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옷!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이 새로 모습을 바꾸어 나오는 군요. 

번역까지 새로이 해서 말이죠.


당연하겠죠. 무려 40주년 기념판이니까요!

벌써 책이 나온지 40년이 지났군요. 번역만이 아니라 이 40주년을 위해 르 귄이 새로운 서문과 작가 노트까지 썼다고 합니다. '어둠의 왼손'에 실린 머리말이 정말 좋았기에 이번 40주년 기념판의 서문도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더구나 작가 노트까지 있다니!


참고로, 69년 하드커버 초판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일명 겨울이라 불리는 얼음 행성인 '게센'이 무대인데 표지는 그것을 표현한 것 같군요.

저 위에 성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아리코스토르 성' 같습니다.

이런 모습의 성이죠.(참고로 이 그림도 '어둠의 왼손' 커버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두 눈에 하트 뿅뿅 그리는 것은 이만하고...


1976년 미국의 SF 전문잡지 'LOCUS'가 독자들(주로 SF분야 종사자나 골수 SF팬들)을 대상으로 'SF 문학사상 최고의 작가'를 설문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어슐러 르 귄은 로버트 하인라인,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에 이어 4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또 1975년엔 '최고의 SF 장편'을 설문조사했는데 그 때에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과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 이어 이 작품 '어둠의 왼손'이 3위에 올랐습니다.


물론 좀 오래된 순위이긴 합니다만 어슐러 르 귄이나 '어둠의 왼손'이나 그만큼 대단했다는 것이죠. 물론 그 가치는 지금도 전혀 바래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명한 영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1994년에 나온 자신의 책에서 '어둠의 왼손'을 서양 문학의 정전 중 하나로 꼽았고 르 귄은 톨킨보다 더 판타지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켰다고 평했었죠. 그러니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모습으로 자주 우리 곁으로 오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잦은 귀환 자체가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죠.


아무튼 새로운 판본이 나온다고 하니, 제가 '어둠의 왼손'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어슐러 르 귄을 알게 된 것은 박상준의 '멋진 신세계' 덕분이었습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이 아니고 박상준 작가가 SF의 역사나 작품들에 관한 글들을 모아 엮은 것이었는데 덕분에 SF의 좋은 소설과 작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거기서 이 어슐러 르 귄과 '어둠의 왼손'도 만나게 되었죠.


정말 어떤 작품인지 보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나와 주더군요.

그리폰 북스 시리즈 중 하나로.



이것이 바로 그 때 나온 '어둠의 왼손' 모습입니다.

SF 소설 하면 역시 커버 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어둠의 왼손' 커버는 정말 멋졌습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이 커버 때문에라도 구입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


보시는 바와 같이 1995년 5월에 나왔습니다. 가격은 지금이라면 '겨우'가 붙을 6천원^ ^

나온 시기가 영화 잡지 'KINO'가 나왔을 때랑 비슷하네요.

'그리폰 북스'랑 '키노' 둘 다 열심히 모았던 것 같습니다^ ^


그리폰 북스의 시작을 연 '내 이름은 콘라드'와 나란히 찍어 보았습니다.

앞에 있는 엽서들은 당시 출간된 그리폰 북스 책에 들어있던 우편 엽서입니다.

그 때는 독자로부터의 피드백을 대부분 이런 엽서로 받았었죠.

이 카드를 작성해 보내면 자동적으로 그리폰 북스 회원이 되고 안내책자와 팜플렛 그리고 신간 정보를 받을 수 있다고 엽서에 나와 있네요.

한 번 보내볼 걸 그랬어요^ ^ 
 


뒷 날개에 적혀 있는 앞으로 출간될 책의 리스트들.

'어둠의 왼손'이 첫 출간 작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실린 리스트들을 보고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이 '멋진 신세계'에서 좋은 작품으로 언급된 것들이라 더욱 그랬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있고 아직 나오지 않은 것도 있네요.
아무튼 이 리스트 하나만큼은 SF의 필독서로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뒷 모습

 

어슐러 르 귄의 모습과 작가 설명 그리고 간략한 책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어둠의 왼손' 1969년에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SF 상의 양대 산맥인 네뷸러와 휴고상을 동시에 석권했죠.

하나 타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1974년에 어슐러 르 귄은 '빼앗긴 사람들'로 다시 한 번 네뷸러와 휴고상을 동시에 수상하게 됩니다.

괴물 같은 작가죠, 한 마디로...

 

 개인적으로 소설도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머리말을 꼭 읽어보시라 강력하게 추천드리고 싶어요.

 

 어슐러 르 귄이 SF 소설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썼는데

 정말 잘 썼습니다. 우리가 왜 SF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아주 잘 알 수 있게 해 주는 글입니다.

 

 도대체 무슨 글인데? 하실 분들을 위하여 살짝 인용해 볼까요?

 

모든 허구는 은유이다. 과학소설은 은유이다. 이 과학소설을 고전적인 허구 형태와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현대생활의 골격을 이루는 어떤 거대한 지배체제 - 그 가운데는 과학, 즉 각 분야의 학문과 기술, 그리고 상대주의적이고 역사주의적인 관점 등이 있다 -로부터 도출된 새로운 은유들을 사용하는 것과 관계있지 않나 생각한다. 우주여행은 이 은유들 중의 하나이다. 대체역사도 그렇고, 대체 생물학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 역시 또 다른 의미에서 그런 것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허구화된 미래란 그 자체가 곧 하나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은유한 것인가?

만일 내가 은유적으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도 물론이다. 그리고 조금은 장엄한 투로, 이 소설의 주인공 겐리 아이가 나와 당신에게 진리란 상상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내 책상에 앉아 잉크와 타자기의 리본을 소모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P. 11) 

 

 이런 글입니다. '이 정도로 뭘~?' 하신다면 분명 전체를 읽어보면 다를 것이다라는 말을 꼭 드리고 싶네요. 인용한 글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진리란 상상의 문제에 불과하다.' 르 귄의 SF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죠. '어둠의 왼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저 말처럼 뒤흔들고 있지요. 결국 르 귄의 SF도 독자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고자 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리란 이름으로 우리의 머리와 몸을 가두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서 해방시키고자 한다구요.

우리에게 얽혀 있는 모든 관습적인 사고와 편견의 사슬을 은밀하게 푸는 '어둠의 왼손', 그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파세의 이 말 그대로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 그리고 예견되지 않은 것, 증거되지 않은 것.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무지는 사고의 기반입니다. 아직 입증되지 않은 것이 행동의 근거입니다. 만일 그 모든 것이 증명되면, 신도 없고 종교도 없게 됩니다. (...) 내게 말해 주시오, 겐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 확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또 무엇을 알 수 있고, 또 무엇을 피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로 죽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답될 수 있는 질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겐리.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 인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는 '불확실성'입니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 바로 그 한 가지 인 것입니다.(p. 93 ~ 94)



 


 '어둠의 왼손'은 르 귄의 대표 시리즈인 헤인 시리즈의 대표작입니다. '용서로 가는 네 가지 길'도 그 헤인 시리즈에 속하는 단편집이죠. 처음으로 소개되는 헤인 시리즈 작품이라 역시 많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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