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는 정신분석 - 노답 한국 사회의 증상 읽기 우리 시대의 질문 4
김서영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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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은 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개인을 제대로 정신분석 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은 그릇 속 물과 같아서 사회가 흔들리면서 만들어내는 파동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라캉은 이미 주체라는 것 자체가 '대타자'라는 상징 질서 안에 편입되면 더 이상 주체로써 기능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사회 속 '나'라는 주체는 사회가 짜놓은 의미망 위에 찍어 놓은 하나의 좌표와 같다. 그러니 그 좌표만 분석해서는 지금 개인의 처지가 어떠한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진정한 해석은 오로지 그 좌표가 찍혀 있는 지도 전체를 헤아려야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사회에 대해서 정신분석을 해야 한다. 이번에 나온 '헬조선에는 정신분석'은 바로 이렇게 현재 한국 사회의 중요한 병리적 증상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정신 분석을 해 보는 책이다.


 원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연재된 것을 모은 책으로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 소속 9명의 학자들이 각자 쓴 9개의 글들이 모여있다. 저마다 다루는 사회 현상이 다르다. 백상현은 최근 들어 한껏 늘어난 멘토 의존 경향을 다루고, 김소연은 공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 현상을 다루며, 이성민은 한국에서만 유독 엄격하게 자리잡은 선후배 관계를 초점으로 한국 특유의 수직적 관계를 분석하며, 정지은은 오포세대에 들어와 달라져 버린 결혼과 사랑의 의미를 정신분석적으로 되짚는다. 정경훈은 날로 극심해지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를 분석하며 김석은 현재 한국을 가장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돈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그리고 이만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혐오와 폭력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홍준기는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세대 갈등과 한껏 높아져만 가는 불안 속에서 추구해야 할 사회적 대안을 모색하며 마지막으로 김서영은 이런 '헬조선'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각 글마다 분석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가 살면서 피부로 부딪히는 것들로 알고 보면 우리 역시 한 번은 이유나 가치 판단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다. 그렇기에 라깡이나 바디우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인용되고 이론들이 전개되지만 거기에 별로 개의치 않고 살갑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서술이 평이하기에 이해에 요구되는 허들이 그리 높지 않지만 말이다. 이런 글들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달리 보기'라 말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의 예로 멘토 열풍에 대해 분석한 첫 글은, 지그문트 바우만도 사람들이 삶에 대해 느끼는 불안과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기 보다 누군가 대신 선택을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에 기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한 바 있는데, 이 글 역시 비슷한 논지에서 오히려 불안과 우울이야 말로 진정한 주체가 탄생하는 장소라고 말하면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자주 나타나는 텅 빈 풍경을 그 공간의 예로 든다. 사람들은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은 '해당 사회의 지식과 권위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p. 20)하며 '진리의 순간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던 정체성의 지식들이 우리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장악하는 데 실패한 순간, 이러한 초과에 대해 우리 자신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파악하려는 시도 속에서 실현'(p. 27)되며 그러므로 불안과 우울 그리고 공포 증상을 통한 내 정체성 붕괴의 경험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실은 시작(p. 31)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텅 빈 시간 속에 고독하게 내버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그 때문에 더욱 기댈 멘토를 찾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 시간과 공간은 진정한 주체가 되기 위해 환영해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평소 우리가 근절하고 싶었던 불안, 우울 그리고 공포가 가진 긍정적 면모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지식과 해야 할 공부는 오로지 내 주체를 길들이거나 위축시킬뿐인 사회의 지식과 권위의 잔여물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횡단하여 내재된 균열이나 그것이 미처 당도하지 못한 외부의 것들이며 진리를 주장하는 그들의 기만에 찬 가면을 벗길 수 있는 계보들에 대한 것이다. 바로 그것을 정신분석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정신분석이라는 조금은 색다른 도구로 그간 익숙한 한국 사회 문제들에 대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도록 하기에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 책은, 지금 '헬조선'에 누벼져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보았다면 꼭 읽어볼 것을 감히 추천드리고 싶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는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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