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
최혁곤 지음 / 시공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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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은 <B컷>, <B파일>로 한국 스릴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최혁곤의 신작이다. 하지만 스릴러는 아니고 본격 미스터리에 가깝다. 제목 그대로 탐정이 아닌 전직 기자인 박희윤과 전직 경찰인 갈호태가 주인공이 되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데 서막과 종막 그리고 그 사이의 5막을 합하여 모두 일곱 개의 에피소드가 여기엔 담겨있다. 그렇다고 모두 별개의 사건으로만 이뤄지지는 않고 서막에 등장하여 주인공 박희윤에게 크나큰 상처를 입히는 연쇄살인마 '바리캉맨'을 거대한 줄기로 하여 일곱 개의 에피소드를 묶고 있는 구성이다.


(표지가 참 마음에 든다.)

 

 간단히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면 서막에서 박희윤은 현직 기자인데 어느날 갑자기 헤어진 옛 애인이자 인기 텔런트인 채연수에게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를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에게서 채연수를 구하고 싶으면 2시까지 일산 호수 공원 앞 MBC로 나오라는 연락을 받는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박희윤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원래 형사였지만 심문실에서 용의자인 여성과 눈이 맞아 '우쭈쭈'(이게 무엇인지에 대한 상상은 읽는 여러분들에게 맡긴다.)를 벌이다 발각되어 파면당한 뒤 이제는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서 '이기적인 갈사장'이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갈호태에게 도움을 청한다. 결국 둘은 채연수를 찾지만 그녀는 이미 머리가 잘린 싸늘한 주검이 된 뒤였고 범인이 이리저리 둘을 뺑뺑이 돌린 덕분에 살인 용의자까지 되어 버린다. 박희윤과 갈호태는 그제야 범인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 그 범인이 다름아닌 지금 한창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바리캉맨'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때 박희윤은 왜 범인이 자신들을 채연수를 빌미로 이리저리 끌고 다녔는지 그 진짜 이유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데...


 서막에서 박희윤은 범인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맞고 그 대가로 기자직에서 쫓겨난다. 이제 그는 전직 기자가 된 것이다. 백수가 된 박희윤은 신문사가 아니라 갈호태가 운영하는 카페로 매일 같이 출근하여 손님이 뜸한 그 곳에서 갈호태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구양과 더불어 시간을 죽여가며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그리고 아직 사랑하는 감정이 남아있는 채연수에 대한 회한을 곰곰이 되씹고 있다. 그러다 자신이 사수가 되어 기자로 훈련시켰던 후배 여기자 홍예리가 조언을 구하는 사건에 뛰어든다. 그렇게 1막, '신들이 속삭이는 밤'이 시작된다.


 에피소드는 그런 식으로 이뤄진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다가 아니면 과거의 연줄로 부탁을 받거나 혹은 사건 당사자로서 말이다. 이것이 탐정이 등장하는 본격 미스터리물과 다른 점이다. 보통 탐정물은 정식 의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은 탐정이 아니니(아시다시피 우리나라에선 탐정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법적으로 허용하자는 법안이 상정된 것으로 아는데 논란이 많아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제목에서 굳이 탐정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도 이 탓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왜 시작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랄까?


 비록 시작은 다르더라도 에피소드에 담긴 본격 미스터리이 향취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신들이 속사이는 밤'은 홍예리 기자에게 누군가의 제보로 들어온 두 장의 사진을 단서로 한 아랍 여인에게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며 '목숨 걸고 베이스 볼'은 박희윤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있는, 부상을 입었다가 재활 치료로  훌륭하게 재기에 성공한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부활파'에 얽힌 살인 미스터리를 푼다. 여기서는 본격 미스터리에서 빠질 수 없는 고전적 요소인 알리바이 공작이 핵심이다. CCTV로 사건 당일의 모든 정황이 녹화된 가운데 범행이 불가능한 시간에 이루어진 살인의 알리바이를 깨야 한다. 3막 '제4요일의 암호'는 제목 그대로 셜록 홈즈에서도 나온 바 있었던 신문 광고를 통해 전달되는 암호가 중심이다. 박희윤은 우연히 자신이 일했던 민주일보에 실린 개인 광고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며칠에 걸쳐 그런 이상한 광고가 서로 다른 내용으로 계속 발견되자 그는 이것이 암호라는 걸 직감하고 풀이에 나선다. 4막 '세월이 가면 43초'는 한동안 잠적했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 여가수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다. 그녀는 컴백의 첫 무대로 자신의 열혈 팬들만 초대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증심도'란 섬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마지막 곡으로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부르는 동안 43초간 정전이 되고 그 뒤 그녀는 시체로 발견된다. 갈호태는 그녀의 입에서 약한 아몬드 향이 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청산가리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주시하고 있던 가운데 일어난 43초의 암흑 속에서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과연 그녀는 자살한 것일까 아니면 타살한 것일까?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 한정된 용의자. 그리고 사방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벽. 이렇게 이 에피소드는 밀실 미스터리를 담고 있다.


 "장소가 좀 넓지만 일종의 밀실 미스터리라고 봐야죠."(p.227)


 5막 '고도리 저택의 개사건'은 일단 제목을 잘 봐야 한다. '괴사건'이 아니라 '개사건'이다. 제목 자체에 은근 유머가 깃들어 있는데 과연 이 에피소드는 유머 미스터리에 가깝다. 아니면 일상 미스터리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갈호태가 너무도 존경하는(하지만 실력이 아니라 연줄과 운이 좋아 승진한 게 분명한) 전 경찰청장에게서 잃어버린 개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아닌 '부탁'이 들어오고 바로 작년에 한국 최고의 기자에게만 주는 상을 받았던 박희윤과 강력계 민완 형사 갈호태는 자신의 연줄로 복직시켜주겠다는 것과 바로 옆집이 인기 걸그룹 핫식스 숙소라서 매일 그녀들을 볼 수 있다는 전 청장의 말에 홀려서 (박희윤은 계속 툴툴 거리지만) 개 수색에 나선다. 설정대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다. 그리고 마지막 종막. 거기서 박희윤은 자신에게 계속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바리캉맨'과 최후 결전을 치르게 된다.


 이렇게 이 단편집은 본격 미스터리의 주 소재들을 두루 사용하면서 내용의 다양한 변주로서 독자의 흥미와 재미를 돋운다. 그렇다고 본격의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단편집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모습마저 가지고 있는데 1막부터 종막까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모들을 골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1막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그리고 2막에서는 용산 참사를 낳았던 과도한 부에 대한 욕망을 간접적으로 꼬집고 있다. 3막은 반값 등록금을 위한 대학생들의 시위와 기업의 비정한 정리해고 방식을 통해 현재도 미래도 암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며 4막에서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은연 중에 드리워진다. 그리고 종막에서는 요즘들어 더욱 문제시 되고 있는 내부고발자 보호 문제를 다룬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동안 썼던 무거운 스릴러와는 달리 캐릭터 중심의 '본격 사회파 코지 미스터리 스릴러의 짬뽕'을 시도해 보았다고 하는데 그 말 그대로다. 본격과 사회파 미스터리의 풍미가 짬짜면처럼 고루 감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둘 중 어느 쪽을 좋아하더라도 만족하지 않을까 한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작품 내적인 면이 아니라 작품 외적인 면에 있지않을까 싶다. 요즘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바로 거기에.

 이제는 기자라는 말보다 그들을 비하하는 '기레기'란 말이 더 보통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기자란 사람들에게 불신의 대상이다. 물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다. 세월호와 국정원 사태 등등 불법과 비리가 얼룩진 커다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기자들은 왜곡하거나 침묵하는 등의 돈과 권력에 약한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엔 그런 기자로서의 자괴감 같은 것이 가득 드러나 있다. 오늘날 기자들은 왜 이렇게까지 추락해 버렸을까 하는. 아마도 박희윤이 전직 기자로 설정된 것도 그가 그렇게나 자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 진짜 이유는 이러한 현실에서의 기자 모습을 반영한 게 아닐까 싶다. 그 한계 지점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더욱 좋았던 작품이다. 때문에 정말 기자가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에 저어된다면 그리 구애받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종막에서 이 작품이 시리즈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밤의 노동자'로 활약하는 그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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