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저기요. 네, 거기 당신. 아, 피하지는 마세요. 도를 믿으세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얼굴이 충분히 그런 의심을 할만큼 생겼다구요? 와, 너무 하시네요. 모독을 당해드렸으니 그 보답으로나마 잠깐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긴 시간은 뺏지 않을테니까요. 네? 알았으니까 무슨 얘기냐구요? 혹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들어보셨다구요? 럭키군요. 다행이 당신이 제게 할애할 시간을 좀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네요. 다 읽어보셨나요? 보셨다구요. 와, 정말 매니아시군요. 제3인류는? 아, 그건 아직이라구요. 잘 되었네요. 하마트면 이대로 이별을 고할 뻔 했어요. 아무튼 제3인류 빼고 다 읽어보셨다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이런 거 혹시 못 느끼셨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모든 작품이 사실은 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 그렇게 같은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런 못 느끼셨다구요? 도대체 뭘 읽은 거예요? 등장인물도 겹치고 이야기도 전작의 내용들이 언급되는 등 분명하게 이어지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아, 뭐라 하는 것은 아니구요. 좀 더 디테일하게 읽어보시라는 거죠. 그러면 분명 느끼게 되실 겁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이 모두 하나의 흐름 속에 단계별로 서 있다는 것을. 제게 긴 시간을 허락해주신다면 당장 이 자리에서 증명해 드리겠습니다만 당신이 바쁘시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건 생략하고 바로 '제3인류'라는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네, 저는 언제나 듣는 상대의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이랍니다. 하하하. 어쨌든 아마도 '제3인류'를 읽게 되시면 분명 느끼시리라 생각해요. '제3인류'도 그 이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연속성 위에 서 있는 작품이라는 걸 말이죠.


 짧게 그 증거를 말씀드리죠. 일단은 그동안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여기서도 여전히 얼굴을 빼곰 내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또 하나! 그 에드몽 웰즈의 손자인 다비드 웰즈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쩌면 당신도 읽어보시면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제3인류'가 어쩐지 인간판 '개미' 같다고 말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되더군요. 연속성의 증거에 대해선 짧게 이야기 하느라 딱 두가지만 말씀드려 성에 차지 않으셨죠. 그래야 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바로 왜 인간판 '개미'로 여기는가에 대한 이유도 말해야 했거든요. 시간을 많이 뺏기가 죄송스러워 이렇게 나눈 것이죠. 결코 제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당신을 배려한 결과임을 부디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 이유를 이제 말씀 드릴게요. '개미'를 읽어보셨다니까 아시겠지만 거기엔 로제타 석을 이용해 개미의 신으로 군림하는 '니콜라'라는 존재가 나옵니다. 그런데 '제3인류'에도 그런 존재가 나와요. 그것이 바로 가이아죠. 네, 어디서 많이 들어온 이름이라구요? 와, 대단하세요! 맞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이름이죠. 제우스가 멸망시킨 타이탄 족. 그래서 가이아가 신이냐구요? 글쎄요, 정확한 의미에서 신은 아니에요.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인격을 가진 지구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쉽게 지구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가졌다고 상상해 보세요. 거기다 기상도 마음대로 조정하고 모든 동물을 움직이며 때로 인간에게 불만이 생기면 쓰나미를 일으켜 휙 쓸어버리기도 하는 지구를 떠올려 보세요. 네, 그게 바로 가이아입니다. 어떤 면에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제대로 이름 붙인 것이죠. 사실 대지란 지구의 살결 아니겠어요.


 네, 뭐라구요? 그런 비슷한 존재가 예전에도 나왔던 것이 기억나신다구요? 와, 정말 매니아셨군요. 맞습니다. 나왔었죠. 바로 6부작인 '신'에서 말이죠. 미카엘이란 이름이었죠. 지구 1호를 관리하던. 그러고 보니 가이아와 미카엘 닮은 점이 많네요. 일단 자신의 의지를 그리스 신화의 신탁처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물론 개미에서도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판 '개미'라는 생각이 자꾸 들 수밖에요. 그리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더없이 냉정하고 잔혹해질 수 있다는 것도 가이아와 미카엘의 공통점이죠. 네, 그런 미카엘이 기분나빴다구요? 아, 이런 그러면 가이아도 마음에 드시지 않겠네요. '제3인류'의 가이아는 미카엘 보다 한 숟갈 더 뜨거든요. 이를테면 가이아는 자신의 기억을 담당하는 석유를 인간들이 마구 캐내자 신종플루 같은 독감균을 만들어 내어 수십억의 인구를 죽여버립니다. 뭐, 그런 황당한 자식이 있냐구요? 자신이 알츠하이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무자비한 짓을 벌여도 되느냐구요? 거,보세요. 제가 마음에 드시지 않을 거라 그랬죠. 하지만 가이아에게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있답니다. 혹시 공룡이 멸종당한 이유를 아시나요? 네, 맞습니다.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거대한 운석 때문이었죠. 그것도 다 아시다니 오늘은 제가 운이 좋네요. 말을 한참 줄일 수 있어서. 여하튼 그 운석의 충돌은 오랜 빙하기를 가져왔고 지구 가이아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트라우마가 될 수밖에 없는 상처였죠.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겨 본 사람은 다시는 그와 같은 위기를 겪지 않으려 조심하기 마련입니다. 도둑에게 당한 사람이 편집증일 정도로 문단속에 온통 신경을 쓰듯 말이죠. 그런 사람에겐 아주 작은 위협조차 중대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과잉 대응이 나오는 것이죠. 네, 가이아는 행여 또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까 벌벌 떠는 불쌍한 녀석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 가이아가 인류를 비롯하여 지구의 모든 생물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란 어떤 사람인가요? 근엄하면서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희생하는 모습이 얼른 떠오르죠. 왜, 미소를 지으시죠?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 같은데. 나중에 말해주겠다구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그런데 베르베르는 아버지 같은 존재인 가이아를 전혀 다르게 묘사하는 것입니다. 상처에 벌벌 떨고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말이죠. 이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제3인류'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여기에 대해선 나중에 말하기로 하죠. 거기로 나가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어렵게 말할게요.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말이죠. 그건 바로 '선별'입니다. 아, 당신도 아시는군요. 네, 그건 '개미'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기도 하죠. 때문에 더욱 이 '제3 인류'가 연속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벌벌 떠는 겁장이에 지나지 않는 이 가이아가 자기를 지키려 하는 대표적인 행동도 바로 선별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메르쿠리우스 임무' 기억나시나요? 새로 추대된 클리푸니 개미 여왕이 개미들과 공존하며 살아가던 인간들에 대한 음식 공급을 중단하자으로 죽을 정도로 굶주림에 허덕이던 그들이 자신을 따르는 개미들에게 지하실에 갇힌 자신들을 구조해달라는 메세지를 지상의 인간들에게 전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바로 '메르쿠리우스 임무'라는 것이었죠. 그런데 말이죠. 이게 '제3인류'에서 좀 더 확장된 스케일로 반복되는 것입니다. 인류가 가이아의 생존에 위협하자 가이아가 '제3인류'라는 것을 만들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거든요. 인간이 '가이아'가 되고 그들의 개미가 '제3인류'가 된 것말고는 차이가 별로 없죠? 이래서 '제3인류'를 자꾸 인간판 '개미'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개미의 핵심 주제인 선별이 여기서도 비중있게 다뤄지기까지 하죠.


 네? 도대체 '제3인류'가 뭐냐구요? 의미는 단순해요. 선별이 세번째로 일어났다는 뜻밖에 없거든요. 태초의 인류는 거인족이었다고 합니다. 가이아가 생존에 도움이 되려면 되도록 체구가 큰 것이 좋겠다 싶어 그렇게 만든 것이죠. 그들이 '제1인류'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위협이 되자 그보다 작은 '제2인류'를 만들어 멸종시켜 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들인 현생 인류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인류도 거인족과 똑같은 경향을 보이는군요. 그래서 가이아는 다시 한 번 멸종을 위한 선별을 합니다. 그렇게 세 번의 선별이 진행되었고 하여 '제3인류'입니다. 이렇게 씁쓸하게도 종말을 위한 세 번째의 병기라는 의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뭐라구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왜 이러느냐구요? 갑자기 파시즘에 경도되기라도 한 것이냐구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급 정도되는 작가가 아무 이유없이 그렇게 설정했을 리는 없겠죠. 네, 거기엔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종말을 가져온다는 것에 신경쓰시기 바랍니다. 사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여기서 누군가의 죽음을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 아니, 선별과 배제가 내내 이어져 왔으니 항상 노려왔던 것이기도 합니다.네? 그게 누구냐구요? 바로 아버지입니다. 앗, 당신이 아버지라구요? 이런 많이 놀라셨겠네요. 그렇다고 내 자식에게 이런 책을 읽힐 순 없다며 책을 집어던지시지는 마시구요. 조금만 차분히 들어보세요. 이제 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오디이푸스의 후예라도 된 듯 줅기차게 아버지의 죽음을 가져오려 하는지 얘기해 드릴테니까.


 그 이유에 대해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버지란 존재가 사실은 선별과 배제의 근원적으로 불러 일으키는, 요즘 아이들 말로 하자면 최종 보스이기 때문입니다. 네, 안심하세요. 여기의 아버지는 지극히 상징적인 존재니까요. 보다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을 잠시 빌려올게요. 아시다시피 그는 한 개인의 욕망을 통제하는 대타자가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개인 밖에 있는 존재인데 개인을 넘어서는 존재이기에 큰 '대'자가 붙은 것이죠. 쉽게 말하면 사회 질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회 질서는 위계 질서라는 게 있지요. 자식은 부모를 따라야 하고 부하직원은 상사를 따라야 하며 군인은 지휘관을 따라야 하듯이 말이죠. 위계엔 언제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정상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가장 높은 곳에 거하면서 위계 질서 자체를 떠받치고 관리하는 존재가 말이죠. 그것이 대타자이며 그 지위란 가정에서의 아버지와 같기 때문에 흔히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죽이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아버지예요. 이제 안심하시겠죠? 당신과는 상관없는 문제라구요.


 베르베르가 자꾸만 살의를 느끼는 것은 그런 아버지가 반복해서 선별과 배제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은 성별이나 계급, 인종에 관계없이 대등한데 이 아버지란 존재는 온갖 빗금으로 나와 너를 나눠 누구는 데리고 있고 누구는 내쫓기 때문이죠. 다른 누군가가 아닙니다. 서구 사회를 오래도록 지배해 온 근원적 사유체계 가 바로 그것입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동일성과 차이'라는 책에서 서구의 형이상학을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죠. 고대 그리스 이후로 서구를 지배해 온 형이상학은 동일자와 타자를 엄밀히 나누고 모든 것을 동일하게 만들려 했으며 그렇게 되지 않는 타자는 배척했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땅에 묻고자 하는 건 바로 그런 아버지입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했듯이 분리와 차이를 통해 비극을 반복적으로 양산하는 아버지 말이죠. 혹시 당신도 자녀들을 차별했다면 그 대상일지 모르니 조심하시죠. 네, 사람을 어떻게 보냐구요? 아, 죄송합니다. 사실은 그런 분이 아닐 줄 알았어요.


 아무튼 '제3인류'는 본질적으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이러면 또 문득 떠오르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하나 있지 않나요? 우왓! 정답이에요! 맞아요, 바로 '아버지들의 아버지'죠. 어때요? 이런 제목을 듣고나지 이제는 좀 수긍이 가시겠죠? 베르베르는 내내 '아버지'란 과녁을 겨누어왔다는 것을. 그러니 우리나라 시인 이성복의 이런 시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아버지, 이 개XX. 넌 입이 백개라도 할 말이 없어!' 그리고 록그룹 '도어즈'의 노래 'THE END'에 나왔던 이런 가사두요.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만 호로자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살부 의식은 국경과 시대를 넘나들어 항존해 왔다는 것이죠. 오죽하면 프로이트조차 문명의 근원엔 살부의식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겠어요. 그러니 아, 위험해하고 내치지 마시고 읽으세요. 이것은 다만 문명 비판이니까요. 더구나 늘 천착해왔던 주제인지라 제법 귀기울만 합니다. 문명 비판이라고 하니까 왠지 무거울 것 같다구요? 이런,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구인지 잊었나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입니다. 재미와 몰입으로 독자가 작품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도록 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구요. 그러니 걱정마세요. 흔쾌히 참여하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우리 문명의 근원적인 잘못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재미 외에 이런 성찰의 덤까지 주니 할인 마트의 '1+1'처럼 어찌 덥썩 잡지 않을 수 있을까요? 빠져 보세요. 제가 팬이라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후회는 별로 없을 거예요. 그 어떤 배제와 차별 없이 모두가 대등한 가운데 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비행엔 분명 탑승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뺐은 건 아니죠? 어쩐지 표정이 좋지 않으신데 그래도 유익한 대화이지 않았나요? 아니라구요? 아니, 왜 주먹은 쥐시는지? 어쨌든 이제 드릴 말씀도 더 없고 하니 그만 헤어져야 겠네요.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으시다면 다음에 또 대화를 나누면 되겠지요. 네, 뭐라구요? 다음에 또 만나면 각오 하라구요. 가이아의 아픔을 이해하게 만들어주겠다구요? 아니, 이런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거죠? 있는 힘껏 눈높이에 맞추어 자세히 말씀드린 것 밖에는 없는데. 너무하세요, 정말! 네? 왜 멱살을? 이혼하면 책임지라구요? 오늘이 결혼 기념일이라 레스토랑에서 아내와 만나 오붓이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저 때문에 한참이나 늦게 되었으니 어떡하냐구요? 그렇지 않아도 기념일을 하나도 못챙겨 아내가 잔뜩 벼르고 있는 참인데 오늘은 진짜 죽었다구요? 아, 그러면 진작 말씀 좀 하시지. 죄... 죄송합니다. 어떻게 사죄를 드려야 할지... 이런 우시면 어떡합니까? 아, 정말 아버지는 고달픈 존재로군요. 어쩐지 가이아가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구는지 이해할 듯도 해요. 아악! 얼굴은 때리지 마세요. 생명이라구요. 악!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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