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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아랍인 Vol.1 - 중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 (1978~1984)
리아드 사투프 지음, 박언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시리아. 아마도 현재 중동 국가 중 가장 많이 언론에 보도되는 나라가 아닐까 생각된다. 일단 IS가 거기에 있고, 더하여 2011년에 시작된 내전으로 벌써 20만명이 사망하고 인구의 절반이 난민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인정한다. 지옥이 지상에 존재한다면 그 곳은 시리아일 것이라고. 그래서 궁금했다. 이런 저런 경로로 참으로 많이 접하는 이름이나 시리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정작 하나도 없었기에.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었다.
한 나라를 아는 방법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재적 접근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내재적 접근 방법이다. 외재적 접근은 한 나라를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만큼 시각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객관적이 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다. 그 시각 역시 바라보는 국가가 놓인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이후에 서양의 제국주의에 봉사하느라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시선이 널리 퍼진 것처럼 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그것을 두고 단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 표현했다. 그래서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무려 86%에 달한다는 시리아처럼, 서양의 기준에서 볼 때 멀리 타자의 영역에 위치하는 나라일수록 외재적 접근이 줄 수 있는 편견과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게 된다. 내재적 접근이란, 쉽게 말하여 그 나라의 입장이 되어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치경제상황을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리아드 사투프의 그래픽 노블, '미래의 아랍인'을 손에 들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시리아를 시리아인의 시선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리아드 사투프는 1978년 생이다. 그는 시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내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리아 시골 출신으로, 국가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으로 유학와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마음에 들었던 여자는 원래 어머니가 아니었다. 실은 어머니의 친구를 더 원했지만 친구가 아버지를 떼어내려고 거짓으로 아버지와 데이트 약속을 했는데, 어머니가 하염없이 친구를 기다릴 아버지가 불쌍해 그 사실을 말해주려 약속 장소로 나갔다가 끝내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솔직히 리아드의 아버지는 그리 매력적인 인물은 못된다. 시리아 문화가 가진 가부장주의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세속적 성공을 누구보다 바라는 속물이다. 중동 정세에 관심이 대단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 관심의 대부분이 프랑스에 살면서 시리아의 시골 출신으로서 가지게 된 자괴감이나 차별 받은 경험이 낳은 보복 감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로 인해 무지의 베일에 가려져 있는 조국 사람들을 교육으로 그 종교의 미망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가 중동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그런 신념에 있지 않고 프랑스에서 박사가 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모습과 자신이 얻은 성공에 대한 과시에 있다. 이슬람 문화에서 차남의 지위가 대개 다 그렇듯이, 그 역시 집안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바로 그것을 현재 성취한 신분과 성공으로 보상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따자마자 아내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중동 국가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결국 리비아 대학에 자리를 얻은 그는 아내와 아들 리아드를 데리고 리비아로 간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게 될 리아드를 형상화 한 그림. 그림의 황토색은 나라를 나타낸다. 만화는 나라마다 색깔을 달리 하는데, 황토색은 리비아를, 파란색은 프랑스를, 분홍은 시리아를 나타낸다.
리아드가 언제 리비아로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책의 부제는 '중동에서 보낸 어린 시절'로 그 연도를 1978년 부터 1984년까지라고 명기하고 있으나 만화의 표현은 이것과 모순된다. 리아드는 78년생이니 만일 부제에서 표기한 연도대로 리비아로 갔다면 간난 아기로 묘사되어야 한다. 하지만 만화에서는 어엿하게 자기 다리로 걷고 아빠와 제대로 대화도 가능한 아이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실수인지 아니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일부러 모호하게 처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뜻하지 않게 리아드의 아랍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작품은 리비아와 시리아 그리고 프랑스를 오고가는, 마치 방랑자와도 같았던 어린 시절을 담아낸다.
이 기록은 어디까지나 리아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살아본 이가 아니었으면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여기서 참 많이 듣게 된다. 초반에 나오는 리비아부터 솔깃하고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다. 특히 집이 그랬다. 독재가 카다피가 리비아를 다스렸을 때, 그는 리비아의 모든 사유주의 재산을 없앴다. 모든 것은 국가가 배급했다. 집도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것은 리비아 집에 열쇠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집은 리비아 국가가 소유한다는 의미로 집의 모든 문을 잠그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랄 일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리아드 가족이 잠깐 외출을 다녀와 보니 다른 가족이 그 집에 들어와 살고 있었고 이제 자신들의 집이 되었노라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리비아 법에 아무도 없는 집은 누구나 들어와 살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리비아에서는 어떤 경우든지 가족 전부가 집을 떠나선 안되고 무조건 한 사람은 남아서 집을 지켜야 한단다. 결국 리아드 가족은 집을 잃었고 이 사실로 인해 리아드의 어머니는 리비아에서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외출하지 못했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융통성이 없으면 체제가 얼마나 한 개인에게 어처구니 없게 굴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지만 거기에 더하여 외출을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대로 시리아인을 남편으로 둔 여자의 삶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만화에서 그녀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대부분 실내에 갇혀 있었고 가족들과 외출할 때는 항상 끝에서 조용히 가족들을 따라다녔다. 자신이 먼저 주장하는 법도 없었다. 말하기 보다는 듣는 쪽이었고 남편의 고향 시리아에 갔을 때는 여성의 존재를 하찮게 취급하는 지극히 가부장적인 관습도 가만히 수용했다. 이 부분에서 내부인의 눈으로 보여준 시리아의 집안 풍경은 정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리아의 여인들은 남자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고 음식도 남자들이 남긴 것을 먹어야했다. 그냥 여인이라도 참기 힘들 것 같은데 하물며 리아드의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가 가장 발달했다는 프랑스 여자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시리아 여인들과 똑같이 받아들였다.
나는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물론 리아드의 기억 그대로이긴 하겠지만 리아드가 어머니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 것엔 다른 의미도 투영된 것 같았다.
프랑스에 왔을 때, 리아드의 모습. 이렇게 만화는 부성의 공간과 모성의 공간을 색깔로 구분하고 있으며, 실상 리아드가 경험하는 것도 다르다.
그것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대비되어 나타나는 시리아인들의 모습 때문이다. 리아드가 처음으로 시리아인 사촌들을 만나자마자 경험한 것은 유태인을 적대하는 모습이었다. 사촌들이 다짜고짜 리아드를 유태인이라 부르며 공격했던 것이다.
리아드가 시리아에 와서 가장 처음 만났던 모습이 시리아 편의 처음을 연다. 그곳에서 목격하게 될, 차별과 폭력을 한 컷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작을 여는 한 컷이 의미심장하게 보여서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리아드에게 있어 각 나라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 마을에서 살게 되었을 때, 리아드는 또래 아이들이 모두 약한 동물들과 아이들에게 유태인이라 부르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서는 폭력이 예사로 행해졌다. 아이들은 버림받은 강아지를 삼지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찔렀고 강아지가 신음 소리를 내자 한 어른이 뛰쳐나와선 강아지의 목을 태연하게 날려 버렸다.
이것은 폭력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었지만, 그래서 결국 어머니도 참지 못하고 리아드를 위해 프랑스 행을 결정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폭력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 곳엔 폭력이 만연해 있었다. 아버지는 자식을 때렸고, 남자는 여자를 때렸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적대로 그것을 정당화했다. 폭력은 자신의 뜻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가장 획일적인 방식이다. 거기엔 타인에 대한 고려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 타인에 대한 적대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시리아는 이렇게 체제에 저항한 자들을 교수형 시키고 그 시체를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걸어 놓는다. 아버지의 대사는 시리아에 만연한 폭력이 정확히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인지 말해준다. 오로지 단 하나인, 자신만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것임을.
하지만 리아드의 어머니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는 많이 듣고, 조용히 판단하며 관용으로 타인의 것을 먼저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면서도 리아드를 그런 폭력적 상황에 방치하는 것과 같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나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이런 선명한 대비가, 무심히 자신의 자전적 기억만 보여주는 것 같은 이 작품에서 리아드의 어머니처럼 조용하게 하지만 착실히 하나의 의미 지점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항구적인 이슬람과 서양 문명 사이의 싸움만큼이나 이주노동자와 난민 사태 등으로 내부와 외부의 갈등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는 요즘, 아무래도 과연 상대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가 시대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데, 바로 그것의 모델을 리아드의 어머니를 통하여 그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총 3부작으로, 난 이제 겨우 1부만 보았을 뿐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좀 섣부른 감이 있다. 그러나 분명 리아드 어머니의 묘사는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아드가 자신의 어머니를 단순하게 존재감이 엷은 여자로 그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정말 그랬다면 그래픽 노블계의 노벨문학상이라고 평가받는 앙굴렘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자전적이라고 해도 그러한 여성 묘사는 문제가 있으니까 말이다.
리아드는 경계의 존재다. 그는 아버지인 아랍인과 어머니인 유럽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에겐 두 개의 모델이 존재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그리고 타자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모델들이.
아마도 이런 모델로써의 의미를 독자에게 강조하기 위해 리아드가 프랑스와 아랍을 오고가는 형식으로 묘사했는 지도 모른다. 색깔까지 달리 써 가면서 말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리아드에게 자주 아랍인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아직 아랍인이 아니다. 그래서 제목도 '미래의 아랍인'일 것이다. 그러나 리아드가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언젠가 미래에 아랍인이 된다고 해도 아버지를 빼다 박은 아랍인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작가는 지속적으로 아버지가 그다지 좋은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목이 뜻하는 바는 분명 현재의 아버지가 대표하는, 그렇게 지금의 아랍이 보여주는 적대의 모습이 아닌, 보다 바람직한 아랍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한계가 있는 아버지의 모델 옆에, 그것의 보완으로써 어머니의 모델을 병치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 모델이 유럽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현재 유럽의 모습은 아니다. 굳이 유럽이라고 해야 한다면 이상화된 유럽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작품에서 어머니가 보여주는 모습이 현재 유럽과 차이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그를 위해 낯설기 그지 없고 이해도 되지 않는 데다 자신의 자유마저 구속하는 타인의 문화와 관습까지 묵묵히 감내했다. 관용과 희생이 전부였다. 이런 모습은 오리엔탈리즘을 부르짓는 유럽의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굳이 찾자면 이런 어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박애의 구현이라 할 수 있으니, 그런 박애의 정신을 세 가지 기본 정신 중 하나로 천명했던 프랑스 혁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가 혁명을 통해 구현하려 했던 박애로 충만한 유럽. 그랬기에 이상화된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리아드의 어머니는 바로 그것을 나타낸다. '미래의 아랍인'은 바로 그 박애가 혼합된, 그래서 어머니처럼 먼저 관용과 희생이 체화된 존재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1권밖에 읽지 않은 나로서는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아주 섣부른 추정이다. 그래서 이런 내 해석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기 위해서라도 얼른 다음 권을 만나고 싶다. 1권의 마지막은 시리아에서 사는 것을 아주 두려워하는 리아드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시리아로 가는 장면이다. 공항에서 리아드 모습은 곧 다가올 미래 때문에 더없이 곤혹스러운 표정인데 그래서 다시 가 본 시리아에서 리아드에게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더 많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어머니가 어떤 모습을 보여 줄 것인가 역시도.
1권은 2015년 2월 15일에 나왔는데, 1년 하고도 4개월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2권이 아직 안 나오고 있다. 그래서 끝을 이런 말로 끝내고 싶다. '2권과 3권, 빨리 출간해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