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볼커 이야기 - 유전체 의학의 불씨를 당기다
마크 존슨.케이틀린 갤러 지음, 금창원 외 옮김, 서정선 감수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최근 유전체 의학이 차세대 의학의 주류 트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의학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암환자의 경우, 환자가 가진 유전자에 따라 양상도 여러가지이고, 치료 방법도 달라진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유전체 의학은 더욱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여기엔 외부 요인, 즉 DNA 염기 서열 분석 기술의 발달로 유전체 분석의 정확도와 속도 그리고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양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반면 들어가는 비용은 격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3년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처음으로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발견한 이후로, 유전자는 인간의 생명과 존재가 가진 신비를 풀 열쇠로 간주되어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유전자를 해독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다 1977년, 영국과 미국 학자들에 의해 유전자 해독법이 처음으로 고안되었고 1990년, 마침내 정부 주도로 인간이 가진 모든 유전자의 지도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2003년, 드디어 32억개로 이루어진 한 인간의 전체 게놈이 완성된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번째 인간 게놈 해독을 위해 걸린 시간은 7년이었고, 수 백 대의 분석 기계들이 동원되어야했으며, 여기에 들어간 총 비용만 해도 무려 27억 달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고 많은 기계를 동원할 필요도 없다. 비용 역시 천 달러 정도로 분석 가능하도록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유전체 의학은 특히나 스마트 환경과 맞물려 한층 더 각광받고 있다.


 앞으로 더 분석 기술이 발달하고, 비용이 저렴해지면 스마트 폰의 앱만으로도 한 인간의 유전자 분석이 가능해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분석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의 진단을 받을 필요 없이 앱 자체가 질병의 관리와 치료 방법을 내놓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손 안의 의사'도 불가능 하지 않다. 하지만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었을 때조차 이런 유전체 의학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이 없었다. 한 인간의 유전자 분석이 실제 치료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오늘날과 같은 유전체 의학의 부흥을 가져온 것은 한 소년 때문이었다.



 그 소년의 이름이 바로 니콜라스 볼커다.


 그에겐 병이 있었다. 스테이크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소년의 내장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작은 연필 막대 같은 구멍이 생겼기 때문이다.'(p.23) 2년 동안 많은 의사들이 달려들어 소년의 병을 연구했지만 발병의 정확한 이유도, 치료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닉의 병은 흡사 인간 의학에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로 보였다. 닉의 담당의 메이어는 닉의 질병이 마치 용과 같다고 생각했다.


 '병은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파괴적이었다. 자신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었더라면 그런 질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 같았다. 자신의 모든 의학 기술을 동원해 용을 겨우 달래서 일시적인 수면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 가라앉고 있는 배에서 물을 퍼내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배가 계속 떠 있게 할수는 있지만 물이 어디서 새고 있는지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p. 151)


 그런 닉은 혈액 주사를 통해 직접 영양분을 공급 받으며 하루하루 죽음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유전자 분석이었다. 메이어는 닉이 가진 유전자의 결함으로 생겨난 병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쨌든 그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최후의 복안이었다. 그래서 메이어는 당시 최고의 유전체 서열 해독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하워드 제이콥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 때만 해도 유전체 서열 해독 기술이 실제 의학에 사용될 수 있는지 확실치 않았었다. 제이콥은 의사가 아니었다. 그저 생리학을 전공하고 쥐를 가지고 유전자 서열 해독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하지만 제이콥은 닉의 엄마 애밀린이 블로그에 쓴 일기를 읽고, 자신 역시 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닉과 부모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여 결국 닉의 유전체 서열을 분석하기로 결정한다. 그에겐 워디란 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원래 시애틀생명의학연구소에 있다가 일년 전, 면접에서 제이콥이 2014년부터 아픈 아이들의 DNA 염기 해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 말에 감명 받아 제이콥이 있는 위스콘신 의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닉의 해독은 원래 계획 보다 5년이나 앞당겨진 것이었지만 제이콥과 함께 과감히 뛰어들었다.


제이콥은 워디에게 때가 왔다고 얘기했다. 의사들의 손발을 들게 한 치명적인 질병에 고통받은 끝에, 오직 게놈 해독만이 운명을 바꿔줄 수 있는 환자가 눈앞에 있다.(p. 164)


  워디에겐 희망이 있었다. 닉이 가진 병의 초기 증상은 근본적으로 너무 낯설고 불가사의하며 위협적이라 분명 유전적인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그리고 만일 정말 그렇다면 반드시 닉의 30억개 유전체 서열에 무언가 나타나게 되리라 믿었다. 그녀는 표준 게놈 서열과 닉의 게놈 서열을 비교했다. 표준 게놈이란 '무엇이 정상적인 사람의 게놈인지 그 기준을 알려주고, 질병을 가진 사람의 게놈과 비교하여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p. 168)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범 답안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표준 게놈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고작 28명의 게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28명 모두가 알려진 희귀 질환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를 위한 출발점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표준 게놈이 있다고 해도 어려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가진 DNA는 모두 32억개. 이것들을 소수의 사람이 소수의 도구들만 가지고 전부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워디는 인간 행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는 엑솜(exome)에 집중했다. 이 엑솜은 전체 게놈 중 1.2%에 지나지 않기에 분석하기에 훨씬 유용하다. 더구나 '상당수 유전 질환이 단백질 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닉의 병 역시 엑솜의 어떤 부위에서 기인'(p. 172)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티스푼 정도의 혈액에서 닉이 가진 병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그 혈액은 DNA로 축소되고,  DNA는 엑손(exon), 액손은 염기 서열의 구성 문자인 A(아데닌),C(사이토신),G(구아닌),T(티아민)로 환원되었다. 하지만 모든 걸 기계가 하지 않았다. 유전자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의 기본 단위인 백혈구의 핵을 뚫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 그렇게 분석되었다. 물론 그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 2009년 10월, 닉의 유전자는 다섯 번째로 해독되었고, 그 결과 16,000개에서 32개로 변이 유전자의 후보를 좁힐 수 있었다. 그것들을 대상으로 워디와 동료들이 직접 개발한 분석 프로그램인 '카르페 노보'를 사용한 끝에, 결국 병을 일으킨 유전자를 찾아내었다. 범인은 바로 XIAP였다.


 XIAP에 문제가 생기면 면역체계가 좋은 균과 나쁜 균을 구분하는 능력에 이상이 생겼다. XIAP의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XIAP 단백질 생산이 줄었다. 닉의 백혈구는 필요한 XIAP 단백질의 60%만 가지고 일하고 있었다. 닉의 몸 속에서 일어난 대혼란은 32억개의 DNA 염기서열 중 단 하나의 염기가 잘못된 염기로 치환되는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잘못된 염기를 바로 잡아야했다. 그러자면 골수 이식밖에 없었다. 결국 닉은 골수이식을 받게 되었고, 생명과 건강한 삶을 되찾았다.


 이렇게 니콜라스 볼커는 당시까지만 해도 반신반의의 대상이었던 거대 게놈 프로젝트과 의학의 연결을 현실적으로 확인시켜 준 계기였다. 이 치료의 성공으로 오늘날과 같은 스포트라이트가 유전체 의학에 비로소 비춰졌던 것이다. '니콜라스 볼커 이야기'는 이 과정을 굉장히 상세하고 충실하게 담고 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니콜라스 볼커의 병을 씨줄로 하여 유전체 의학의 등장과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날줄로 잘 누벼놓았기 때문에 유전체 의학의 전모마저 잘 살벼볼 수 있게 해 준다. 유전체 의학이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셨던 분들이라면 정말 좋은 안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곧 입시철이다. 지금 중3들은 과학고 지원으로 한창 바쁠 때다. 그러고 보니, 요즘 과학고에선 아예 모집 공고를 낼 때부터 의대 갈 학생들을 지원하지 말라고 직접 써 둔다고 한다. 의대 진학을 위해 과학고를 이용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전체 의학이 지금의 의학 패러다임을 많이 바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유전체 의학이 상용화되면 의사에 대한 수요는 지금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자동 수술 기계도 정녕 꿈만은 아닌 것 같으니. 그러므로 기술로 대체 가능한 의사가 되기 보다는 그 기술 자체를 만들어내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진다. 미래의 직업은 보다 더 많이 알 때, 더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다. 학생이라면 교과서만이 아니라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더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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