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
김진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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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김진혁 피디는 알고 있다. 그가 EBS에 있을 때 만들었던 '지식채널e'는 내가 사랑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그가 만든 '미야자와 겐지'편은 그 때까지 그저 '은하철도 999'의 원작 동화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겐지를 전혀 다르게 보도록 만들었고 인간적인 매력마저 한없이 느끼도록 하였다.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유투브를 뒤져 지난 방송분까지 다 찾아 보게 되었다. 그 정도로 내게 '지식채널e'는 각별했다. 몰랐던 것을 알게 하고 아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했다. 앎의 범위가 넓어졌고 아는 것은 깊이가 더해졌다. 그러니 김진혁 pd가 광우병을 소재로 한 '17년 후'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사측에 의해 보복성 인사를 당했을 때는 나도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돌아와 '다큐프라임'을 연출할 때도 사측은 그에게 똑같이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그 때 그는 '반민특위'에 관한 것을 만들고 있었는데 70%넘게 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유 없이 제작을 중단 시켜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11년간 일했던 EBS를 떠나게 된다. 권력의 눈치를 너무 보는 방송국에서 더이상 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런 그의 선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의 손으로 빚어낸 프로그램을 다시 못보는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믿을만한 언론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요즘엔 그런 언론인이 서울에서 반딧불을 보는 것만큼이나 희소하다. 언론을 권력의 시녀도 모자라서 그 시녀의 시종이라고 일컫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편파와 왜곡은 일상이고 진실보다는 선동에 더 주력한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TV를 없애는 것이었다. 불공정하고 거짓된 말에 너무도 멀미와 피로를 느꼈던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김진혁 PD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형식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그것이 바로 '5분'이었다. 나는 그것을 책이 나오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난 이 책을 순전히 '김진혁'이라는 이름 때문에 읽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독립 언론 '뉴스타파'.

 '5분'은 거기서 만들어진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어봤는데 소재와 담론이 더욱 거침없어진 듯 하다. 책은 모두 '생각, 하다'와 '경계, 짓다'라는 두 개의 파트로 나누어 각각 9개의 꼭지를 담고 있는데 형식은 먼저 '5분'의 방송 내용을 수록하고 뒤에 그것에 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꼭 한국의 현실과도 연결한다는 것으로 항상 꼭지의 마지막은 그것과 상관있는 한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아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그 대상이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이기에 사유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끈다. 더구나 여기에 실린 내용들은 오늘의 사회를 마주하노라면 꼭 한 번은 부딪혔을 문제들인지라 더욱 그렇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의무급식 중단으로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섰던 복지, 교학사의 친일적 역사 교과서 발간으로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킨 식민 사관의 극복, 젊은 시나리오 작가인 최고은씨의 아사로 불거진 열악한 영화판 종사자들의 문제, '안녕하십니까'의 대자보로 일깨운 이 모든 불의와 그로인한 아픔 앞에서 그저 나만 안녕하면 다냐는 문제 제기에다 정당한 파업권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한 노동자에게 47억을 배상하라는 거의 살인이나 다름없는 판결로 수많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자살을 가져왔던 상황 앞에서 같은 노동자로서 느끼는 참담함 그리고 최근 어제 6030원으로 결정난 최저임금까지. 볼 때마다 한 번은 궁금했고 더러는 고민했던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절로 사유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우리가 보아야 할 곳으로 데리고 가는 이 책 '5분'은 이 방송이 일종의 정신적 지주로 여기고 있는 미국의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가 했던 방송 제목 그대로 'SEE IT NOW'라 할 수 있다.


이 책엔 '안녕들하십니까'란 대자보 전문이 실려 있는데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 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자기 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P.93)


 당신의 대답은 무엇일까? 나는 결코 안녕하지 못하다. 나는 작년 세월호 이후로 눈물이 많아졌고 분노도 많아졌다. 사회를 바라볼수록 쌓이는 갈증을 해갈할 단비는 그 어디에서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상심으로 더욱 깊게 갈라지도록 하는 삽질만 가득하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그저 이곳을 떠나야 하는 생각뿐이다. 보도를 보니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자가 한 해만 7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젊은 세대의 70%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답했다고도 한다. 이유는 사람의 가치를 전혀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란다. 나와 닮은 자들이 많다. 그만큼 여기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5분'을 읽어보면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나 최저임금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영화판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사람의 가치를 하찮게 본다는 젊은 세대의 성토가 사실이며 언젠가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언론이라도 공정해야 할텐데 공영방송이라는 KBS 사장이 선출되는 과정을 보노라면 그리고 권력자를 비판하는 인터넷 댓글마저 명예훼손으로 걸고 넘어지겠다고 나서는 지금의 방통위를 보노라면 공정에 대한 기대는 어림도 없는 전망이라는 것을 확신케 한다. 더구나 지금은 마치 대처의 이중국민 정책을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온갖 라벨링으로 연대해야 할 사람들을 사분오열시키고 국민마저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더욱 어디서 희망의 끈을 찾을까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심정은 김진혁 PD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무엇보다 그는 직접 경험까지 한 터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울분의 토로가 아니다. 절망의 목록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럴수록 냉정한 눈으로 사태를 보려하며 정확히 문제를 짚으려 한다. 나는 그것을 특히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에서 느꼈는데 사실 누구나 알듯이 '국개론'이 유행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국개론'은 이 책에 나오는 '국가개조론'의 준말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이 정작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뽑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사람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서 지지하는, 그러니까 그들의 '계급배반투표'를 비아냥하는 말이 바로 '국개론'인 것이다. 실제로 2013년 대선 당시 저소득층의 60.5%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는데이를 두고 유행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엔 좀 다른 시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쓴 손낙구의 분석이 그랬다.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있었던 네 번의 선거를 분석했고 거기서 계급배반투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조사 결과 사람들은 이제껏 계급에 충실한 투표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계급배반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주지못하는 정치 또는 정당 체제에 있다"(P. 201)


 이걸 보고 내가 퍼뜩 한 생각은 과연 내가 무엇을 아느냐였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섣불리 단정부터 내린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모든 문제를 바라보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너무 감정에만 치우쳐 냉정히 살펴보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식채널e'가 그랬듯이 '5분'도 은연중 내게 설령 아는 것이라 해도 좀 더 깊이 내려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바닥까지 모조리 훑어본 뒤에 절망해도 늦지 않다면서...



 이로써 '5분'은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내게 증명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꼭 생각해야 할 문제들을 짚어주는 데다 어떤  땐 그저 선입견이나 감정으로 대했던 문제들마저 냉정하고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하니까. 그렇게 보다 바른 판단으로 나아가게 하는 디딤돌이 되려는 책이 바로 '5분'이다. 이는 서문에 인용된 해직 언론인의 마음 그대로다.


 행복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순간순간 행복한 때가 있어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순간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거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음에도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 듯 싶다. 행복은 그런 분들과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p. 7)


 이 말에 따라 김진혁pd는 이 '5분'을 어떤 의미로 만들었는 지를 밝힌다.


 어떤 대단한 목적이 아니라 그저,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득 발걸음을 멈추는 5분을 마련해주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P.8


 5분은 하루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 것 아니다. 하지만 언론 기자의 말대로 우리의 행복이 완벽한 하루에서 오지는 않는다. 때로  하루의 아주 작은 순간도 하루 전체를 행복하게 물들일 수 있다. 사람의 추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순간이다. 그 순간이 삶 전체를 '그래도 살만했어.'라고 여기는 만족감을 낳게 만들기도 한다. 그건 불과 5분일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행복이란 상황에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순간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내가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용기를 내었던 순간, 아무런 계산 없이 타인을 돕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던 순간, 그렇게 세상에 굴하지 않고 내 인간다움을 증명했던 순간. 바로 그것들이 모여 행복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은 아닐런지.

 행복은 그런 순간들이 모인 모자이크일 것이다.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더 커지는.


 이 책은 보아야 할 지점들을 가리키고 좀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사유하도록 인도하여 그런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 행위란 앎이 수반되어야 나올 수 있다. 오로지 실용을 위해 취득한 설익은 앎은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허다한 지식인들처럼 굴종을 낳지만 그런 타산없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으로 다다른 앎은 옳은 것을 선택할 베짱을 줄 것이다. '5분'은 그런 베짱을 키우는데 좋은 조력자가 될 듯 하다.

 '5분'은 스스로 그런 베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즉 이 시대에 전혀 안녕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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