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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96년 통계이긴 합니다만, 일본에는 고로시야, 즉 청부살인업자가 약 800명 있다고 합니다. 1년에 일거리는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자 고로시야라고 해도 두 세건 정도. 당연히 경쟁은 치열하고 전업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군요. 하여 대부분 고로시야들은 투잡을 뛴다고 합니다. 음식 배달, 편의점 알바, 택시 운전 같은 것들. 그러면서도 고로시야로서의 육체와 감각을 어느 정도 조련시켜 놓는 것이 필요하기에(그렇지 않으면 암살자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도태되고 마니까요.)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시에 죽이는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네요. 예를 들면 음식을 배달시킨 집에 소리없이 들어가 주인에게 들키지 않고 놓아두고 온다든지. 그래서 고로시야에게 라면 배달은 금기 직종이라고 합니다. 불어 터졌다고 손님에게 항의 받는 경우가 많아서 말이죠. 고로시야로 사는 것은 이렇듯 힘듭니다. 자칫 운이 없어 야쿠자 두목 같은 이를 죽이려다 들키기라도 하면 속절없이 혼과 살이 분리되는 경험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경력이 있는 고로야시들은 그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에이전시 회사들이 있다고 하는군요. 일정한 수수료만 내면 일감을 가져다 주고 신변 보호도 해주며 필요한 암살 도구도 마련해 주는. 이 모든 사실이 얼른 믿기지 않는다구요? 100% 리얼입니다. 믿기지 않으시면, 사부 감독이 만든 96년도 영화 '포스트맨 블루스'를 보세요. 거기 그대로 다 나오니까.
이렇게 몸이 힘들고 벌이가 적은 직업인데도 고로시야가 점점 더 많아지는 사회란 도대체 어떤 사회일까요? 그만큼 경제적으로 어렵고 희망이 없는 사회라고 보아도 좋겠죠. 이것이 바로 소네 케이스케가 그의 소설 '암살자닷컴'에서 그리는 2012년의 세계입니다. 작가가 보는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가 일어난 1년 후의 일본 모습인 것이죠. 그저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다만 돈을 받고 타인을 죽이는 것밖에는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진 사회. 에이전시로도 그들 수요를 다 감당할 수 없었는지 이제 그들은 온라인 경매를 통해 고객의 의뢰를 받습니다. 경매를 주관하는 회사가 의뢰 받은 암살 건을 올리면 하고 싶은 암살자 즉 고로시야들이 원하는 수고료를 말하고 가장 적은 금액을 말하는 고로시야에게 낙찰되는 방식이죠. 그런 일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암살자닷컴' 입니다. 암살자들은 오로지 아이디로만 접속하기 때문에 실제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회사는 오직 암살자 조직을 외부에 발설하거나 암살자가 암살을 실패 또는 하지 않아서 암살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신원을 확인합니다. 이 처벌 역시 회사가 특별히 선임한 고로시야에 의해 수행되는데 꽤 잔인하고 그것은 모조리 촬영되어 모든 고로시야들에게 배포됩니다. 한 마디로 니들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이죠.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고서 그것도 아주 적은 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게 고로시야 일인데, 이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기에 뛰어든다는 것은 확실히 사회가 지옥이 된 것이나 다름없겠죠. 그들에게 96년 상황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살 의뢰 건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일 년에 고작 두 세 건이었는데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몇 건씩 의뢰가 들어오니까요. 뭐랄까, 만인에 대한 만인의 살해가 된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원전 대참사 1년 후의 일본인 것입니다.
소네 게이스케. 저는 그를 살풍경의 작가라 부릅니다. 단 두 작품만 가지고 그를 이렇게 불러서 좀 그렇긴 합니다만 아무튼 2009년에 나온 그의 단편집 '열대야'와 이번의 '암살자닷컴'을 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네요. 하긴 그의 데뷔작 '침저어'부터 좀 그런 경향이 있긴 했습니다. 일단 작품의 제목만 봐도 이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답답함을 느끼는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침저어'는 바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고, '열대야'는 답답한 더위로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며 '암살자닷컴' 역시 오직 죽음만이 해결책으로 그 어떤 희망도 구원도 없는 상태이니까요. 그는 늘 이렇게 현재 일본 사회에 대한 낙담과 절망을 자신의 작품 속에 누벼왔습니다. '열대야'와 '암살자닷컴'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소설은 편의상 연작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암살자닷컴'에 소속되거나 그것에 관련된 이들이 돌아가면서 각자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네 개의 단편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반전에 관련된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는 하나의 에필로그로 이뤄져 있지요. 이 사회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은 첫 단편부터 드러납니다. 거기서 암살자로 나오는 인물은 원래 경찰이니까요. 그러니까 낮에는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경찰로 밤에는 그것을 위반하여 함부로 사람을 해치는 암살자로 살아가는 인물인 것입니다. 꼭 반전된 배트맨의 모습 같네요. 무너지는 사회의 최후 보루라 할만한 경찰이 이 모양이니 이 사회가 어떤 지는 충분히 감이 잡히시겠죠?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아직 경악할만한 일이 두 번 더 남아 있습니다. 첫 단편 안에서만 말이죠. 이러니 더욱 달리 볼 수 없겠죠? 소네 게이스케는 일본을 한 마디로 'PAINT IT BLACK' 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한 인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처음 그 인물은 언뜻 일말의 희망 같은 존재로 보이는데 소설이 진행될 수록 우리는 그와 반대되는 진실을 확인합니다. 유일하게 앞에서 길을 비추던 반딧불이 홀연히 사라지고 마주하는 것은 막막한 어둠. 광기가 아니고서는 그 진실을 버텨낼 수 없는 상황. 저는 이것이 바로 '암살자닷컴'이 우리들에게 재현하는 세계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후쿠시마 대참사 이후의 일본의 모습으로 말이죠.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현재와 미래는 밝다면서 온갖 매체들을 통하여 긍정과 '간바레~'를 주입하려는 일본 정부와 얼마나 다른 모습인가요? 정직하게 응시하고 용감하게 발언한다는 점에서 전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군요. 이야기 자체도 재밌어서 더욱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대야'과 같이 읽어보시면 소네 게이스케가 어떤 작가인가 하는 게 보다 더 감이 잡히실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