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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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건, 기억의 집적이다. 사는 것에 우리의 선택이 없었던 것처럼 어떤 기억을 갖느냐에 있어서도 우리의 선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싫은 기억, 부끄러운 기억, 그저 빨리 잊어버리고만 싶은 기억들도 우리는 지니고 살아야 한다. 더구나 사람이 창조될 때 뭐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지, 좋고 기쁘며 행복한 기억보다는 나쁘고 슬프며 불행한 기억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미소의 여운은 잠시지만 고통의 잔영은 너무나 길다.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음울한 기억의 그늘 아래서 오래도록 신음하다 보면 언젠가는 바라게 된다. 누가 이런 기억 따위 지워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것을 소설로 풀어낸 책이 바로 변호사 출신 작가 오리가미 교야의 '기억술사'이다.



 주인공은 현재 대학생인 료이치. 그는 신입생 환영회 때 '교코'라는 여자 선배를 만나 그만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만다. 하지만 그녀에겐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으니 과거 치한에게 당한 일 때문에 밤에 혼자 집밖에 있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료이치는 사랑의 힘으로 교코가 과거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다. 그런데 어느 날, 교코가 자신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기억조차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류이치는 직감한다. 교코가 싫고 아픈 기억을 지워준다는, 괴담 속 존재인 기억술사를 만났음을. 


 기억술사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괴인이다. 기억술사를 불러내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억술사는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앞에 스스로 나타난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도시 전설 가운데 해외로부터 수입된 것이 적지 않은데, 기억술사 이야기는 일본, 그것도 도쿄 인근 이외의 곳에서는 들을 수 없다. 여고생을 중심으로 극히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분류하자면 '괴인 빨간 망토'나 '입 찢어진 여자' 등으로 대표되는 '괴기 괴인 계열' 도시 전설에 속한다.(p. 34)


너무나 아끼던 사람에게서 기억되지 않는 아픔을 심하게 겪어버린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한다. 그 생각을 그만 졸업생 초청 강연회에 강사로 온 변호사에게 털어놓았다가 그에게서 기억술사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는 말을 듣게 된다. 얼마 후, 료이치는 변호사에게서 저번에 만나 기억술사에 대해 말해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는다. 료이치는 거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료이치는 변호사를 만난 기억도 없고, 전화번호조차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료이치는 또 다시 깨닫는다. 자신도 모르게 기억술사를 만나버렸다는 것을.


 기억술사에게 직접 당하기까지 한 그는 더욱 열의를 다해 기억술사를 사방으로 찾아 나선다. '기억술사'는 연작 형식이다. 기억술사에게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료이치를 중심으로 연속되고 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는 료이치가 만난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다카하라. 그 역시 갑자기 닥쳐 온 일신상의 사정과 자신과 관계된 한 사람 때문에 기억술사를 찾는다. 세 번째 이야기는 사라진 기억 때문에 병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여고생 사사 미사오가 중심이다. 료이치는 이 여고생의 존재를 기억술사의 정보를 모으기 위해 가입한 한 괴담 전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고, DD, 이코라는 닉네임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과연 여학생의 사라진 기억이 기억술사 때문인지 조사한다.


 '기억술사'는 제22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에서 독자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이야기까지 읽으면 이 소설이 왜 호러 독자상을 탔는지 잘 알수가 없다. 왜냐하면 소설이 보여주는 주된 분위기가 호러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기억술사 괴담이 나오긴 하지만 공포와는 무관하고 이야기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흥건하게 스며들어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에 이르면 이 소설이 왜 호러 독자상을 탔는지 납득하게 된다. 마지막은 소름이 돋는다. 그도 그럴 것이 료이치와 함께 기억술사를 추적하던 이들이 어느새 그에 대한 기억들을, 료이치 자신까지 포함하여 모조리 잃어버린 것이다.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자신을 뒤쫓고 있으며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의 기억을, 괴담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두 먹어치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소꿉 친구이자 친 여동생처럼 아끼는 '마키'가 있다.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마키의 기억마저 먹어치우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있는 힘껏 마키를 기억술사에게서 보호하려 한다. 그런 료이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반전의 진실이다.


  마지막의 섬찟함과 반전 때문에 첫 번째 이야기의 결말에서 확 올라갔다가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선 다소 쳐지던 기대를 다시 한 번 높이 솟구치게 하여 끝내 2편과 3편의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게 만든다. 읽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재밌는 작품인 것은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작품의 감상에서 벗어나 좀 더 사회적인 측면을 끌어들이면 나는 '기억술사'가 현재 일본인들의 무의식적 소망을 은연 중 대변하고 있다고 본다. 일본은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을 겪었고 그 여파는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일본의 미래는 한없이 불안하다. 이것은 거꾸로 일본의 대중 매체들이 그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 드라마든 책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떻게든 일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주입하려 한다는 것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소설에서 하필이면 과거의 기억 때문에 현재의 밤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교코가 처음에 나오는 것이 내겐 참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교코의 그러한 모습이 실은 현재 많은 일본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교코만큼이나 오늘의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원전 대재앙이 있었다는 기억 자체를 지우고 싶어 한다. 기억술사는 그들의 무의식이 정말로 바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료이치처럼 과연 그것이 옳은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엄연히 존재하는 과거의 비극을 그저 잊는 것으로 현재와 미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게 바람직한 것인가 하고 말이다. 어둔 과거를 그저 잘라내 버리는 것은 원전 대재앙 이후에 아베 정권이 자행했던 것 그대로인지라 더욱 그렇다. 료이치는 반대한다. 그 이유에 대한 이러한 그의 말은 새겨둘만하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도 어쩌면 몇 년쯤 뒤에는 좋은 추억으로 바뀌거나 싫은 기억인 채로 있더라도 그게 계기가 돼서 변할 수 있거나.. 할 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 하지만 지워버리면 그것으로 끝이야. 그 뒤의 가능성이 제로가 돼. 길을 도중에 차단하는 거나 같아. 그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걸어온 길까지 지워버리는 일이야. 기억을 지우는 것이 그 사람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그 순간만으론 알 수 없다는 얘기야.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p. 352)


  아프고 싫은 기억들이 그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당장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봐도 그런 기억들이 우리를 좀 더 성장시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패의 기억은 좀 더 노력하게 만들고 실연의 기억은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만들며 상실의 기억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깊이 깨닫게 한다. 진정한 성장의 한 걸음은 언제나 아픈 반성과 혹독한 성찰 속에 내딛을 때가 많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그대로, 보다 성장한 내가 되기 위해서는 자아의 껍질을 깨는 고통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술사에게 동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억술사는 자신의 행위가 치유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저 모르핀을 놓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치유는 언제나 고통을 정면으로 관통할 때 이뤄진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모르핀의 약효가 떨어지면 이전의 고통이 곧바로 소환되는 것처럼, 단순한 망각은 무수한 반복만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기억술사 자신이 이렇게 고백했던 것처럼.


  "같은 일의 반복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한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p.354)


 아직 2편과 3편의 이야기를 읽지 못했기에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오리가미 교야의 '기억술사'는 일본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망각의 획책에 맞서 기억과 그것을 통한 성찰을 강조하는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과거의 잘못과 아픔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정직하게 응시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롯이 감내하며 꾸준히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한다는.

 잇따른 망각 앞에서 공포를 느꼈던 료이치의 마음은 어쩌면 일본 주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한 작가 자신의 반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망각과 무책임의 유혹이 우리와도 결코 멀리있는 것이 아니기에 '기억술사'를 더욱 허투루 볼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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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0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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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20: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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