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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웨이크 시리즈 - 전3권 - 꿈을 엿보는 소녀 + 끝나지 않는 악몽 + 최후의 선택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맥먼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웨이크' 시리즈는 미국의 여성 작가 리사 맥먼의 데뷔작이다. 첫 작품 'WAKE(꿈을 엿보는 소녀)'가 2008년, 그 다음 작품인 'FADE(끝나지 않는 악몽)이 2009년 그리고 2010년에 마지막 작품인 'GONE(최후의 선택)'이 나옴으로써 시리즈가 완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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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제이니 해너건. 2005년 현재, 17살의 소녀다. 그녀에겐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남의 꿈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것이다. 남의 꿈을 엿보고 싶다는 욕망은 누구나 한 번쯤 가지게 마련인 것으로 그렇다면 제이니는 꽤 운이 좋은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능력엔 두 가지 단점이 있는데 하나는 들어가는 꿈이 대부분 악몽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꿈으로 들어가고 나오고를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길을 걸어가다 행여 근처에 누군가 자고 있기라도 하면 '휙' 그의 꿈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차를 운전하는 도중에도 남의 꿈에 휩쓸리는 바람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맞다. 제이니 해너건은 불우하다. 가진 능력만은 아니다. 사는 처지도 그러하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는 없었고 엄마는 알콜 중독자다. 제이니가 늘상 보는 엄마의 모습이란 취한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런 엄마가 집안일을 제대로 할 리 없다. 제이니는 철이 들기도 전에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 거기다 가난하기까지 하다.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 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해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능력은 오히려 장애가 될 뿐이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 공부하고 일해야 할 판에 느닷없이 남의 꿈으로 끌려들어가 그것도 악몽을 같이 체험하느라 다 까먹고 있다니. 만일 신이 불행을 염두에 두고 한 소녀를 빚는다면 제이니 해너건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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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제이니는 누구보다 '삶'(이라는 세계)을 무겁게 여기는 존재다. 나에게 있어 '삶'이라는 세계는 전적으로 타자라고 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 나는 세계에 압도당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세계를 압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것이 바로 이 소설에서 리사 맥먼이 꿈을 다루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즉 제이니가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휩쓸리는 타인의 꿈이란 어디까지나 제이니가 마주한 세계의 은유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그것이 또한 리사 맥먼의 의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부에서 제이니는 남들의 꿈에 그저 압도당할 뿐인데 그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제이니가 느끼는 세계의 중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이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 삶의 평정을 위해 분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만 자신을 내리누르는 거대한 공룡과도 같은 세계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녀는 삶을 전혀 주도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의 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제이니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데 그만큼 제이니 앞에 놓인 세계도 그녀에겐 정체불명이다. 그러니 제이니는 외로울 수밖에 없고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1권의 후반에서 제이니는 자신이 일하는 양로원 환자인 스투빈 부인을 통해 그런 능력을 '드림캐처'라 부르며 그 능력을 가진 이도 자기 혼자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스투빈 부인은 장님으로 거의 죽은 듯이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제이니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남긴 편지에서 자신도 제이니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것을 시작으로 제이니 앞에 점점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제어할 수 있는지 알게되는 기회가 많아진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친구라고 하기엔 넘치는 남자 친구 케이벨과 경찰 서장을 통해서다. 알고보니 스투빈 부인은 그 경찰 서장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로 자신의 능력을 경찰 수사를 위해 사용해왔던 것이다. 그 사실로 인해 제이니는 자신의 능력이 다만 저주는 아님을 알게되고 케이벨, 서장과 함께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간다. 동시에 서장에게서 건네받은 스투빈 부인의 노트를 통해 점차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제어하는 지도 배우게 된다.
여기서 리사 맥먼이 꿈을 세계의 은유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제이니가 꿈에 대한 이해와 통제를 넓혀가자 거기에 발맞춰 현실 세계도 점점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2권은 바로 그런 제이니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여기서 제이니는 진정한 'WAKE', 즉 각성을 하게 된다. 세계에 대해 자신이 주체라는 것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 삶을 주도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불안과 의심은 여전히 남게 마련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만 바뀌었을 뿐, 세계의 본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달리 본다고 해서 세계가 가진 어둠은 변하지 않는다. 2권에서 제이니가 마주하는 사건이 바로 그것을 상징한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나이를 먹어 세계의 페이지를 뒤로 넘길수록 더욱 검다는 것을!
과연 제이니도 스투니 부인의 노트를 통해서 자신의 능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다. 이 불길한 예언은 그동안 꿈을 세계에 대한 은유로 써온 리사 맥먼에게 나 하나의 힘으로 결코 어쩌지 못하는 세계 앞에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바로 그것이 3권, '최후의 선택'이 가진 이야기다.
그녀는 거기서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아버지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비록 의식불명으로 목숨도 오늘내일하는 상태였지만. 아무튼 놀랍게도 아버지도 '드림캐처'였다. 그리하여 결국 제이니 앞엔 선택가능한 두 개의 길이 놓이게 되는데 하나는 스투빈 부인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아버지, 헨리의 길이다. 설령 비극적 운명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스투니 부인처럼 적극적으로 세계의 어둠을 없애려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 헨리가 제이니와 엄마를 버렸던 것처럼 내 삶의 평안만을 위하여 철저한 격리를 택할 것인가? 이 고민을 풀어가는 것이 바로 3권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비단 제이니만의 고민은 아니다. 얼마든지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오늘 우리의 고민도 될 수 있다. 불법과 부조리가 흑사병처럼 창궐하는 세상에선 누구나 도대체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게 마련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3권을 읽는다면 제이니의 고민이 좀 더 가깝게 피부로 와닿지 않을까 싶다.
'웨이크' 3부작은 블랙 로맨스 시리즈 중 하나로 나왔고 그러니 물론 로맨스의 비중이 높다. 하지만 내겐 사랑 보다 내 앞에 놓인 불행한 현실, 세계의 어둠에 어떤 태도로 맞서야 하는가로 읽혔다. 제이니가 주로 보게 되는 꿈이 악몽이라는 사실이 주효했다. 그 악몽이란 게 대부분 타인의 무의식 저 깊이 숨겨 있는 트라우마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원적 상처를 마주한 그녀이기에 제이니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게 들려왔다. 어차피 사랑도 타인과의 관계이니까 로맨스라고 해서 그런 주제가 엷어지는 것도 아니긴 하다.
아무래도 문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이야기보다 문장이 내겐 더 많이 눈에 들어왔는데 오로지 '~한다' 식의 현재형으로만 채워져 있다. 이런 문장만 있는 것은 처음인지라 참 특이했다. 미국의 범죄 수사 드라마처럼 '2006년 8월 10일 화요일 7:45 AM' 하는 식으로 단락을 구분한 것도 새로웠다. 묘사도 많이 절제하고 한 문장에 최소한의 정보만 담는 것으로 그쳤는데 그래서일까 소설 보다는 어떤 동향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보고서가 소설 보다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아마도 리사 맥먼은 그렇게 해서 독자들에게 더욱 강한 현실감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쉽고 빠르게 읽힌다.
결론적으로 뭔가 새로운 이야기,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나고 싶었다면 괜찮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