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갈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3
사쿠라기 시노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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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책이 있다. 한 번 읽게 되면 굉장히 재밌는 것은 아닌데 어쩐지 중도에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책이. 사쿠라기 시노의 '유리 갈대'가 그랬다. 왜일까? 끝까지 읽으면서도 이유는 잘 알 수 없었다. 뭔가 독특한 분위기 탓일까? 어쨌든 이 소설 상당히 음습하다. 세인의 상식 같은 것은 가볍게 뛰어 넘는다. 이제 갓 서른이 된 여성 세쓰코는 고다 기이치로라는 육십대 노인의 아내다. 머릿속으로 남편과 아내의 나이차를 계산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비교도 안될 만큼 더 놀라운 사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고다 기이치로는 원래 세쓰코 엄마의 애인이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엄마의 정부로 있었던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그와 관계를 가졌다. 그렇다고 세쓰코가 남편에게만 충실한 여자도 아니다. 다른 남자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첫 직장이었던 회계 사무실의 운영자 사와키. 그녀는 자주 사와키에게 안긴다. 하지만 남편에게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문득 유하 감독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떠오른다. 세쓰코는 그 영화에서 엄정화가 분했던 캐릭터와 비슷하다. 그녀는 불륜의 상대인 감우성이 분한 남자가 이렇게 두 집 살림 하는 거 괜찮은 거야? 하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아. 그냥 조금 더 바쁘게 산다는 느낌 뿐이야." 세쓰코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남편과의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 돈을 매개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남편 기이치로가 뭔저 권했다. 스물 셋의 세쓰코에게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살도록 해 줄테니 자신과 결혼하자고 했던 것이다. 그는 객실이 열 두 개인 모텔 '호텔 로열'의 사장이었다. 세쓰코는 결국 노인의 아내가 되었고 그 대가로 여유와 안정을 얻었다. 세쓰코에겐 유일하게 즐기는 취미가 있다. 바로 단가다. 그녀는 마을의 단가 짓는 모임에 다니고 있다. 남편의 종용에 자신이 지은 단가를 모은 책도 하나 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유리 갈대'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유리 갈대'란 제목을 가진 단가는 이러하다.


 축축한 땅 위 도도하게 선 저 유리 갈대. 대롱 속에는 바슬바슬 모래가 흘러가네. (p. 44)


 단가의 앞 부분은 그대로 소설의 비유 같다. 세쓰코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이야기의 세계란 정말로 축축한 땅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음습하게 축축하다. 일단 남편이 세쓰코가 사와키에게 안긴 날, 교통 사고를 당해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다. 내리막길 커브를 직진으로 달렸다고 한다. 세쓰코는 남편을 병문안 온 엄마를, 엄마가 운영하는 가게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거기서 실은 남편이 여기서 엄마를 만나고 돌아가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사실을 추궁하자,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와 결혼한 뒤에도 우리 사이는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었어!'


 그건 그렇고, 세쓰코는 남편이 사경을 헤매게 되자 남편이 죽기 전에 집을 나가버린 전처의 딸 고즈에와 만나게 해주려 한다. 사와키를 시켜 고즈에를 찾고 보니 고즈에는 생계가 궁지에 몰려 대마를 키우고 파는 일을 거들고 있다. 세쓰코는 고즈에에게 당장 그것을 그만두라고 하며 앞으로 생활비 일체는 자신이 담당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아직 축축한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세쓰코의 단가 모임 중에 미츠코라는 여인이 있다. 그녀에겐 남편과 마유미라는 일곱 살의 딸이 있는데, 하루는 미츠코가 세쓰코에게 딸을 맡기고 사라져 버린다. 알고 보니 딸 마유미는 아빠 그러니까 미츠코의 남편에게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미츠코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세쓰코에게 맡긴 것이었다. 세쓰코는 마유미를 고즈에에게 돌보게 한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축축한 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세쓰코는 꿋꿋하게 버텨내려 한다. 해야 할 일은 하고 맡아야 할 책임은 도맡으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지 않고 굴러가도록 만든다. 쓰러지지 않는 도도한 갈대처럼. 그래서 유리 갈대는 세쓰코 자신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그녀를 흔들어대는 바람을 쉬이 그칠 줄 모른다. 더 기막힌 사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은 남편이 6개월도 채 살지 못하는 시한부 생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내리막길의 커브를 직진한 것도 자살하려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붕괴는 이미 막을 수 없다. 마유미의 가족이 그랬듯, 벌써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버린 것이다. 이 소설이 세쓰코가 불에 타 죽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녀에게 남은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그녀가 축축한 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애초부터 그녀의 삶은 그녀가 쓴 단가처럼 끝없는 유리관을 흐르는 모래 소리처럼 말라 비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이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그녀의 엄마 리쓰코에게 있었다. 엄마 리쓰코는 세쓰코에게 이런 삶을 내내 선사했던 것이다.


 "난 네 엄마가 될 수 없다고 처음부터 포기했어. 열다섯 살 나이에 엄마를 떠났기도 하고. 우리 엄마도 멀쩡한 엄마가 아니었거든. 시도 때도 없이 남자 출입이 끊이지 않았어. 동시에 양다리, 세다리 걸치고. 어쩌면 더 있었을지도 몰라. 술집을 하는 건지 매춘을 하는 건지. 내가 집에 들락거리는 남자들에게 당하는 걸 보고 못 본 척하는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돈까지 가로챘던 여자야. 딸을 쓰러뜨리는 남자 뒤에서 끝날 때까지 보고 있었어. 그래서 열다섯 살에 바로 집을 나와버렸어. 이런 내가 엄마인 척하면 너도 싫었을 거야."(p. 142 ~ 143)


 이토록 커다란 과거의 상처를 지닌 자가 어떻게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딱 하나, 과거와의 진정한 결별 뿐이다. 정녕 과거를 딛고 전혀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소설의 처음이 그녀의 죽음인지도 모른다. 불새처럼 죽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는. 소설은 그런 순간을 준비한다. 이 소설엔 이상한 연대가 있다. 부모 세대로부터 갖은 상처를 받은 자들이 그 상처를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연대가. 자신의 상처를 꾸미지 않고 진솔하게 드러내어 같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진정한 소통으로 만들어지는 연대가. 그것이 마유미를 떠 안은 고즈에의 집에서, 그리고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는 반전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유리 갈대'는 파격의 소설이다. 이런 내용의 소설에 흔히 나오는 용서라든가 화해 같은 건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대신 '유리 갈대'는 '썩은 것은 붕괴되어야 한다'고, '완전히 절멸시킨 뒤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소설엔 당신을 섬뜩하게 만드는 순간이 두 번 존재한다. 바로 그 순간에 소설은 진심을 내비친다. '당신도 이런 삶을 살고 있어? 그러면 끝내! 그 용기를 내가 빌려주겠어.'라고. 이것은 남성과 여성 관계에도 통용된다. 왜냐하면 소설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소설 세계에서 남성은 지배자로 군림한다. 여성은 그들의 세계에 종속되어 신체와 영혼에 지속적으로 새겨지는 아픔을 감내한다. 소설 속 남성들은 때로는 자비 없는 폭력을 또 때로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지만 주체인 여성들을 여전히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똑같다. 여성들은 늘 식민지로 존재한다. 소설은 그들의 독립은 그들 스스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그녀들은 남성들의 식민지를 탈주하여 진정한 주체가 되어 강고한 연대로 독립과 자유의 영토를 만들고 꾸려 나간다. 아마도 내가 끝까지 소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이 정도로 단호하고 굳건한 의지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리 갈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네 번째로 소개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이다. 난 이것 말고 '아무도 없는 밤에 피는'만 읽었는데 그 단편집을 읽었을 때도 이 작가 뭔가 심상치 않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유리 갈대'를 읽은 지금은 이 작가가 거의 기리노 나쓰오 급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사쿠라기 시노나 기리노 나쓰오 모두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에 평범한 주부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설이 가진 파격이나 전복성을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영유하던 주부가 이력의 전부라는 게 얼른 믿겨지지 않는다. 공포 만화가로 유명한 이토 준지는 언젠가 자신을 가장 무섭게 만드는 것은 일본 여성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기리노 나쓰오에 이어 사쿠라기 시노까지 만나고 보니, 왠지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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