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무더운 여름입니다. 원래 손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그렇지 않아도 여름엔 책 읽기가 힘든데, 이제는 살인적인 무더위마저 가세해 책 읽기가 여간 어렵지 않네요. 덕분에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영화를 보게 되는군요. 주말엔 소장한 DVD로 호금전의 '소오강호'를 봤습니다.

  최가박당으로 유명한 허관걸이 '소오강호'의 주인공 영호충 역을 맡았었죠.

   

 

  영화는 1990년에 나왔습니다. 당시 무협영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호금전이 오래만에 일선에 복귀해 홍콩 뉴웨이브의 기수 서극과 함께 만든 영화입니다. 김용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것으로, 영화로 만든 것은 78년의 왕우가 주연한 영화에 이어 두 번째라는 군요.

 

 

 호금전과 서극의 만남은 당시의 영화 팬들을 몹시도 흥분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신구세대의 거장들이 힘을 합하는 것이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겠죠. 하지만 삼국지에서 주유가 제갈 공명을 두고 '어찌 하늘이 이 주유를 천하에 태어나게 놓고도 또 제갈 공명을 태어나게 한 것인가?'라고 한탄했듯이 역시나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고 뛰어난 두 사람이 힘을 합치기는 어려운 일인지 호금전은 연출 방향을 두고 서극과 불화를 일으키다 결국 중도하차하고 맙니다. 당시의 호금전은 '협녀'에서 해왔던 대로 경극과도 같은 동선과 군무와 같은 무예의 합을 그리는 식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충실할 것을 주장했지만 서극은 '접변'이나 '천녀유혼'에서 그랬듯이 미국에서 세례를 받은 특수효과를 더욱 많이 쓰려고 하였기에 일어난 불화였죠.


 그래서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연출이 앞과 뒤가 다릅니다. 그건 전반부의 좌냉선과 영호충 일행이 풍랑당의 배에서 벌이는 무예 장면과 후반에 대내동창과 악불군이 벌이는 무예 장면만 비교해 봐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서극은 이 영화의 감독으로 '호금전'의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원래 호금전이 이 영화에 참여한 것은 평소 호금전을 존경한 서극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죠. 결국 중도 하차하기는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존경의 의미에서, 그리고 또한 그가 감독으로서 영화에서 이루어 놓은 부분이 적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것 같습니다.


 이런 화면 구도는 그야말로 호금전의 것이죠.

 

 영화는 무상함에 대한 것입니다.

 힘과 권력에 대한 무상함, 정파와 사파를 나누는 것의 무상함 같은 것들을 말이죠. 제목의 '소오강호'는 영화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대내동창의 앞잡이 좌냉선의 추적을 피해 영호충 일행이 우연히 숨어든 배에서 만나게 되는 일월신교의 신도 노귀('강시선생'으로 유명한 임정영이 연기했습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셨죠.)와 풍랑당 당주 노곡('천녀유혼'의 은둔 고수를 연기했던 '우마'가 분했습니다. 이 분도 폐암으로 타계하셨군요.)이, 한 사람은 정파(풍랑당)로 또 한 사람은 사파(일월신교)로 서로 다른 쪽에 서 있었지만 그래도 30년간의 우정은 변치 않았고 그러면서도 그 우정을 숨겨야 했던 스스로의 처지에 대해 도대체 이러한 이념 따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의 취지로 지은 노래를 이르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오강호'는 실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중국과 홍콩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가 추구하는 무상함은 중국과 홍콩이 취하고 있는 다름과 반목의 무상함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사실 영화의 주제는 바로 그 노래 가사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특히나 풍랑당의 교주 노곡이 그 후임자에게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당부합니다.

 

 "풍랑이 없으면 강호를 이룰 수 없고  

  은원이 없으면 영웅호걸이 나오지 않는 법이네...

  그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지말게..."

 

 생각해보면 정파와 사파로 이리저리 사람을 나누는 것은 모두, 나중에 풍청양이 이야기하듯이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이고 결국 그 권력욕의 본질엔, 후반에 장학우가 분했던 구양전이 그러하듯이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등이 그러한 힘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낳게 하는 것이죠. 영화에서 가장 커다란 악역인 대내동창도 사실은 규화보전이 강탈 당했다는 사실이 들통나 정적들이 모함으로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그리 맹렬한 추격에 나선 것이었구요. 


 본질엔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풍랑당 당주 노곡은 그러한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아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두려움이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말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 노귀와 노곡의 이야기가 정파와 사파로 나누는, 그렇게 사람을 이런 저런 외부의 것으로 나누는 짓의 헛됨을 보여준다면 영호충이 추격을 당하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풍청양의 이야기는 힘과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줍니다. 


 그는 '독고구검'이라는 강호 제일의 무공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사는데 영호충이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합니다.

 

  "강한 무공을 가지더라도 소인배들이 가족을 가지고 위협하면 무력해질 수 밖에 없는 일이네. 인간의 감정 앞에선 무공은 힘을 발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래서 나는 강호를 떠났네. 가족도 떠났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한 풍청양의 고백은 영화 초반 규화보전을 훔쳤다고 의심받는 임진남의 집을 대내동창이 좌냉선을 앞세워 습격했을 때, 임진남 앞에서 아내의 두 눈과 혀를 잘라버리는 데도 무력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모습을 이미 관객들이 보았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옵니다. 그러니 힘을 쫓지 말고, 이름만큼 허망한 것도 없으니 명예도 쫓지 말며,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쫓으라고 말하는 것이 꽤나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절기 '독고구검'을 영호충에게 전수해 줍니다. 영호충이 자신에게 전수한 검법이 무엇인지 묻자, 풍청양은 그건 '독고구검'이라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내 패배에서 나온 검법이라네."

 

  강호에서 가장 강한 무공인 '독고구검'은 풍청양이 숱한 패배에서 얻었던 교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검법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앞서 노곡이 말했던 '풍랑이 없으면 강호를 이룰 수 없고, 은원이 없으면 영웅 호걸이 나오지 않는다.'란 말과 그대로 이어집니다. 이기고 지는, 그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소오강호'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오직 하늘만이 알 뿐이니.'

 

 즉 진정한 승자와 패자는 오로지 하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순간의 승자와 패자로 모든 것을 이겼다, 졌다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승패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거대한 삶이라는 시간 앞에서 새벽 첫 햇살에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슬과도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파와 사파로 이리저리 사람을 나누는 것도,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힘과 권력을 쫓는 일도 말이죠. 결국 영호충의 스승, 악불군은 제자까지 죽여가면서 '규화보전'이라는 힘과 권력을 얻으려다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의 딸에게마저 버림을 받고 말죠. 그가 마지막에 찢어 하늘에 날려보내는 피에 물든 '소오강호' 악보는 피눈물을 흘리며 비로소 깨우치게 된 무상함의 은유인지도 모릅니다.

 

 소오강호는 김용의 원작에 그리 충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이야기는 재미있고 무예의 연출도 멋집니다. 하지만 더욱 좋은 것은 이런 식의 삶에 대한 통찰입니다. 이러한 통찰들이 관객들의 주목을 끌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뜻 스쳐가듯 묘사되어서 '이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때?' 하는 식으로 그리 강요하듯 제시되지 않는 까닭에 더욱 마음에 듭니다.

 

 


 











제가 소장한 것은 검색되지 않는군요. 할 수 없이 블루레이를 링크합니다 ㅠ 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