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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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가 신문에 연재한 소설들, 그러니까 첫 '우미인초'부터 '산시로'까지는 왜 하나같이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것에서 시작되는걸까? '우미인초'는 교토의 산을 올라가는 중이고 '갱부'의 소년은 자신이 죽을 곳을 찾아 걸어가는 중이며 '산시로'는 기차를 타고 도쿄로 가는 중이다. 단적으로 이 모든 이들은 길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그것도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안정을 구가할 수 있는 곳에서 뛰쳐나와 불확실한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고 있는 것이다. 소세키의 소설들은 그의 문학론을 세상에 송출하기 위한 방법이었고 그런 면에서 신문 연재란 자신의 문학론을 가장 대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그이니만큼 연재소설엔 각오가 남달랐을 것으로 보이며 그것을 감안한다면 분명 여기에도 뭔가 뜻이 있을 듯 하다.


 어쩌면 이것은 당대 일본 상황에 대한 비유일 수 있다. 때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껏 부풀었던 희망의 거품이 모조리 꺼지고 지식인들 사이에선 현재 일본에 대한 환멸과 우울이 거세어지던 시대로 골목 어귀를 돌다가 문득 길을 잃고 말았다는 자각으로 당황하며 저 하늘 멀리 사위어가는 황혼녁의 태양을 처연하게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소세키 역시 비슷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터라 시대 현실의 반영으로써 그렇게 시작했을 것이란 가정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엔 보다 더 근본적 이유가 있어 보인다.  바로 개인적 체험에서 나온 결과라는 측면이다.

 그는 유년 시절에 친부모와 헤어져 양부모 밑에서 살아야 했다. 그러다 또 양부모에게 파양을 당하여 다시 친가로 돌아와야 했다. 흔히 말하듯 부모란 자식에게 둥지와 같은 존재다. 둥지가 제 발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 않듯이 부모도 자식에겐 언제까지나 제자리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있는 존재였다. 부모에 대한 그러한 생각 때문에 우리들은 어쩌면 사랑이나 진리처럼 세상에 절대로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러니 만일 부모가 그런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변하지 않는 가치나 세상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고 말리라. 나쓰메 소세키는 두 번이나 그런 경우를 당했다. 자신이 안정적이라 믿었던 세상이 여지없이 붕괴해 버리는 것을 두 번 경험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어찌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랬다. 소세키에겐 세상의 그 무엇도 절대적이지 않았다.  '같은 강물에 두 번 손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던 헤라클레이토스처럼 모든 것은 그저 우연적이고 임시적인 것일 뿐이었다. 진실로 나쓰메 소세키는 그런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이 여름이 곧 끝나 겨울이 올 것을 내다봤으며 혹한의 겨울에 처했어도 봄이 오리라는 것을 믿었다. 일본 사회도,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던 서양의 근대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은 강물이 흐르다 어쩌다 닿게 된 바위였고 새가 어쩌다 앉게 된 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소세키에게 도락의 여유를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니, 도락에 대한 신념을 주었다고 해야 하리라.

 '우미인초'의 리뷰에서도 말했듯이 직업과 달리 도락은 단적으로 거기에 너무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추종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 누군가 금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금시계의 가치가 무엇인지 스스로 가늠하는 것. 그것이 바로 도락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우미인초'부터 그는 내내 이 '도락'을 강조해왔다. 전혀 다른 세계를 담고 있는 '갱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세 작품 모두 '떠난다'로 시작하는 것엔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변하거나 허물어지지 않는 절대적인 현재는 없으며 모든 것은 그저 어쩌다 깃든 임시적인 거처에 불과할 뿐이니 맹종 보다는 먼저 자신의 시선으로 관찰을 하라는 뜻을 향한 출발이라는.

 그렇기에 세 소설 모두에서 소세키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가장 많이 하는 행위도 계속 뭔가를 보는 일이리라.



 세번째 연재작 '산시로'는 소세키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그만큼 인기를 얻었다는 뜻으로 일례로 이 소설의 무대로 지금의 동경대가 나오는데 거기 실제로 있는 연못에서 소설의 주인공 산시로는 흠모하는 여인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연못은 현재 '산시로의 연못'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거야 어쨌든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우미인초'부터 내내 지속된 직업과 도락의 싸움이 보다 전면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히 '산시로'엔 도락과 직업 사이의 선명한 전선이 존재한다. 한편에는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 같은 속세의 명성이나 돈을 쫓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뿐인 '도락'이 있고 다른 쪽엔 그런 자를 패배시키고 길들이려 드는 '세계'가 있다. 산시로는 그 틈에 끼어 있는데 그것은 그가 흠모하는 여인인 미네코도 마찬가지다.


 여인이 상징으로서의 어떤 지향점으로써가 아니라 주인공과 똑같은 참여자로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존재로 나타나는 점이 '산시로'의 이채로운 점이라 할 만하다. 말하자면 주인공과 동행하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면에서 '산시로'는 후에 나올 소설인 '문'에서의 세상으로부터의 소외와 두려움을 공유하는 '부부'를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왜 하필이면 '산시로'에서 도락과 직업의 대립이 전면화 되었는지 궁금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산시로' 바로 전에 나온 단편인 '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그 단편을 가져오는가 하면 바로 '산시로'를 쓰던 당시의 소세키를 여기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소세키는 세속적 인물인 미에기치로부터 문조를 하나 얻어 키운다. 그는 현재 소설 쓰기의 난항을 겪고 있는 참인데 그 고민 때문에 쓰기에 몰입할 수 없어  '찌요찌요'하고 우는 문조의 울음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그 때마다 그는 문조에게 가서 모이도 주고 물도 갈아준다. 그리고 꿋꿋이 버텨가는 작은 문조('문조는 화려한 하나의 발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채, 묵묵히 새장 안을 지키고 있었다.' - '문조' 중에서)를 보며 감탄한다. 그 생명의 독립적인 면모 때문에 소세키는 세상의 조건에 따라 혼인을 시키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까지 한다(이것은 산시로에서의 미네코 결혼과 관계가 있다. 거기서 미네코는 산시로 앞에서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p. 330)'라는 뜻모를 말을 한다. 이 고백은 바로 문조에서의 소세키 깨달음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문조는 소세키 말고는 아무도 착실하게 신경 써 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죽게된다. 다시 말해 외로이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문조가 무심한 세상에 의해 죽게된 것과 같았다. 그는 미에기치에게 마치 세상을 원망하듯 이렇게 가족을 성토하는 엽서를 쓴다.


 '집안 식구들이 먹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조가 죽어버렸네. 내가 부탁도 하지 않은 물건을 새장 안에 집어넣지를 않나. 더욱이 먹이를 주어야 하는 의무도 이행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잔혹하지 않은가.'


 마지막에 미에기치에게서 답장이 오는데 소세키는 '문조가 불쌍하게 되었습니다.'란 문구만 있을 뿐, 집안 식구들이 나쁘다거나 잔혹하다는 말은 일체 없었다고 밝힌다.


 문조의 죽음은 하찮게 되었다. 그만큼 세상은 비정해 버렸다. 그렇게 한 개인의 삶은 무가치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물론 소세키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서양의 근대화를 추종한 결과 일본에 직업인이 너무 많아진 탓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들이 양산된 까닭이다. 하여 그는 보다 전선을 선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기꺼이 세상의 비주류가 되어 걸어도 불안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주려 했다. '문조'처럼.


 물론 문조는 죽는다. 하지만 죽는다고 해서 패배는 아니다. 그것은 주류 세상의 시각일 뿐이다. 소세키에겐 다르다. 그는 '우미인초' 마지막에서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죽음을 잊은 자는 사치하게 된다.(...) 아무리 춤을 추든, 아무리 미치든, 아무리 장난을 치든 살아있는 데서 벗어날 염려는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사치는 심해지고 대담해진다. 대담함은 도의를 유린하며 마구 날뛴다. 만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큰 문제에서 출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며 말하기를 죽음을 버린다고 한다. 삶을 좋아한다고 한다. 여기서 만인은 삶을 향해 나간다. 단 만인은 죽음을 버린다는 데서 일치하기 때문에 죽음을 버려야 할 필요조건인 도의를 서로 지키도록 묵계했다. 하지만 만인은 나날이 삶을 향해 나가기 때문에 나날이 죽음을 등지고 멀어지기 때문에 마구 날뛰며 추호도 삶 안에서 벗어날 염려가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도의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

 도의에 중점을 두지 않은 만인은 도의를 희생으로 삼아 온갖 희극을 행하며 의기양양하게 군다. 장난친다. 떠든다. 조롱한다. 무시한다.(...) 이 쾌락은 도의를 희생으로 삼아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희극의 진보는 멈출 줄을 모르고 도의 관념은 나날이 희박해진다.('우미인초' p. 434)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근대의 성립이 죽음을 점차 격리하고 망각하는 것과 동시에 이뤄졌으며 네델란드의 철학자 요한 반 퍼슨은 죽음의 망각이 현세적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낳았고 그만큼 삶을 궁핍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들보다 훨씬 전에 근대에 들어와 더 많이 망각되는 죽음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해 이처럼 정확히 피력했다. 그에게 죽음은 긍정의 대상이다. '메멘토 모리'가 강했던 중세에 기사나 귀족들이 명예를 중시했던 것처럼 보다 더 스스로를 고귀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인으로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으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울타리로 여긴다. 그는 죽음이 망각되면 사람들이 보다 현실 중심적이 되어 자신의 욕망을 이기적으로 채우느라 사람이 근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의조차 무너질 것이라 보았다. 그런 그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는 지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는 바다. 지금의 정부는 물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낳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절반이 약간 넘는 유권자들은 '20만원의 연금만 받을 수 있다면', '아파트 가격만 올릴 수 있다면' 하는 생각으로 도의 같은 것은 쉽게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곳곳에서 불법이 승리하고 편법이 활개 치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는 참이다. 우리는 그야말로 산시로가 가장 마지막에 한 말 그대로 '스트레이 십'이 되어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길 잃은 양. 정확히 우리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산시로'가 그런 우울의 초상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기에 희망을 암호처럼 수놓듯 문조와 같은 자들도 새겨넣었다. 그것이 바로 노노미야와 히로타 선생이다. 그들은 문조가 그랬듯이 세상이 자신의 길을 전혀 알아주지 않아도 타협하지 않으며 묵묵히 걸어가는 존재들이다. 도락의 신념으로 무장한 그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에 불안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다. 산시로는 이런 그들을 선망하는데 그러고 보면 산시로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충고를 들은 셈이다. 소설 초반 산시로는 열차에서 자신이 떠나온 고향의 색을 가지고 있는 여인과 우연히 만나 뜻하지 않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데 그녀의 은근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나중에 그녀에게서 '당신은 참 베짱이 없는 분이로군요.(p.24)'란 말을 듣게 된다. 베짱.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그에게 필요했을 지 모른다. 결국 세상과 타협하고만 미네코는 말 할 것도 없고.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길을 몰라서 스트레이 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우리가 정말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고 말했듯이 정말은 우리도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정도는 알고 있다. 다만, 나만 거꾸로 걷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러다 낙오할 것만 같아서 두려워 서성이는 것일 뿐이다. 너무나 직업인이 된 나머지 도락이 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는 커녕 보려하지도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떠받드는 가치와 안정을 쫓아봤자 돌아오는 것은 이전 선거가 잘 보여줬듯이 결국 우리 스스로를 파멸시킬 선택 뿐이다. 오답인 걸 알면서 선택해 놓고 그것이 정답이길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망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정답을 기꺼이 선택할 베짱이 필요하다. 주눅들지 않고. 문조처럼! 문조는 설령 그것이 모이를 주는 손이라 해도 자신을 굽히고 아양을 떨어본 적이 없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가 구축한 세상 안에서 마음껏 활개치고 다녔다. 죽을때까지 그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세상과 싸웠다. 그런 베짱이 이제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베짱이 있을 때 우리는 걷고 있는 길이 설령 아무리 모르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길은 더이상 불안의 존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도전으로 다가오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열린 문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눈을 갖고 싶다. 문조가 되고 싶다.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산시로를 손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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