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OPEN YOUR EYES!'

 공포 영화에서 눈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생명마저 빼았을 수 있는 위험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기에 살려면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샅샅이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 그러지 못한 자들이 희생되었다. 숨어있는 살인마를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관객들은 자주 이렇게 소리치지 않았던가! "제발 뒤좀 돌아봐!"


 공포는 어둠에 있고 눈은 그 어둠을 몰아낼 빛이었다. 이건 허다한 공포 영화에서 굳어진 RULE이었다. 그런데 신예 작가 조시 멜러먼의 데뷔작 '버드 박스'에선 이 룰이 역전된다. 오히려 공포는 눈에서 오고 어둠만이 유일한 생명줄이 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잇달아 사람들이 주위의 사람들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들은 마치 자신을 비롯하여 주위의 모든 생명을 멸절시켜 버리겠다는 듯이 행동하는데 그 이유가 나중에 밝혀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를 보고나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정체를 모르는 것은 그 존재와 눈이 마주치면 바로 광기에 사로잡혀 남들과 자신을 죽여버리기 때문이다. 즉 자신도 살고 주위의 사람도 살리려면 무조건 그 존재를 보지 않는 수밖에 없다. 하여 존재의 정체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것은 미국에까지 내려온다. 소설의 주인공은 맬로리. 그녀는 어느새 미국이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삼켜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잇달아 참혹하게 죽고 경찰도 군인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맬로리는 언니와 함께 살다가 윗층에서 언니가 자살한 것을 본 후 도움을 청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로 한다. 그녀의 뱃속에 아이가 잉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맬로리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현재는 이미 아이는 태어나 다섯 살이 된 시점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바깥 세상을 한 번도 못 봤다. 창문을 내다본 적도 없다. 맬로리조차 창으로 바깥 풍경을 못 본 지 4년이 넘었다.(P. 11)


 그런데 그녀는 지금 4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그 집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4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녀에겐 아이들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살기 위해선 절대 눈을 떠서는 안되는데 안전이 보장되는 곳까지 무사히 탈출하려면 눈을 뜨지 않고서는 무척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눈을 감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여정. 그래서 그녀는 다른 감각이 필요했다. 눈처럼 방향과 외부의 위험을 알려줄만한 것을. 그렇다. 고맙게도 신은 인간에게 두 개의 눈을 허락한 것처럼 두 개의 귀를 허락했다. 청각이 그녀가 의지할 유일한 대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4년을 기다렸던 것이다. 아이들의 청각을 훈련시켜 잠수함의 소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드디어 떠날 날이 이제 다가왔다. 그녀는 안대로 자신과 두 아이의 눈을 모두 가리고 4년만에 처음으로 집을 나선다. 어둠 속에서 '그것'의 존재를 희미하게 감지하면서...


 동시에 4년 전의 과거가 진행된다. 도움을 찾아 떠났던 그녀가 간신히 찾은 보호처. 거기엔 모두 다섯 명의 남녀가 있었다. 바깥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곳을 담요로 가로막은 그 곳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미드 '워킹데드'에 나오는 공동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거기서 생존을 위해 토론으로 좀비를 분석하고 대처 방법을 논의했듯이 이 공동체도 그렇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량은 떨어지고 물품도 부족해지기에 아무래도 그 안에 있을 수만은 없고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까닭이다. 즉 불안은 여전하다.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 또한 그러하다. 아무리 협력이 잘 된다고 하더라도 생존이 절박한 상황인 이상 내가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리 없고 그런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는 이상 의견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의혹이 쌓여가고 점차 불신의 벽으로 굳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때로 목격하게 된다. 바깥의 적이 아무리 무섭다고 하더라도 내부의 지인보다 덜 공포스럽다는 것을. 

 맬로리가 속한 공동체도 그렇게 된다.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의 노트에서 읽었던 이 말과도 같이.


 인간이 두려워하는 크리처는 바로 인간 자신이다.(p. 275)


 그러고 보면 지금 맬로리가 아이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하는 현재나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함께 있었던 과거나 그 상황은 본질적으로 같다. 모두 갇혀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맬로리는 집을 탈출하여 바깥으로 나와 있으니 다르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시야를 모조리 안대로 가리고 있다. 그녀는 사방 어느 곳도 볼 수 없다. 그것은 과거의 공동체가 집의 창문을 모두 담요로 가려 바깥을 하나도 볼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그녀도 과거의 공동체랑 똑같이 갇혀있다고 봐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맬로리는 그렇게 철저히 준비했는 데도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현재의 이야기는 대부분 맬로리의 내면으로만 채워지는데 거기서 우리는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도 금방 두려움에 빠지고 마는 그녀를 보게 된다. 과거 공동체가 그랬던 것과 똑같은 모습을 말이다. 그들도 생존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해도 불안은 늘상 존재했다. 마치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제 우리는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버드 박스'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직접적인 표현은 바로 다음과 같은 맬로리의 독백으로 제시된다.


 그녀는 지금 이 집이 커다란 상자처럼 느껴졌다. 이 상자에서 나가고 싶었다. 톰과 줄스는 바깥에 있지만 여전히 이 상자에 있는 셈이다. 이 세상은 사방이 폐쇄되어 있다. 세상은 저 밖에 걸어놓은 새 상자 같은 종이 상자에 갇혀 있다. 맬로리는 톰이 그 뚜껑을 열 방법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뚜껑을 열면 그 위에 두 번째 뚜겅이 있고 그 뚜껑을 열면 세 번째 뚜껑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상자에 갇힌 거야. 영원히.' (p. 279)


 소설의 주제는 이 독백에 그대로 나타난다. 비록 독백은 4년 전의 것이지만 그 때의 예감 그대로 우리는 여전히 그녀가 상자에 갇혀 있음을 본다. 맬로리는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일까? 아이들을 훌륭히 준비시킨 지금도 그녀는 왜 여전히 불안에 떨고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


 여기서 왜 조시 맬러먼이 소설의 구성을 하필이면 현재와 과거로 나누어 병행시키는 지 알 수 있을 듯 하다. 바로 '갇힘'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라는 것 때문임을 말이다. 즉 우리를 정말로 가두고 있는 것은 바로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이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것은 현재 맬로리의 모습에서 더욱 드러난다. 그녀가 불안에 빠지는 진짜 이유는 바깥의 '그것' 때문이 아니다. 실은 자신이 훈련시켜온 아이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여전히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기에 불안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타인을 믿었다면, 자신처럼 전적으로 신뢰했다면 그녀의 여정은 좀 더 편안했을 것이며 애초에 이런 여정을 떠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공동체가 무너져 내렸던 것도 바로 불신 때문이었으니까.


 이렇게 조지 맬러먼의 '버드 박스'는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빚어낸 그 자체로 좋은 공포 소설이지만 작가는 독자에게 단순히 호러만 주려하지 않는다. 현대인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어서는 늘 갇힌 느낌을 주는 불안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도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바로 타인을 신뢰하는 것이다. 현재의 맬로리 내면과 과거의 공동체는 모두 그것을 위한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를 가두고 있는 새장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작가 스스로 내놓는 셈이다. 탈출엔 무엇보다도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작가는 신체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뜨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내 안전만 갈구하느라 타인을 위협으로만 보는 신체의 눈 보다는 서로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해와 배려의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에게서 얻는 게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내어줄 때 가능하다.  즉 자신의 마음을 먼저 상대방에게 열어야만 하는 진정으로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다. 말 그대로 'OPEN YOUR HEART!'인 것이다.


 소설의 여정은 그런 여정이다. 'OPEN YOUR EYES'에서 'OPEN YOUR HEART'로 나아가는.

 그 여정 속에서 작가 맬러먼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빗장은 바깥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내부에 있다고 말한다. 정말 갇히기 싫다면 먼저 자신부터 열어야 한다고 말이다. '버드 박스'는 그것을 위한 일종의 통과 의례라 할 수 있다. 열지 않았을 경우 얼마나 무시무시한 불안과 공포를 겪게 되는지 제대로 경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스스로 'OPEN HEART'로 나아갈 필요성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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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7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18 0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