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더스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엔더스(Enders)'는 리사 프라이스의 디스토피아 소설 '스타터스'의 속편이다. '스타터스'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는 아마도 10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사용된 포자 형태의 생물학 병기로 인해 중장년들('스타터스' 세계에서는 '미들'이라 부른다.)이 모조리 죽고 오로지 미성년자와 노인 밖에는 없는 세상이다. 그 세계에서는 미성년자를 '스타터(STARTER)'로 노인을 '엔더(ENDER)'로 부른다. 이름의 의미는 단순하다. 이제 막 삶을 시작(START)하는 나이이기에 스타터고, 인생의 종막(END)에 접어들었기에 엔더인 것이다.



 중장년들이 없어졌다는 게 왜 최악이야 하고 궁금하실 분들이 있을텐데 물론 그것이 최악은 아니다. 진짜는 지금부터다. 미성년자들에게 부모가 될 중장년들이 모두 사망했으니 당연하게도 도시엔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미성년자들이 엄청 많다. 이들은 홀로 생존해나가야 하는데 근로권을 비롯하여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권리가 거의 없는 편이다. 구걸과 절도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부와 권력은 모조리 노인들 차지고 그들의 보호를 받는 스타터들만이 풍족한 삶을 산다. 그 세계에서 미성년자는 노인보다 우월할 수 있는 것이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젊음'이다. 그들을 부르는 '스타터'라는 말 자체에 담겨 있듯이 '엔더'라 불리는 노인에 비해 월등하게 강한 육체에 담긴 싱그러운 생명력이 그들이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마저도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엔더들이 젊은 그들의 몸을 차지하기 위하여 '바디 뱅크'라는 것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타터의 두뇌에 칩을 넣어 그 칩으로 엔더의 의식과 링크하여 엔더가 스타터의 육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얼른 이해가 안된다면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주로 10대 청소년들의 육체가 그 대상이 되는데 그렇게 노인의 의식에 지배된 청소년을 '렌터(RENTER)'라고 한다. 그렇게 틀린 명칭은 아니다. 정말로 렌터가 된 청소년들의 육체는 렌트카와 다를 바 없으니까. 살인을 제외한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엔더는 노인의 육체로는 못하는 온갖 익스트림 스포츠와 약과 술 그리고 섹스로 넘쳐나는 문란하기 그지 없는 환락을 즐긴다. 그것을 두고 소설에서 누군가 비아냥거리듯 말한다. 렌터가 된 엔더들은 렌트한 육체보다 자신의 차를 더 소중히 한다고. 이 말 그대로다.


 전작 '스타터스'는 주인공인 10대 여성 '켈리'가 아픈 동생 '타일러'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바디 뱅크'에게 육체를 대여했다가 전체 스타터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음모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 모든 음모의 배후에는 '올드맨'이란 수수께끼의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결국 잡히지 않고 끝난다. '엔더스'는 바로 그 올드맨과 켈리가 치르는 마지막 결전이다.


 일단 되도록 '엔더스'를 읽기 전에 '스타터스'를 먼저 읽으시라고 간곡하게 부탁드리고 싶다. '엔더스'의 이야기 자체로는 전작을 읽지 않아도 따라가는데 무리가 없으나 이 '엔더스'에서 '스타터스'의 놀라운 반전들이 다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거꾸로 읽으면 '스타터스'가 지닌 뛰어난 서스펜스의 감칠맛이 휘발되기 때문이다. '스타터스'는 정말 재밌다. 신체 대여 장르가 주는 정체성의 의혹과 반전을 잘 살려낸 작품으로 끝까지 뒷 페이지를 넘기는 흥미를 유지한다. 아마도 마지막 반전에선 꽤나 놀라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엔더스'에게도 그만한 반전이 있다. 작가 리사 프라이스는 렌트된 육체의 진짜 정체성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독자의 허를 찔러 반전을 만드는데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도입부'는 '엔더스'가 더 굉장하다. 켈리가 우연히 예전에 알던 렌터를 만나 뒤따라갔는데 그만 눈 앞에서 그 렌터가 말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알고보니 그 폭발은 올드맨이 일으킨 것이었고 그는 렌터의 뇌 속에 이식된 칩을 마음대로 폭발시킬 수 있었다. 이제 켈리는 자기뿐만 아니라 똑같이 칩을 이식당한 남자 친구 마이클과 동생 타일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올드맨을 찾아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올드맨이야말로 바라는 것이었다. 그도 켈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스타터스'에서 켈리의 칩은 모종의 개조를 당했다. 덕분에 한 명만 접속할 수 있었던 칩이 여러 명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칩이 되어 버렸다. 다수의 엔더들이 하나의 육체를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드맨은 거기서 훌륭한 도구 혹은 병기로서의 효용성을 깨닫는다. 하나의 육체를 여러 명의 전문가가 동시에 접속하여 일한다면 그 육체는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인가! 올드맨은 그 칩을 필요로 한다. 켈리의 뇌에서 떼내어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이렇게 켈리와 올드맨은 누군가 하나 떨어져야만 건너갈 수 있는 외나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노려보며 다가서고 있다.


 '렌트 가능한 신체'는 SF의 고전적 아이디어 중의 하나다. 내 기억으로 그 시초는 아마도 로버트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일 것이다.



1959년에 나온 이 소설은 영혼과 내세가 정밀하게 규명되고 그리하여 영혼 이식 기술이 발달한 22세기를 그리고 있다. 거기서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부유한 자들의 불사를 위해 과거의 죽기 직전의 사람들을 타임 슬립시켜선 그들의 몸을 부유한 자들에게 영구 임대한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당대 자본주의에 대한 선명한 비판이 되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 더욱 가속화된 노동 착취 상태에 있어서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육체 그리고 정신만은 자기 것으로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셰클리의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그마저도 자본주의는 착취할 것이라 예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몹시도 불길한 예언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것이 실현되었음을 보고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에서 말이다. 미셀 푸코는 신자유주의가 다름 아니라 노동자들의 육체와 정신을 자본가처럼 만드는 것이라 간파했다. 자본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로 이제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고 노동의 권리 보다 기업의 이익을 더 칭송하며 복지 보다 경쟁을 더 선호한다(물론 복지 역시도 원래는 노동 계급의 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나온 것이었지만.) 부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현재 가정과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는데도 편파적인 기업 절세로 대기업의 사내 보유액은 9백조에 달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황과 살인적인 고용란에도 대기업은 조금의 희생조차 하지 않으려 하며 말도 안되는 임금피크제 같은 것으로 노동자의 임금만 어떻게든 줄이려 한다. 그런 상황인데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의 일이라는 듯이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으니 셰클리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거기다 그것을 획책하고 있는 정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연령층을 감안한다면 '스타터스'와 '엔더스'의 이야기도 그저 공상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 사회'는 소수의 젋은 세대가 다수의 노인 세대를 부양하게 된다.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평균 수명은 자꾸 늘어나기만 하니 젊은 세대에 부과되는 짐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면 젊은 세대들이 과연 자신의 육체를 자기의 것으로 여길 수 있을까 싶다. 육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부양에 따르는 온갖 사회적 의무의 쇠사슬로 칭칭 감겨져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스타터스'와 '엔더스'도 '불사판매 주식회사'처럼 예언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점차 진전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 그만큼 전면화 될 세대 착취를 우려하여 세대가 공존할 수 있는 활로를 이제라도 찾자는 뜻에서 한 편의 소설로 형상화 된 예언. 너무 앞서 나간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 아무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도 가열차게 '고령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다 다수의 노년들이 렌터가 된 엔더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므로. '스타터스'와 '엔더스'는 실은 바로 그 노년들에게 읽히고 싶은 작품이다. 암울하기 그지 없는 미래를 앞둔 젊은 세대들을 부디 좀 헤아려 달라는 간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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