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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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 윤리.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고 얼른 떠올리게 된 두 단어다. 니체 덕분이다. 그는 이 둘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행위 할 때 언제나 우리가 가진 기억의 한 단면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어떤 행동을 할 때 우리는 필요한 기억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은 망각하니까. 행위는 망각이 선행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망각은 어디까지나 선택과 배제로 인한 결과다. 그런 면에서 비윤리적이다. 필요에 따라선 타인마저도 쉽게 망각할 수 있다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도덕은 이러한 부당한 망각에 저항하여 단면이 아니라 전체를 기억하려 애쓰는 양심을 만들었다고 니체는 말했다. 내게 '그믐'의 주인공 남자는 바로 그런 니체의 양심이 구현된 존재로 보였다. 사춘기 시절에 동급생을 칼로 찔러 죽인 그는 후일 병원에서 그믐달이 뜬 어느 날 '우주 알'이란 존재를 영접하고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전체 기억을 볼 수 있는 힘이었다. 소설에서는 이를 패턴이라 부른다. 그것은 표면의 배후에서 움직이는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는 창구와 같다. 그런 점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기억을 대등하게 복원하려는 니체의 양심과 닮아 있다. 그런데 소설엔 그렇지 않은 이들이 나와 남자와 대비를 이룬다. 이들은 남자를 둘러싼 여자들로 하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고 다른 하나는 남자가 죽인 아이의 엄마다. 둘은 모두 과거의 아픔에 사로잡혀 니체가 비윤리적이라 칭했던 행위 중심의 부분적인 기억들을 가지고 남자를 찾아와선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어려움과 고통만 토로할 줄 알았지 정작 남자의 삶은 어떤지, 그 내면엔 무엇이 움트고 있는지 전혀 묻지 않는다. 한 마디로 두 여자는 자기중심인 것이다. 반면 전체를 기억하는 남자는 언제나 더 많이 들으려 애쓰고 그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맞춰주기도 한다. 그녀들에게 기억이란 지금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남자에겐 자기변호를 위한 기억의 수집 보단 타인의 행복을 창출하는 기억의 창조가 더 중요하다. 즉 남자는 타인중심이다. 소설은 이렇게 자기중심과 타인중심으로 선명하게 나눠진다. 물론 소설은 후자를 지향한다. 단적으로 소설이 타인을 없애는 흉기로 지극히 자기중심 적인 로 시작해서 오로지 상대를 드러내야만 자신을 보일 수 있기에 타인중심이라 할 만한 으로 끝난다는 점과 여주인공이 남자의 궁극적인 희생 후, 비로소 '도대체 너는 누구였어?'라는 질문을 시작한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치 소설에서 여자가 작두로 원고를 잘못 잘라 모든 게 뒤섞여 버린 것 같은 형태를 취한 소설의 형식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다. 여자가 이야기를 잇기 위해 원고를 최대한 집중해서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듯이 소설도 이런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타인중심을 더욱 경험토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설은 단면을 만드는 작두가 줄 수 있는 '확실한 앎' 보다는 여자의 머리를 뒤덮는 스카프에 간직된 '모호성'으로 우리를 더 열려고 하며 그 개방을 통해 입체로서의 타인을 응시케 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그믐달이 되도록 이끈다. 그믐달은 아침에 떠서 해가 지기 전에 사라져 버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지만 그 달엔 다음과 같은 힘이 있다.

 달빛에는 이상한 힘이 생겨 잘라진 것을 붙이고, 끊어진 것을 잇게 되지. 그리고 고통을 멈추게 해 줘.(p. 140)

 여기엔 타인중심의 이해로 서로 연결될 때, 우리의 고통은 비로소 끝날 것이라는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려면 오직 한 가지, 나 자신이 그믐달처럼 사라져야 한다. 이것은 나의 기억으로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자세를 필요로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여자 모습처럼 타인에 대한 단정이 아닌 무수한 질문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야 말로 소설이 도래시키고 싶어 하는 그믐의 상황이다. 이야기 속의 아내가 스카프로 자신의 시야를 모두 가렸을 때 홀연히 자기가 정말 원하는 곳에 있게 된 것처럼 바로 그 그믐에서 우리 역시 그토록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 소설은 약속한다. 그러고 보니 버지니아 울프도 무언가를 규정하기 힘든 밤이야 말로 우리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말했었다. 진정한 사랑은 오히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소설을 통해 타인중심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가득 경험한 지금, 버지니아 울프의 말도 있고 하니 나는 더욱 소설의 약속을 믿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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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0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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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0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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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1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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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2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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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2 02: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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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6 1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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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6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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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26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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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30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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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05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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