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인초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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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미인초'는 항우의 애첩으로 유명한 우희의 무덤 앞에 피어났다는 꽃의 이름이다. '우희'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역시 중국 감독 첸 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다. 여기서 장국영이 '패왕별희'라는 경극에서 우희를 연기하는 남자 배우로 분했었다. 그의 이름은 두치. 그는 창녀의 아들로 생활고를 못이긴 엄마는 어린 그를 경극단에 맡긴다. 그의 곱상한 외모로 여자 역할을 맡기기로 결정한 단장은 그를 철저하게 여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도록 훈련시킨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그는 결코 남자로 살 수 없었다. 경극만이 아니었다. 시대 속의 그도 마찬가지였다. 때는 일본 제국주의와 국공내전 그리고 문화대혁명으로 한창 중국이 격동하던 중이었다. 거기서도 두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대의 격량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는 한 곳에 머무르려 하나 시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국 죽음만이 그에게 영원한 정지를 가져다 준다.


 이처럼 '패왕별희'는 요동치는 시대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같은 인물을 제목으로 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우미인초' 또한 그런 것을 보여준다. '우미인초'는 소세키가 불혹의 나이에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어 생애 처음으로 신문에 연재한 소설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한 '문학론'을 출간했는데 가라타니 고진에 따르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문학론'이었다고 한다. 소설이란 그가 추구하는 문학론을 실험하는 하나의 방법론일 뿐이었단다. 자신의 문학론이 얼마나 세상에 통용될 수 있는 지를 가늠하는.


 그런 의미에서 '신문 연재'라는 가장 대중적인 실험이자 소통의 매개체를 쓰고 있는 '우미인초'는 당시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문학론을 집약하고 있다고 보아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그가 직접 고백한 바에 따르면 문학이란 어디까지나 '나와 사물 사이에 일어나는 분화와 발전에 따라서 점차로 몽롱해지는 것을 명료하게 의식하고, 의식한 것을 다시 자세히 구별해가는 것'이다. 즉 그에게 문학이란 하나의 시대상 안에서 점점 더 모호해지는 개별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신 작용을 자세히 구분해서 '세밀하고 명료하게' 묘사해 나가는 작업인 것이다. 또한 그 분화에 있어서는 그것의 내용 역시도 다종다양하기 마련이라 어떤 의식의 경로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지의 선택 역시 대부분 자유로울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런 흐름은 가급적 존중하여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것이며 인위적인 취사선택은 곤란하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자면 나쓰메 소세키에게 문학은 꽤나 현상학적이고 사회학적이며 심리학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집요하게 추구했던 개인주의와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보편성에 짓눌리기 마련인 개체성을 성공적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개체의 그 어떤 미세한 정신 작용도 현전하는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어떤 보편과도 다른 개체만의 고유한 경로를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이란 어쩌면 나를 압도하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나'라는 존재를 구하려는 작업인 지도 모른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모두가 항우를 버릴 때, 자결로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입증했던 우희처럼 말이다. 우희의 자결은 그대로 시대의 흐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식의 표현이 허용된다면 보편에 대한 '고유한' 개인의 승리였던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소설 '우미인초' 역시 하고 있다.



 여기엔 두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나온다.

 먼저 여자부터 차례로 밝히자면 하나는 후지오, 다른 하나는 이토코다. '그 후' 리뷰에서도 말한 바 있는데 소세키의 소설에서 여자란 그냥 여자가 아니다. '그 후'에서 여자란 나라를 표상했다. '우미인초'도 다르지 않다. 두 명의 여자는 각자 다른 나라를 가리킨다. 후지오는 일본이 따라가고자 하는 서양을, 이토코는 거기에 반발해 일본 고유의 정신으로 돌아가려는, 그렇게 그녀가 에도 이전의 수도였던 교토 여자인 것처럼 러일전쟁 이전의 메이지 유신 때의 일본을 의미한다.


 이어 세 명의 남자인 고노, 무네치카 그리고 오노는 이 둘 사이에서 어느 한 방향을 정하고 걷는 개인들이다. 고노는 이토코를, 오노는 후지오를 바라보며 걷는다. 무네치카는 그 사이를 어정쩡하게 맴돈다. 무엇보다 이 세 명의 모습은 그대로 러일전쟁 직후의 일본 지식인들을 반영하고 있다. 더러는 현실에 타협하여 메이지 유신의 정신 따위 모두 잊고 권력과 물질에 경도되었고(오노) 더러는 서양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 비타협 노선을 표방하고 메이지 유신에 걸맞는 그러나 현재는 잘 보이지 않는 대안을 찾으려 방황했다(고노) 또 더러는 어떤 땐 세속적 성공을 탐하다가도 또 어떤 땐 모든 게 진절머리가 나 팔짱을 끼고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다(무네치카). 소설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는 금시계는 정확히 당시 일본 지식인들에게 가장 유혹이 되었던 대상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남들이 '우와!' 할 수 있는 세속적 성공이다. 교토에서 도쿄로 갓 올라온 지식인 오노는 후지오의 금시계를 욕망하는데 그래서 연인인 이토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지오의 마음에 들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세속적 성공을 위해서 당시 일본에서 그것의 기준을 정하고 있는 존재이자 후지오가 표상하는 서양의 근대 가치관을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나쓰메 소세키에게 그것은 지식인이 아니라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오노의 이러한 모습은 '우미인초' 초반에 나오는 고노와 무네치카의 한가한 산보 모습과 대조적인데 나쓰메 소세키가 이 소설에서 그 둘을 대비시키고 있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그는 언젠가의 연설에서 사람이 하는 일을 두고 '도락'과 '직업'으로 나눈 적이 있다. 이것은 서양의 근대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생겨나게 된 구분으로 결정적으로 나쓰메 소세키는 서양의 근대가 정착시킨 분업화로 인해 직업이 세분화 그리고 전문화 됨으로써 사람을 불구로 만들고 있다고 여긴다. 물론 여기서의 불구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것으로 그의 말에 따르자면 이런 것이다.


 개화의 조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그리고 직업의 성질이 분화되면 분화될수록 우리들은 불구적인 인간이 되고 마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직업이 점차 전문화되는 쪽으로 기울어짐과 동시에 생존경쟁을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곱절의 일을 하던 것이 3배 내지는 4배로 점점 속도를 빨리 해서 쫓아가지 않으면 안되게 됩니다. 그 결과 그 쪽으로만 시간과 끈기를 모두 소모하게 되고 우리 이웃의 존재와는 격리되어 외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의 일은 관심권에서 멀어져버립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직업전선에서 단지 한 가지만 선택하여 그 안에 갇히게 되고, 다른 방면으로 옮겨갈 여유가 전혀 없게 된 것은 요컨대 우리들의 사회적 지식이 협소하고 세심하게 한정된 결과로서, 이는 마치 스스로 좋아서 불구가 되는 것과 동일한 결과입니다.( 나쓰메 소세키, '도락과 직업' 중에서)


 즉 여기서 불구란 영혼의 시야가 지극히 협소해지는 것을 뜻한다. 눈을 가지고 있어도 이웃을, 내 울타리 바깥의 세상을 못 보는 상태. 경마장의 말처럼 오로지 자기 밖에 못 보는 상태가 나쓰메 소세키에겐 불구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될수록 그는 끊임없이 세파에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술자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모든 과정을 다 알고 있는 기술자와 딱 자기 과정만 알 수 있는 기술자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잘 흔들리지 않고 보다 잘 대처할 수 있는 자는 어디까지나 모든 과정을 숙지하고 있는 기술자일 것이다. 자기 것만 알고 있는 기술자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어떠한 정보도 없기 때문에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 수가 없어 우왕좌왕하게 될 것이다. 즉 후자의 기술자는 전혀 독립적이지 못하다. 전자의 기술자는 얼마든지 홀로 독립된 인간으로 서 있을 수 있지만 후자의 기술자는 자신의 다리로 설 수 없다. 누군가 부축해줘야만 한다. 그러므로 불구인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말 그대로다.

 '스스로 독립된 인간으로 홀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그러한 인간으로 변해 전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 이러한 나쓰메 소세키의 말이 얼마나 혜안인지 대번에 느낄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 초기에 이만큼 멀리 볼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도락' 덕분이었다. 앞서 말한 직업의 모습을 반대로 생각하면 도락이 된다. 그것은 인위적인 분화를 거부하며 하나 밖에 모르는 전문성 보다 다양한 정보에 익숙해 지기를 꿈꾼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통섭의 태도라고 할 수도 있다.직업과 달리 도락은 실생활과 관련이 없고 그 때문에 물질적 보상에 구애되지 않으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책략을 부리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직업인은 후지오의 눈에 들려고 애썼던 오노처럼 세속적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스지만 '도락인'은 그런 것에 초연하다.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아중심적이 된다. 즉 사회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을 행한다. 소크라테스가 경청하고 있다고 고백했던 자기 내면의 소리인 다이모니온에게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미인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자연의 제일의'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고노와 무네치카가 교토에서 사공이 젓는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갈 때 처음 나온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굽이쳐 흐르는 강을 두고  '자연의 제일의'라고 말한다. 강에게 무슨 사회 규범 같은 것이 있겠는가? 강은 그저 자기가 내키는 대로 흐를 뿐이다. 품은 마음 그대로를 지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일의'다. 나쓰메 소세키는 바로 이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어쩌면 순리라고 부를 수도 있다. 즉 실리를 추구하는 속세의 계산을 넘어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끝까지 고수해 나가는 순리인 것이다. '도락'은 독립된 인간이 되어 이 순리에 따라 살 수 있게 만든다고 소세키는 여긴다. 하여 '우미인초'에는 끊임없이 도락과 직업의 대립이 있으며 그것은 교토와 도쿄, 고노와 오노 그리고 후지오와 이토코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때문에 오노가 최종적으로 제일의에 따라 이토코를 택했을 때, 후지오는 이미죽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연출은 하나의 지향점으로 여성을 설정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전개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아무래도 후지오를 그렇게 본다면 고유한 개인의 복권과 상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론이 있을 것 같다. 여기에 서투르게나마 변호해 본다면 주제와 방법의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즉 고유한 개인의 복권은 방법의 측면이라는 것이다. 한 개인의 내외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가급적 작가가 멋대로 개입하여 재단하는 것을 지양하고 되도록 어떤 상황에서의 외면과 내면을 온전히 드러내도록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개인마다 다 다른 것 같아도 가만히 들어보면 몇 종류의 목소리로 범주화가 가능하듯이 한 개인을 아무리 철저히 고유한 개인으로 묘사하더라도 그가 가진 특성이 어떤 보편성을 뜻할 수 있다. 단순히 말해 혈액형에 대한 보편적 분석이 내 얘기처럼 들리듯이 말이다. 후지오는 바로 그런 접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족처럼 이런 이야기를 하느라 글이 쓸데없이 길어졌는데 '우미인초'는 서양의 근대적 직업관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것도 누구도 그 해악을 몰랐던 근대 초기에 이미 묘파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도 리처드 세넷이나 지그문크 바우어의 책을 읽어보면 나쓰메 소세키가 한 말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소세키가 제대로 짚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미인초'는 그러한 혜안이 한껏 우러나 있는만큼, 거기다 그 때의 상황과 지금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 않는만큼, 아무래도 꼭 좀 읽어보시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도락과 직업'이라는 눈으로 보면 분명 와닿는 것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미인초'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도 어느 정도 상통한 면이 있다. 같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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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0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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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07 0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