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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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나는 지금까지 오감 중에 미각을 가장 소홀히 여겼고 음식 역시 생존을 위한 섭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맞벌이인 부모님 아래서 외로이 자라 집밥의 기억이 별로 없는 탓인 지도 모른다. 황석영 작가는 과거 홀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느라 부엌에서 멀어지자 가게에서 사온 간단한 인스턴트 음식들로 끼니를 때웠다고 하던데 나도 그랬다. 솔직히 잘 차린 밥상은 내게 식욕 보다 텅 빈 집에서 홀로 마지못해 끼니를 때워야 했던 시간의 외로움을 먼저 상기시켰다. 상 위의 풍경이 풍성하면 할수록 생선가시만큼이나 앙상했던 내 과거가 더 두드러져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음식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으려 했다. 내게 밥도둑은 없었다. 밥도둑이 즐거운 식사를 달리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면 더욱 나와는 먼 존재였다. 내게 수저를 들게 만드는 진정한 신호는 식욕 보다는 허기였고 그것을 채우는 일도 정해진 시간에 태엽을 감아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왜 '황석영의 밥도둑'을 읽게 된 것일까? 실은 나도 잘 모른다. 단지 황석영 작가의 책이라기에 손에 들었고 처음 '철모에 삶아 먹은 닭 두 마리'를 읽을 때는 분명 그들만큼 곤궁했을 농부들의 닭과 돼지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서리해가는 추억 속 인물들에게 화부터 났었다. 게다가 이 책은 나를 당혹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본디 내가 음식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지만 이 책엔 생경한 음식들이 참 많이도 나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 페이지로 넘기는 것을 그만둘 수 없었다. 작가가 어찌나 하나의 음식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담과 그 음식의 정보 그리고 만드는 방법을 흥미로우면서도 절묘하게 엮어내는지 이야기가 가진 중독성이 상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를 타칭 '조선의 3대 구라'라고 하더니만 헛소문이 아니었다. 잘 몰랐던 황석영 작가의 개인사를 알게 된 것도 좋았으나 특히 낯선 음식을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컸다. 나는 홍어에게 생식기가 있다는 것도, 그것으로 가격 차이가 심히 나는 암수를 구별한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러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 어느 순간 다 읽어버렸다. 뚜렷한 동기는 없었으나 읽는 재미가 완독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마냥 재밌었다고 할 수만은 없다. 페이지가 거듭될수록 어느새 마음 속에 자리잡은 질투의 감정이 차츰 커져갔던 것이다. 그에겐 참으로 많은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었지만 내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음식은 매듭이라는 사실이다. 음식은 그저 끼니의 수단만은 아니었다. 같이 먹는 사람, 함께 한 시간도 묶어 분별 가능한 하나의 마디로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삶은 어떻게 보면 모래강과도 같아서 단단히 묶어두지 않으면 사람도, 시간도 흘러가다 어느 순간 모래 아래로 가라앉아 망각되고 만다. 하지만 음식은 그걸 통조림처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다. 적어도 황석영 작가의 개인적인 시공간에선 그랬다. 음식이 단단한 매듭이 되어 마치 책에 꽂아둔 책갈피처럼 작가가 누군가, 어떤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쉽게 찾아내선 그 추억을 오롯이 재현시켜 주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매듭이 음식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 되었더라도 내 기억의 창고는 빈약했다. 빈 독의 바닥을 구르는 쌀 몇 톨. 씁쓸했다. 절로 서문의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주 아프게.


그러나 배고픔은 어떤 먹을거리로든지 달랠 수가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음식의 맛에 대한 그리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었던 음식도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며 넘쳐나는 풍성한 먹을거리도 고독한 식사의 허기를 달래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 음식 프로가 부쩍 성행하는 것을 보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성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p.10~11)


 나는 홀로 먹는 것에 익숙했고 일부러 고수했다. 외로움을 되새기고 싶지 않아 지레 음식의 매듭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니 추억의 잔고가 별로 없는 것도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나를 지키려고 들인 습관이었지만 나를 더 빈곤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이제 깨닫는다. 진정한 풍요는 내 성의 견고함이 아니라 타인과의 결부에서 온다는 것을. 내게도 황석영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처럼 타인이란 존재가 있어아만했던 것이다.


 내게는 어쨌든 내 존재를 비춰주고 확인시켜줄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했던 셈이다.(p.48)


 어쩌면 깨닫는 것이 너무 늦어버렸는 지도 모르겠다. 황석영 작가가 넌지시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음식의 매듭은 그것이 유일무이할 때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타관 객지에서 그런 강렬한 토속 음식은 알지 못하게 시달렸던 다른 종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달래주는 것이 되기도 한다.(p.197)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한 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유성이 함께 한 사람과 시간을 한층 더 굳건하게 묶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이 작가가 다시 가 본 해남 땅에서 보았던 것처럼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읍내를 둘러보니 온통 순댓국, 삼겹살, 해물탕 같은 간판이 즐비했다. 어디나 어슷비슷한 식당이 전국화되고 있는 것이다.(p.207)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처럼 음식도, 맛도 양산화, 평준화 되고 있는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이 우리의 신경을 무디게 만들듯,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고유성을 상실한 닮은꼴의 음식들은 경험의 선명도를 떨어뜨린다. 결국 그렇지 않았다면 강렬했을 추억도 흐릿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모처럼 함께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다만 먹는 순간을 즐겼다는 것 뿐이다. 시간의 소비만 있지 추억의 예금은 없는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이렇게 과거의 나와 다르지 않은 아이들, 현재의 나와 판박이인 어른들이 많다고 밝힌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은 정체도 모를 미국식 페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고, 어른들도 야외에만 나가면 그저 고기를 떡 벌이지게 지글지글 구워서 독주에다 실컷 마시고 쿵쾅거리는 가라오케 기계를 틀어놓고 법석댄다. (p.107)


 현실은 점점 타인과 더불어 오래 공유할 추억을 만들기 힘든 상황으로 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인간 관계란 헤어질 때 버릇처럼 말하는 '언제 한 번 밥먹자'라는 말의 공허한 울림과도 같이 형식적이면서 파편화되어 버린지 오래다. 나는 정말로 뒤늦게 깨달았는 지도 모른다. 지금의 현실이 내가 뭔가 하기엔 너무나 버겁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런 내 모습이 과거의 나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을. 그 때의 나는 외로움을 무척이나 많이 느꼈지만 그 상황에 나를 수동적으로 길들이려했을 뿐, 그것을 바꾸려는 노력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하여 현재의 후회와 자책을 가졌으면서도 나는 어느새 또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래. 상황 탓은 그만두자. 그렇게 하여 본들 황석영 작가에 대한 부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외부에서 나를 의탁할 곳을 찾고 그런 곳이 없다며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먼저 그런 거점이 되자. 추억을 동냥하기 보다는 내가 먼저 나눠주기로 하자. 그것도 어디서도 대체가 불가능한 고유한 경험을. 이렇게 마음 먹는다. 앞에서 인용한 것에 바로 이어지는 말 그대로다.


 장아찌는 장독대가 사라지면서 백화점의 반찬가게로 옮겨갔고, 서로 담 너머로 장을 빌리거나 찬을 나누고 들밥을 함께 먹던 문화는 식구끼리의 외식문화로 바뀌었지만, 실천하기에 따라서는 회복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p. 107)


 동의한다. 실천이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무엇보다 요리를 통해 해보려 생각한다. 이렇게 작정하게 된 것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책을 통해 음식이야말로 고유성의 발현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나 때문이다. 집밥의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 내가 한 집밥을 누군가 먹고 즐거워한다면 그 때의 나에게도 위로가 될 것 같아서이다. 물론 내가 만든 음식으로 누군가를 즐겁게 만든다는 것이 지금의 내겐 턱없는 욕심이긴 하다만. 그래도 발걸음을 떼고 끝까지 걸어가 보고 싶다. 언젠가 내가 만든 음식 때문에 누군가 추억을 밥도둑처럼 즐거이 맛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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