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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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지마 교코의 '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를 읽었습니다. 딱히 누가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가족의 가장 류타로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네요. 그는 70대의 전직 치과 의사로,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나 아내 하루코와 함께 느긋하게 노후를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근심거리가 하나 있는데요. 그건 바로 막내이자 장남인 가쓰로 입니다. 가쓰로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서른인 지금까지 내내 방에만 칩거하고 있는, 흔히 말하는 히키코모리 입니다. 류타로는 그런 가쓰로를 자기 인생의 오점이라 여기고 있지요. 늘 생각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내쫓고 싶다 뿐입니다. 하지만 막상 가쓰로와 얼굴을 마주하면 그 말이 잘 안 나옵니다. 그래서 '내일은, 내일은...' 하면서 뒤로 미루기만 하고 있지요. 그러나 곧 그것마저 약과에 불과한 상황이 류타로에게 닥쳐오고 맙니다. 가쓰로의 두 누나들이, 그러니까 출가시켰던 그 딸들이 갑자기 모조리 이제 집에서 살겠다면서 들어온 것입니다. 첫째 딸, 이쓰코는 남편의 사업이 망했어요. 그래서 모든 걸 잃었고 가족 모두가 갈 곳이라는고는 아버지 집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둘째 도모에는 이혼을 했습니다. 그토록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그 때문에 부부 사이도 소원해진지 오래여서 그만 20살의 개그맨과 잠깐 바람을 폈는데 그것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고만 거죠. 도모에는 설상가상으로 임신까지 해버렸는데요. 남편과는 그렇게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잠깐의 외로움을 달래려 만났던 남자와는 단번에 생겨버렸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하지만 진짜 아이러니는 류타로와 하루코입니다. 이제 좀 자녀 부양에서 벗어나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는데 느닷없이 다시 또 자식들에게 치이게 되었으니 말이죠. 그것을 대변하듯, 부부의 침실까지 자식들에게 내어줬습니다. 변화는 급격하게 일어납니다. 지금까지의 조용한 일상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집안 내 사람들이 늘어난만큼 그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으로 류타로와 하루코의 일상은 정말 바람 잘 날이 없게 되었으니까. 류타로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이탈리아어, 'Troppo tardi'의 뜻처럼, 그가 바라는 노후를 즐기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이죠.


 소설은 2008년에 나왔습니다. 2007년에 미국에서 일어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일본이 경제적으로 참 어려웠던 시기에 쓰여진 소설인 것입니다. 당시 일본엔 류타로 가족처럼 갑자기 당하게 된 파산, 주거지와 늘어난 생활비의 압박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의 집으로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걸 일본에서는 '불황형 대가족'이라 부르기도 했다는군요. 바로 그런 상황을 소설은 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대가족'은 한 시대의 단면을 그린 세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네요. 라고 했지만, 이것은 100% 제 창작. 원래는 편집부가 나카지마 교코에게 대가족 이야기를 하나 주문해서, 현대 일본에서 대가족이 생길 만한 상황을 상정하다 보니 이렇게 쓰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역자 후기에서.


 그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뚜렷한 경향은 1인 가구의 증가 입니다. 지금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 정도 된다고 해요. 2020년에는 무려 30%에 육박하게 될 것이란 예측도 있더군요. 지금 젊은 세대가 스스로 '오포세대'라고 한다는데, 그것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죠. 하지만 갈수록 어려워지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이것마저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합니다. 소득 대비 주거 비용이 계속 치솟고 있는 데다, 물가 대비 소득 격감으로 아무래도 독립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어쩌겠어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부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야죠, 뭐. '캥거루 가족'은 부모의 자식 사랑이 넘쳐서가 아니라, 이렇게 점점 더 암흑의 핵심 가까이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이 가져온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읽으니 결코 남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더군요. 저야 물론, 현재는 독립 유지 상태 입니다만 앞으로도 죽 그렇게 되리라 섣불리 장담할 수는 없죠. 인생엔 언제나 듣도 보도 못한 반전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요.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 된다면 우리 집은 어떨까 상상하니 조금은 더 소설 속 상황에 몰입하게 되더군요.


 류타로 가족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자면 암담 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지마 교코는 이전에 우리나라에 나온 나오키 수상작 '작은 집'이 그랬듯이 소설의 분위기를 전혀 어둡게 몰고 가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밝고 긍정적으로 그리죠. 특히 히키코모리 가쓰로(이름이 비슷해서 자꾸 '가쓰오'로 치게 되네요. 여름이라서 다행이에요. 늦가을이나 겨울에 읽었다면 계속 가쓰오 우동이 먹고싶어졌을테니)의 로맨스는 오돌뼈마저 오들오들할 정도였어요. 사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겉모습으로는 류타로 부부가 자식 복이 없어 말년에 고생하는 것 같지만 실상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특별히 나쁜 사람도 없고, 다들 자신의 인생을 자기가 알아서 척척 잘 헤쳐 나가는 타입(type)입니다. 류타로가 가장 오점이라 여기는 가쓰로 조차 그래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자기 앞길을 잘 닦아나가고 있지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가족 중에서 가장 착실하게 노후 대비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되네요. 그러니 류타로의 근심은 근거가 없고, 이런 면에서 소설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태도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는 것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믿어주는 것이겠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가능성을 자신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들도 자신의 삶의 어엿한 주체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 뭐, 지극히 짧은 제 소견으론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부디 제가 집으로 귀환할 때도 제 부모님이 이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 책 싸들고 나가라면 심히 난감할 것 같습니다. 이사할 때, 사다리차도 도망가는 책 짐이라.


 어쨌든 나카지마 교코 특유의 소란 가운데 평정, '풍파 중심에서 웃다'가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부담없이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죠. 가족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소설이 주는 덤이구요. 요즘은 '어쩌다'라는 말이 유행이더군요. 내가 상대하는 세계가 너무 커져버렸고, 그것에 휩쓸리다 보니 준비도 없이, 대책도 없이 지금의 상황에 맞딱드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결국 세상 일이든, 가족 일이든 예습해 보는 것처럼 필요한 일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굳이 읽어야 할 이유를 대라고 하신다면, 그런 예습을 하는데 마춤한 책이라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캥거루 가족이 이제 곧 보편이 될 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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