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전환점이 된 일란성쌍둥이에 관한 기록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알마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하나의 성이 '섹슈얼리티'와 '젠더'로 나뉘어져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된 건,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기 기든스가 쓴 '현대 사회학'이란 책에서였다. 대학 신입생 때였는데, 전공은 아니지만 사회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사회학 전공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책을 가장 많이 본다 하여 읽게 된 책이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인간의 성(sex) 을 태어나면서 가지게 되는 자연적인 '섹슈얼리티(sexuality)'와 한 개인이 사회화되면서 가지게 되는 인위적인 '젠더(gender)'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누게 된 가장 대표적인 계기로 기든스가 말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서 소개할 존 콜라핀토의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데이비드 라이머 케이스'이다.



 데이비드 라이머는 1965년 8월 22일, 예정일을 4주 앞두고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났다. 부모는 둘에게 브루스와 브라이언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생후 7개월로 접어 들었을 때, 두 아이 모두 소변 할 때마다 칭얼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성기를 살펴보니, 포피가 성기 끝 부분을 막아 소변 보는 걸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병원에서 포경 수술로 간단히 치료할 수 있다고 하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은 말처럼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 않았다. 브루스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전류로 절단 부분을 지져서 봉합하는 기구('보비 소작기'라고 한다.)를 썼는데, 의사의 실수인지 아니면 기계의 고장인지 그만 브루스의 성기가 타버린 것이다. 아이는 평생 성적 불능이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부부에게 머니 박사라는 사람이 연락을 해왔다. 그는 존스홉킨스대학의 저명한 의학 교수였다. 특히 성 심리학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그는 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데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반음양 환자들이 총계를 놓고 보았을 때, 남성이건 여성이건 성 행태와 성 지향성을 본능적으로 타고나지는 않는다.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은 선천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이 있지만, 반음양 환자들을 관찰한 결과 알 수 있듯이, 심리학적으로 볼 때 출생 당시 중립적이었던 섹슈얼리티는 성장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성적인 쪽으로 혹은 여성적인 쪽으로 차별화되기 시작한다."(p. 59)


 그래서 부부에게 브루스를 성전환시키고 아예 여자로 기를 것을 제안했다. 결국 부부는 머니 박사의 뜻을 따랐고, 브루스는 브렌다로 자라게 되었다. 하지만 머니 박사가 순수하게 브루스를 위하여 이런 일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겐 야심이 있었다. 자신이 적극 주장하고 있는 '후천적 성 형성론'이 진리인 것을 입증하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같은 성을 가진 일란성쌍둥이는 좋은 표본이었다. 그렇게 태어나 인위적으로 한 쪽은 남자로, 다른 한 쪽은 여자로 만들고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자라게 된다면 그것만큼 자신의 이론을 강력하게 증명하는 것도 또 없었다. 브루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머니 박사는 쾌재를 불렀다. 그가 먼저 브루수의 부모에게 연락하여 당장 존스홉킨스대학으로 데려오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브루스는 정말 브렌다로 자라났다. 아이는 아무 거리낌없이 여자 옷을 입었고 여자처럼 행동했으며 생일 선물도 브라이언은 기차를 골랐는데 자신은 인형을 골랐다. 브렌다는 성이 사회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삽시간에 이 사실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그래서 사회학의 가장 대표적인 개론서라 할 수 있는 기든스의 책에까지 실리게 되었다. 머니 박사의 명성까지 한없이 높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브루스와 브렌다에 관한 모든 것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그 뒤, 브렌다가 된 브루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니 그렇게 알려지기 전이라도 브루스가 진실로 브렌다의 삶을 받아들였는지, 그 정확한 내막과 소식이 알려진 바 없었다. 그러다 우리는 1997년에 화와이대학의 생물학자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한 정신과 의사가 발표한 논문에서 아주 놀랄만한 사실을 알게 된다. 브루스가 처음부터 자신에게 강제된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에 계속 반발해 왔으며 결국 열 네살 때 다시 남성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논문은 머니 박사의 실험은 실패라고 단정했다. 우리가 진실로 알고 있었던 '쌍둥이 케이스'는 '공상 의학 게임'일 뿐이라고. 그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이 책의 작가 존 클라핀토는 직접 당사자를 찾아갔다. 현재 그는 논문에서 말한 그대로 남자 청년이 되어 있었고 이름도 브렌다에서 데이비드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는 브렌다의 삶에 대해 이렇게 한 마디로 정의내렸다.


 "세뇌 당한 거나 다름 없어요.(p. 11) 


 브렌다는 가장 유명한 아이 중 하나였다. '젠더'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사례의 장본인인 만큼 누구나 브렌다를 알았다. 하지만 그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존재이기도 했다. 아무도 그렇게 살아가는 그의 내면을 알려 하지 않았다. 언제나 이상한 나라에 사는 것과 같았던 그의 실존, 그 내면에 자리한 고통은 누구의 관심도 끌 수 없었다. 그는 그냥 머니 박사가 만든 브렌다란 껍데기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저자 존 클라핀토는 그 껍질을 깨고, 데이비드가 되기까지의 진정한 알맹이의 삶을 보여주려 한다. 숨김없이, 남김없이. 그리고 우리는 똑똑히 보게 된다. 제아무리 객관적이라 자부하는 과학이라 해도 얼마나 쉽게 왜곡되고 잘못도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또 그런 과학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유린할 수 있는지. 문득 칼 포퍼가 말한, 과학에 있어 진정한 객관적 지식의 의미가 생각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 및 과학적 객관성은 과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객관적'이고자 하는 개인적 노력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들의 우호적-적대적 협동에서 유래하는 것이다.('열린 사회의 적들' 중에서.)


 머니 박사의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과학자들이 집단적으로 '브렌다 케이스'를 검증했다면, 브렌다의 고통은 훨씬 빨리 줄어들지 않았을까? 피해자가 비단 브렌다만은 아니었기에 더욱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 뒤로도 많은 이들이 이 '브렌다 케이스' 때문에 머니 박사와 그의 이론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전환을 당하고 강제적으로 규정 당한 성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문자 그대로 그들은 폭력의 희생양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한 사람의 정체성을 남이 멋대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폭력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게 성 정체성적으로 단 두 개의 삶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 책에서 똑똑히 볼 수 있다. 머니 박사가 남성 아니면 여성의 삶밖에 없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만 할 수 있어서도 브렌다와 같은 많은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여기서 아무래도 쥬디스 버틀러의 수행적 정체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정체성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행동을 통해 부단히 형성된다고 말했다. 식물처럼 남성이나 여성으로 대지에 고정되어 그렇게만 자라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광활한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바람처럼 어디에나 깃들 수 있는 것이며 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브렌다에게 여성의 삶만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설령 성기를 잃어버렸다 한들,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삶의 과정을 배려하며 그만이 가진 가능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오늘의 데이비드가 훨씬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사람의 성은 신비롭다.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는 그걸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더하여, 한 사람을 대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넌지시 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늘 세심하게 살피고 진중하게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은연 중에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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