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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와 느린 춤을 - 아주 사적인 알츠하이머의 기록
메릴 코머 지음, 윤진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살면서 사람은 이런저런 많은 타격을 받기 마련이지만, 치매는 그 중에서도 가장 둔중한 타격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한 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기억을 온전히 그대로 가진 채로 육신이 죽는 것과 육신은 비록 살아있더라도 자신을 포함하여 살면서 가진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중에 어느 게 더 나을까 하고. 문득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거기서 인위적으로 규정된 수명이 다해, 자신을 만든 사람을 찾아 수명을 늘리려 지구에 잠입한 안드로이드 룻거 하우어는 결국 그 일을 실패하고 수명이 다해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 좌의 어깨 위에서 불을 뿜던 공격함들.
탄호이저 게이트 근처 암흑에서 명멸하던 C 광선 하며.
하지만 이제 모두 사라지겠지.
빗 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블레이드 러너'에서 기억은 정체성을 의미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기억을 통해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별하는 장면을 통해 그것을 나타낸다. 기억을 잃는 것. 그것은 곧 자신을 잃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치매는 육신은 살았어도 정신적으론 이미 죽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품위라는 게 있다. 노년의 품위란 살아온 모든 것이 어디에 이르렀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식이다. 치매는 그것을 스스로 파괴시킨다. 정말 점잖고 반듯하게 살아와 누구에게나 존경받던 사람이 치매에 걸리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연거푸 내뱉고 주위 사람들에게 폭력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등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몇 번 목격한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나는 죽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기억을 가진 채로 죽고 싶다. 부디 내가 아닌 다른 나가 되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운명은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찾아온다.
미국의 하비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저명한 과학자였고 미국국립보건원의 유능한 의사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미국에서 68초마다 한 명 생긴다는 알츠하이머가 찾아오고 말았다. 그것도 아직은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인 56세라는 이른 나이에 그만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만 것이다. 치매와 알츠하이머는 약간 다르다. 치매는 정신 질환만 있지만, 알츠하이머는 신체까지 영향 받는다. 몸을 거의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알츠하이머는 치매의 하위 범주로 들어간다. 그토록 자신의 삶을 잘 통제하던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리자마자 차츰 통제가 무너지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잇단 폭언을 일삼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식의 결혼식 날, 축사를 읊는 자리에서 그것과 아무 상관도 없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주구장창 늘어놓아 하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렇게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가 계속되고 결국 직장에서도 밀려나 집에만 있게 된다. 그 후로 20년 동안 내내.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계속 돌본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아내, 메릴 코머다. 그녀로선 정말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하비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을 때는 메릴이 그와 재혼한지(하비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점점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 아니게 되는 그를 헌신적으로 돌본다. 호전의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고 내내 낯선 사람이 되는 그와 아주 오랜 시간을. 메릴 코머는 그 시간을 한 권의 수기로 발간했다. 그것이 바로 이 책 '낯선 이와 느린 춤을'이며, 제목은 그렇게 절로 지어지게 되었다.
나도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치매를 돌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정보가 부족하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치매에 걸린다는 것은 살면서 당하는 가장 낯설고 황망하기 그지 없는 경험이라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쩔쩔매게 되는데, 더구나 치매의 증상도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기에 그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메릴 코머도 비슷했다. 그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내 서가에는 치매 환자 돌보기에 관한 책들이 잔뜩 꽂혀 있지만 정작 내게 필요한 정보는 항상 책에서 빠져 있다. 환자의 두뇌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고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 나는 치매 환자를 돌볼 때 공통되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p. 16)
그녀가 이 수기를 쓰게 된 이유도 아마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이 책에 하비가 알츠하이머에 걸린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모든 과정을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상세하고 정확하고 기록했는데, 이것은 분명 치매 환자를 돌보는 미국의 1천 5백만 명의 보호자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수기에서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정말 동의하는 것이지만, 메릴 코머의 말대로 보호자 역시 치매의 간접 희생자로, 사회적 보호의 대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본다.
나이가 많든 적든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는 뇌 질환, 충격에 따른 뇌 손상, 기억력 감퇴로 인한 만성 질환 등에 시달린다. 보호자는 치매 환자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다.(p. 19)
하지만 우리 사회는 치매 환자도, 그 보호자도 오로지 가족의 문제로 국한시키고만 있다. 그래서 짊어지게 되는 생계를 위협할 정도의 비용 부담, 가족 생활의 파괴와 해체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이의 수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 혹은 그녀가 받고 있는 돌봄으로 인한 고통을 사회에 환기시켜 그 보호를 위해 필요한 움직임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게는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 상당히 편치 않은 독서였다. 치매는 정말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그 무서움을 옆에서 그걸 함께 지켜본 자만이 안다는 게 문제다. 지근 거리에서 치매 환자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치매는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니 혼자 치매 환자를 돌보며 고생하는 이에게 '어쩌겠어, 그게 자식된 도리인 걸. 자네가 참아야지.'와 같은 말을 참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며, 그저 개인이 감수할 문제로 치환할 뿐, 사회적으로 널리 공론화 되지도 않는 것이다. 치매 환자가 갈수록 늘어나 이제는 정말 사회 차원에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었는 데도 말이다. 메릴 코머의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언제까지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둘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직장일과 간병을 곡예하듯 병행하다가, 경력을 포기하고 시간제 일자리를 찾고, 어쩔 수 없이 조기에 퇴직을 하고, 스스로의 노후 준비를 위험에 빠뜨린다. 우리 중 누구도 자기자신을 순교자나 이타적인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우리가 돌보고 있는 가족은 어떻게 될 것인가? (p. 245)
치매 환자도 문제지만 보호자가 당하는 고통과 삶의 위험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나는 메릴 코머의 이 책이 사람들에게 읽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치매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정말 한 개인이 짊어지기엔 너무나 큰 짐이다. 최근엔 민간 요양소도 많이 늘어났다지만, 여전히 그 곳에 보내는 게 부담이 되는 가정도 많다. 정보도 부족하고 늘 우왕좌왕 하다가 치매 증상이 악화되거나 보호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잘 이해되거나 소통되지 않아서 아니 되었을 수도 있었던 가정 붕괴가 일어나는 경우도 잦다. 국가 차원에서 치매 환자의 관리와 보호자들의 보호가 정녕 시급한 시점이다. 이 책 때문에라도 많은 분들이 문제에 통감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