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조커 명탐정 오토노 준의 사건 수첩
기타야마 다케쿠니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클락성 살인사건'으로 24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 기타야마 다케쿠니.

 '춤추는 조커'는 '클락성 살인사건', '인어공주'에 이어 국내에 세 번째로 소개되는 그의 작품이다. 일단 부제에 주목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춤추는 조커'의 부제는 우리나라엔 안 쓰고, 일본에만 썼는지 표지에는 없고 저작권을 표시하는 부분에 영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THE ADVENTURE OF THE WEAKEST DETECTIVE'


 하하! 세상에서 가장 약한 탐정이라니! 과연 어떤 탐정일까 궁금해 뒷 페이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출판사는 이렇게 눈길을 끄는 부제를 왜 채택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독자들이 이런 부제를 보면, '뭐야, 세상에서 가장 약한 탐정의 이야기라고? 그렇다면 굳이 읽어 볼 필요는 없겠군.' 하고 무시해 버릴까 봐 걱정된 것일까? 그런 것이 일반적 감성이라면, 이런 점에 오히려 강한 흥미를 느끼는 나는 좀 별난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부제가 꽤 중요하다고 본다. 소설의 주인공 명탐정 오토노 준의 대체불가능한 개성을 간단명료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부제가 '셜록 홈즈의 모험'이라는 홈즈의 실제 소설 제목을 패러디하고 있으므로 셜록과 비교해 본다면 오토노 준, 그는 명석한 추리를 제외하고는 셜록과 정반대인 사람이다. 대놓고 왓슨을 '원숭이 머리'라 타박하며 아무리 의뢰인이 눈물로 호소해도 자신의 지적 흥미를 자극할만큼 난해한 수수께끼가 아니면 무시하는, 그야말로 오만과 독선의 결정체라 할 만한 셜록과 달리 오토노 준은 오히려 자신의 지적 능력이 수수께끼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 두려워 하고 성격도 무지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다.


  "이, 이 사건은... 제가 반드시...

   해, 해결..... 하..... 할지도 모르겠어요...."(p. 26)


 사건을 해결해도 자신이 가진 능력 상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셜록과 다르게 그저 운이 좋아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준은 유명세가 싫어서 해결의 공적마저 공식적으론 경찰에게 다 돌려 버린다.(이와 비슷한 남자를 최근에 보았는데, M.C 비턴의 해매시 멕베스다. 그도 언제나 자신이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지만, 그것이 상부에 알려져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시골 마을의 경찰서를 떠나게 될까 봐 재수 없는 중앙 경찰 상사에게 공적을 돌려 버린다. 유명세가 광범위한 욕망이 된 현재인지라, 그것을 거부하고 소박한 자신만의 세계에 안주하는 이들이 반갑다.) 그래서 존재감도 셜록과 극과 극이다. 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좌중의 이목을 단번에 사로잡는, 그렇게 존재감 하나만은 '엄지 척!' 하게 되는 셜록과 달리 준은 사람들이 왔는지 안 왔는지 조차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참으로 한없이 엷다. 소설에서 화자이자 왓슨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나'와 단 둘이 서 있으면 대부분 오토노가 아니라 '나'를 탐정으로 여긴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추리를 설명할 때조차 그는 '나'의 등 뒤에서 말하는 남자인 것이다.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탐정을 해?' 하는 의문이 자연히 들 것이다. 당연히 탐정 일을 하게 된 것도 자의가 아니었다. 준의 탐정으로서의 출중한 능력을 알아 본 '나'가 준이 한사코 싫다고 하는 데도 억지로 탐정 일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 정도라면, 과히 'THE ADVENTURE OF THE WEAKEST DETECTIVE'라고 불러도 그리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런 준이 '나'에 떠밀려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모두 다섯 편 담겨 있다. 맞다. '춤추는 조커'는 단편집이다. '클락성 살인 사건'을 읽어 본 독자라면 키타야마 다케쿠니의 트릭이 물리와 과학적 사실에 철저히 천착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여기에 실린 다섯 편의 트릭도 마찬가지다. 범죄는 하나같이 초현실적이고 불가능의 범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의 물리적 법칙에 어긋나거나, 뛰어넘는 것은 없다. 자신의 지혜로 오토노 준과 정정당당하게 결자웅(決雌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탐정이란 존재의 독특함과 공명정대한 승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춤추는 조커'는 한 번 즐겨볼만한 작품이다. 이야기 자체도 무겁지 않고, 살인은 있지만 잔인한 묘사는 별로 없으므로 더욱 부담없이 말이다.


 누군가는 오토노 준이 셜록과 정반대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거, 셜록을 염두에 두고 그것과 정반대의 캐릭터를 창조하려 한 거구만!'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클락성 살인 사건'을 읽어보면 작가가 꾸준히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클라성 살인사건'의 경우엔 주인공 미키와 함께 다니는 소녀, '나미'가 있다. 그녀는 미키 보다 훨씬 뛰어난 추리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존재감이 거의 '0'에 가깝다. 캐릭터가 오토노 준처럼 의기소침 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녀는 실제로 실체가 없다.(이것이 혹시 그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독자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부터 나미가 어쩌면 유령이 아닐까 할 정도로 뭔가 이상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라 본다. 그래서 나미가 유령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은 소설 중반에 가서야 밝혀지지만, 지금 이야기의 전개상 필요해서 언급해 버린 것임을 양해해 주시길.) 그래서 미키와 나미의 관계는 마치 육체와 의식(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인 '게슈탈트'와 같은)의 관계로도 보인다. 


두 번째 소개된 '인어공주'도 그러하다. 나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래 '인어 공주' 자체가 존재감이 없는 존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인 것을 감안하면, 분명 이 소설에도 이런 캐릭터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다케쿠니는 자신의 작품마다 항상 존재감이 없는 캐릭터를 누벼왔다. 오토노 준은 그 흐름에 있는, 또 한 번의 변주인 것이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다케쿠니, 그는 왜 반복해서 이런 존재감이 없는 존재들을 삽입하는가? 이들의 존재는 너무나 투명해서, 마치 이들의 원조인 나미가 그랬듯이, 오로지 '생각'만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SF 소설에 나오는 머리만 남아 있는 도웰 박사처럼. 그런데 다케쿠니는 이들을 둘러싼 세계는 매우 물리적으로 견고하게 구축한다. '클락성의 살인사건'의 주요 무대인 '클락성'은 창 하나 없는 건물이다. '춤추는 조커' 역시 공간의 밀실, 시간의 밀실로 이뤄져 있다. 거기다 트릭마저 그 세계의 물리적 질서를 철저히 따른다. 한 마디로 한치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꽉 막힌 세계요 굳건한 세계다. 그 안에서 오토노 준과 선조들은 그저 의식만 남아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다. 정말 너무나 명확한 이분법적 구조가 아닐 수 없다. 단순화 시킨다면, 의식과 세계의 이분법적 구조.


 이것이 바로,  '다케쿠니 월드'를 이루는 근본 뼈대이자,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저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의식만 남은, 유령과 같은 존재들이 범죄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세계가 너무나 꽉 막혀 있는 지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마치 그 세계에 갇혀 질식해 버린 희생자들의 호소로 보인다. 너무나 규칙적이며 견고한 세계인 지라, 그 질서에서 벗어나는 범죄가 아니고서는 그 세계가 가진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범죄는 '제발 이 감옥과 같은 세상에서 나가게 해 달라!'는 무언의 기도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클락성의 살인사건'은 세상에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고 구원을 가져올 수도 있는 무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인데, 그것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한밤중의 열쇠'다. 마찬가지로 '춤추는 조커'의 어떤 단편들은 탈출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다.


 빠져나갈 열쇠. 이것이 바로 다케쿠니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들은 바로 그 희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염원에, 범죄로 표현된 희생자들의 간구에, 의식만 남은 탐정들이 응답한다. 그들은 상식과 과학이 절대적인 질서로 장악하고 있는 현실 세계에선 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천사 역시 상식과 과학 앞에선 공상의 존재, 거기에 물든 시선으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또한 그들은 어디까지나 신의 의식을 전하는 입으로만 강림한다는 점에서 더욱 의식으로만 존재하는 다케쿠니의 탐정들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천사들은 성경에서 보통 누군가의 끝없는 간구에 응답하여 내려온다. 그 정도로 헌신적인 간구는 절대적인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만한 믿음은 종종 현실 세계에서 말도 안 되게 불가능한 것을 탐하는, 그래서 어리석고 허황하다고 치부하는 것들이다. 이런 면에서, 천사의 강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의 확인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희망이, 구원에 대한 믿음이 세상이 말하는 것만큼 불가능하거나, 어리석을 정도로 허황하지 않다는 것의 선명한 목격 말이다.


 그러므로 다케쿠니가 정말 천사를 의식하고 자신의 탐정들을 구현했다고 한다면, 여기엔 세상에 대한 절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함께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싶다. '열쇠는 어딘가 반드시 있다. 나는 그것을 내 작품으로 찾아가겠다. 그것을 찾게 되는 날, 나의 탐정도 온전한 존재가 되리라.' 너무 멋을 부려 살짝 부끄럽기도 한데, 그래도 바로 이것이 다케쿠니가 탐정을 빚어내며 투영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 혹한과 비참의 세계가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와 다르지 않기에. 2008년에 나온 '춤추는 조커'는 내게 그가 데뷔 이래로 여전히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좀 더 선명하게 확인시켰다. 희망에 판돈을 걸고 있는 그가 다음엔 또 어떤 간구의 궤적을 그리게 될 지 궁금하다. 일단은 아직 못 본 '인어공주'와 금방 뒤따라 나온 오토노 준의 두 번째 책부터 얼른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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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3 0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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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3 21: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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