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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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3부가 드디어 나왔다. 3부의 제목은 '포르투나의 선택'. 첫 느낌은 감격이다. 결코 우리말로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맞다. '포르투나의 선택'은 초역이다. 이제야 술라의 말년과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부상을, 늘 그렇듯이 뛰어난 콜린 매컬로의 필치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포르투나의 선택' 1권은 모두 2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기원전 83년 4월부터 81년 5월까지 담는다.


 기원전 88년. 로마의 일인자 자리를 놓고 용호상박으로 다투고 있었던 마리우스와 술라. 그 때,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손길은 술라에게로 향했다. 폰투스의 미트라다테스 6세가 아시아를 침략하여 로마의 속국들을 해방시키자 결국 그리스와 소아시아가 로마의 총독들을 살해하고 로마에 반기를 들었는데, 이 일로 인해 술라가 그것을 진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여겨져 드디어 꿈에 그리던 집정관이 되었던 것이다. 가장 밑바닥 계층에서,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로마의 일인자가 된 술라는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반란을 진압하러 로마의 동부로 떠난다. 하지만 포르투나의 손길은 변덕스러웠으니, 말년의 뇌졸증으로 이성의 힘이 약해진 마리우스가 그런 술라를 질투하여, 술라가 로마를 비운 사이에 로마를 다시 장악하여 끝내 집정관을 자신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기량과 대중의 인기로 인해 하늘 아래 같이 존재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던 전면전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결국 술라는 그 때까지 로마 역사상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서 아피우스 가도를 따라 로마의 수도로 진격하는 일을 선택한다.


 기원전 83년. 다시 로마를 장악한 술라는 여전히 로마의 안전을 위협하는 동쪽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원정을 떠나 이탈리아 남부에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포르투나의 손길은 또 다시 변덕을 부려 반대쪽을 향한다. 당시 다른 한 명의 집정관(아시다시피 로마는 집정관을 두 명 선출한다.)은 킨나였는데, 그는 술라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킨나는 술라가 로마에 없는 사이, 그를 몰아내기 위해 아프리카에 피해 있었던 마리우스를 로마에 오도록 한다. 마리우스는 로마에 오자마자 술라를 국가의 적으로 선포하고 집정관 자리에서 축출한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드디어 집정관 자리에 일곱번째 오른다. 그의 삶을 오래도록 지배하고 있었던 예언은 그렇게 성취된다. 포르투나 여신의 손길이 이번에는 마리우스를 향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집정관에 오르고 얼마있지 않아 지병인 뇌졸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만 것이다. 마리우스의 죽음과 함께 그 때까지 승기를 잡고 있었던 킨나의 운도 다하여 결국 부하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결국 포르투나는 술라의 손을 들어준 것일까?


 외견은 그렇게 보였다. 일단 마리우스가 죽은 현재 로마에는 더이상 술라의 라이벌이 될만한 인물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3부의 1권은 포르투나가 다시 한 번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우리는 이제 독재관까지 되어 가장 정점의 권력을 누리고 있는 술라의 라이벌들이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만큼 오만하고, 그만큼 야심이 크며 세상을 그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놀이터로 여기는 이들을.


 '들'이라고? 맞다. 복수()다. 두 명이니까. 그들이 바로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다. 그들이 점차 두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훗날 '삼두 정치'로 같이 로마를 지배할 그들이. 그리고 마치 로마가 전제정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과도 같이, 원로원과 1인 통치를 두고 전면전을 펼칠 그들이 말이다. 이렇게 바야흐로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흥미로운 시간의 막이 올라가는 것이다.


 '로마의 일인자'를 선택하는 포르투나의 손길은 누구에게로 향하게 될까? 물론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다. 다들 인정한다. 카이사르가 없었다면 폼페이우스가 로마 최고의 인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폼페이우스마저 없었다면 술라가 그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우리는 콜린 매컬로의 손 끝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로마의 묘사를 통해 분명히 보게 된다. 포르투나는 언제, 어디서든 반전을 은밀히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리우스는 알고 있었다. 예언을 통해 카이사르가 자신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그것을 막기 위해 마리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절대 집정관에 오를 수 없게끔 무거운 굴레를 씌워버렸다. 현실 정치에 도저히 발을 내밀 수 없는 종교인, 즉 신관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로마 권력에 대한 야심이 컸던 카이사르에겐 오롯이 절망일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말이다. 카이사르가 거기서 헤어날 방법은 없었다. 당시 로마의 절차상 신관에서 해방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다. 신처럼 커다란 권력이 아니면 풀어줄 수 없는 사슬이었다. 하지만 정말 포르투나의 손길이 이 때부터 카이사르에게 있었던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목숨이 절체절명에 다다른 순간에.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런 사람이 모인 집합으로써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어디로 흘러갈지 예측 불가다. 술라의 권태가 낳은 변덕이 아니었다면 로마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어쩌면 황제마저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카이사르라는 위상은 폼페이우스가 되었을 것이며 로마도 언제까지나 원로원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포르투나의 우연한 손짓은 마치 나비효과처럼 로마의 역사가 흘러가는 물줄기를 크게 바꿔버렸다. 누구도 볼품없는 노새를 타고 로마를 떠난 카이사르 앞에 그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포르투나가 무엇이기에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는가?

 포르투나가 자신과 함께 한다고 생각했던 술라는 포르투나를 이렇게 생각했다.

 

 "로마인인 술라는 신들이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형적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구체적인 사건들에 영향을 자신보다 열등한 다른 힘을 통제하는 구체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신들은 자기들의 세계에서만큼 산 자들의 세계에서도 질서와 체계성을 원했다. 산 자의 세계가 질서 있고 체계적이면 힘들의 세계에서 질서와 체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행운과 복을 주고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덜 주며, 또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힘은 포르투나였다. 그리고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라 불리는 힘은 다른 모든 힘들의 총합이자, 사람들에게는 불가사의하나 힘들에게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그 힘들을 한데 묶는 결합조직이었다.(p. 291 ~ 292)


 이제 독재관이 된 술라는 포르투나에서 막시무스로 옮기려 한다. 만인지상의 권력을 차지했으니,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그 힘마저 가지려는 것이다. 마치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술라는 이 말을 한 뒤에 로마 최고 신관을 선거 없이 자신이 직접 뽑겠다고 하면서 그 전에 지금 특별 신관으로 있는 카이사르를 처형하겠다고 선언한다. 자신만큼 포르투나의 총애를 받는 존재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포르투나와 막시무스의 힘은 대비된다. 그리고 이런 대비를 통해 포르투나가 가진 의미가 진정 무엇인지도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것.


 마리우스와 술라. 술라와 폼페이우스 그리고 카이사르.

 포르투나의 손길이 한 인물에 머물지 않고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것은 모두 모든 힘이 어디 하나로 결집되지 않게 하려는, 그렇게 다들 분담한 가운데 서로에 대한 견제를 통해 균형을 가져오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술라는 포르투나를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포르투나의 총애를 받고 있다고 말하는 카이사르에게 이렇게 말한다.


"포르투나 여신의 선택을 받은 건 나지! 내게는 늘 운이 따랐어. 하지만 거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기억하게. 포르투나는 질투심이 강하고 요구가 많은 애인이야."(p. 426)


 자신의 원수인 킨나의 딸과 결혼한 카이사르에게 이혼하라고 명령하는 술라 앞에서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며 당당하게 외쳐, 온전히 술라의 반대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카이사르는 이번에도 포르투나에 대해 다른 견해로 반박한다.


"무릇 애인이란 그래야 제맛이죠!"(p. 426)


 그는 질투와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태연히 선언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역사적인 인물의 최후 만남이 끝났다. 한 쪽은 막시무스의 대변자가 되어, 다른 한 쪽은 포르투나의 대변자가 되어. 이 장면을 보면서 문득 소설에서 폼페이우스를 보며 바로가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혼란이 시작되기 전에는 누구나 그렇게 바람직한 모습을 보인다. 폼페이우스의 군사행동이 시작되고 적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 때, (카르보나 세르토리우스가 아닌) 술라와 대면할 때 폼페이우스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시험일 것이다! 같은 편이든 아니든,늙은 황소와의 관계가 젊은 황소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굽힐 것인가? 그는 굽힐 수 있는가?(p. 39)


 카이사르도, 폼페이우스도 진정한 시험을 치뤘다. 폼페이우스는 굽혔고, 카이사르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많은 것을 가졌던 폼페이우스는 더 많은 것을 가진 술라에게 굴복했고, 가진 것이 거의 없었던 카이사르는 대항했다. 그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지도 모른다. 


 1권은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라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세력을 물리치며 로마로 입성하는 과정과 독재관이 되어 최고 권력을 휘두르는 모습 그리고 그런 술라에게 가담한 폼페이우스와 반대 편에 선 카이사르의 태동을 그린다. 더하여 앞에서 인용한 누구는 술라 최고의 실수라고 부르는 카이사르의 사면이라는 역사상 아주 중요한 장면까지. 단 한 순간도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더구나 1부와 2부에서 이미 넘치게 보여준 현란한 필력은 여기서도 여전히 빛을 발해 한층 더 그랬다. 하물며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들까지 등장해 생생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으니 어떻게 도중에 관둘 수 있을 것인가! 빛의 속도로 페이지를 넘겼고 결국 얼른 2권을 읽고 싶다는 바람만 한가득 안은 채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술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바로에게 폼페이우스는 '술라 자신의 존엄'이라고 대답한다. 물질 만능주의였던 로마에서 술라는 유일하게 무형의 가치를 쫓는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의 존엄은 무력을 통해 지켜졌다. 그는 다른 로마의 일인자와 다르게 말년에 그 어떤 신변의 위험도 걱정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을 암살할만한 인물들을 모조리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독재관이 되자마자 자기 눈에 가시 같았던 원로원과 기사 계급 사람들을 모두 2,600명 처형했다. 대부분은 원로원 보다 민회의 권위를 더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민중파 사람들이었다. 그 자신도 밑바닥 생활을 했지만, 그는 오히려 타고난 혈통을 더 중시했다. 그는 귀족 중심의 공화정을 만들려 했고 그래서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얻었다. 어쩌면 그가 귀족정을 원했던 것은 마리우스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출신 문제도 있어서 민중파 쪽이었다. 술라를 지지했던 귀족들은 그의 권력을 등에 업고 로마와 이탈리아에 있는 마리우스 지지자들을 4,700명이나 살해했다. 술라의 존엄은 그렇게 지켜졌고 유지되었다. 수많은 반대자들의 피로써. 그가 추구하는 막시무스가 과연 어떻게 이뤄지는 힘인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사실 3부의 여정은 자신의 존엄을 쫓는 이들의 여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술라에 맞서서 포르투나를 따르는 카이사르는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만들어 갈 것인가? 카이사르 역시 술라처럼 최고 권력에 오른다. 하지만 그가 그런 자리에 올랐던 것은 마리우스를 따라 원로원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친 표현일 수 있지만, 막시무스가 아닌 포르투나적인 힘의 실천이었다. 이제 거기에 이르는 여정이 2권 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빨리 만나고픈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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