늘 사리사욕의 유혹을 받는다. 거기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내는 것은 정말 힘들다. 폼페이우스도 결국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자신의 출신 신분이 로마 정통 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를 끝내 사리사욕으로 몰아간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가 가진 단 하나를 정말 부러워한다. 그가 로마를 건국한 핏줄의 정통 계승자인 파트리키라는 것. 마리우스가 그토록 출중한 능력에 막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로마인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마리우스가 파트리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로마인들은 술라가 파트리키였기 때문에 너무나 두려워했다. 폼페이우스도 파트리키였다면 선택이 달랐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카이사르가 그렇게 태어난 것 역시 포르투나의 은총 때문이라 해야 하리라. 어쨌든 운명은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그 때 로마인으로 태어난 것도 은총이었을 것이다. 갈리아와 로마의 관계는 식민지와 제국의 관계라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의 우리나라가 떠올랐다. 그래서 실은 베르킹게토릭소에게 더 공감했다. 콜린 매컬로도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3부가 왜 '포르투나의 선택'인지 궁금했는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피투적 존재라 불렀듯이 우리는 우연히 떨어지는 빗방울에 불과하다. 빗방울 스스로 어떤 대지에 떨어질지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으로 결정된다. 삶에는 이렇게 필연적으로 우연의 몫이 있다. 콜린 매컬로가 말하는 포르투나의 결정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 우연을 절대로 여기고 그 우연의 은총을 받지 못한 자신을 내내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마리우스가 술라를,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를 질투한 것처럼. 그것이 하나의 컴플렉스가 되고 강박이 되어 우연이 준 상처를 억지로 지우려다 해서는 안 될 과오마저 저지르기도 한다. 반면, 그런 우연의 흉터를 가볍게 넘겨버리는 자들도 있다. 그것이 한계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다. 콜린 매컬로의 '카이사르'는 그렇게 상반된 자들이 벌이는 일종의 전면전이기도 하다. 우연의 한계에 너무 구애받은 나머지 삶의 진정한 기회를 놓치는 자와 그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변화를 이뤄내는 이들 사이의 전면전. 카이사르도 원래는 혈통 외에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자였다. 그런 그가 결국 로마의 패자가 된 것은 오직 우연의 잔영인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고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자신을 주저없이 기투 했던 것에 있었다. 우리나라 적폐 세력들이 주머니에 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 더욱 몽니를 부리는 지금, 무엇보다 요청되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어 앞으로의 이야기가 한층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