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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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은 헤세의 약점이었다. 여성에게 헤세는 눈물의 씨앗이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무리 대문호라도 순간마다 일어나는 욕정은 어찌할 수 없었나 보다. 여성들은 헤세에게 그물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바람처럼 빠져나가고마는 헤세의 뒷 모습을 보며 좌절하고 괴로워하며 비통 속에서 결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베르벨 레츠의 '헤르만 헤세의 사랑'에는 그의 작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작가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헤세의 모습이 있다.


 현실의 인간으로서 헤세는 연약한 남자였다. 자주 불안을 느끼는 신경증 환자였고 상처를 많이 받는 영혼이었다. 그 불안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일까? 헤세는 아랫도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함부로 굴리지는 않았지만 혼인의 책임은 쉽게 저버릴 수는 있었다. 이 책의 첫 머리에는 다음과 같은 헤세의 고백이 나온다.

 나의 사상이나 예술관 때문에
내 인생에서, 혹은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에 봉착한다.
나는 사랑을 부여잡을 수도, 인간을 사랑할 수도,
삶 자체를 사랑할 수도 없다.

- 헤르만 헤세 -

 이 고백 그대로였다. 헤세는 누구보다 사랑에 굶주렸던 사람이었으나 사랑받는 것만 알았지 사랑할 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있어서 헤세는 늘 젖을 달라 칭얼거리기만 하는 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끊임없이 자기를 보아달라,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 내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달라 조르기만 할 뿐, 그 사랑을 주는 데 있어서는 인색한 남자였다. 그는 모든 것에 초연한 '데미안'과 같은 남자이고 싶었으나 그건 꿈일뿐, 결코 되지 못했다. 그는 크눌프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얻는 자유를 바랐으나 머릿 속에서만 일어나는 몽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결코 껍질을 깨지 못한 아브락사스였으며 안락한 정원에서 잠깐의 백일몽으로 자유를 공상하는 존재였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기만이며 허위이고 위선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의 영혼은 분명 그렇게 되고 싶어했다. 그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썼다. 하지만 그는 약했다. 인간으로서 그는 너무 약했다. 그 약함에 발이 걸려 그는 자주 넘어졌던 것이다. 특히 여성이 그에게 많이 돌부리가 되었다.

그렇다고 그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베르벨 레츠의 책은 사랑과 욕망에 있어서는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헤세의 모습을 충실하게 그려낸다. 그의 시가 아무리 청춘의 도망을 이야기하고 버리고 떠날 것을 찬미하더라도 그는 용기가 없었고 어쩌다 생겨도 그것은 오직 스스로 무책임하게 될 때만 생겨나는 것임을 말이다. 평생 결혼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헤세는 자신의 신념과 다르게 무려 세 번이나 결혼했다.

 하지만 그 어느 결혼도 행복한 결말은 없었다. 열 살이나 많았던 마리아와의 첫 결혼은 두 아들까지 낳았지만 이혼으로 끝이 났다. 마리아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헤세가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끝까지 이혼하지 않으려 했지만 헤세는 그녀를 의사와 짜고 정신병원에까지 가둬 결국 이혼 승낙을 받아냈다. 그 이혼으로 그는 두 아들까지 버렸다. 그 때 헤세는 이미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진 후였다. '사랑과 전쟁'에 흔히 나오는 막장 스토리를 그 누구도 아닌 헤르만 헤세가 연출했던 것이다. 당시 사랑에 빠졌던 여성의 이름은 '루트'였다. 그녀는 헤세보다 열 살이나 어렸고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였는데 결국 헤세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모두들 영혼의 싱싱한 생명력이 가득한 여성이라고 보았던 루트였다. 헤세도 그 생기에 이끌렸다. 하지만 헤세와의 결혼은 흡혈귀 같았다. 루트는 결혼으로 인해 자신에게 있던 모든 생기를 빨리고 말았다. 루트의 결말은 마리아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여성이 있었다. 이름은 니논. 그녀는 결코 한 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아니었다. 니논은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가 처음 나왔을 때 읽고 단번에 헤르만 헤세에게 매료되어 버렸다. 그 때, 그녀는 소녀였다. 엄마를 처음 본 아기새처럼 헤세와의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하지만 헤세는 다가가기에 아주 먼 남자였다. 그렇지만 니논은 헤세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고 헤세의 새 책이 나올 때마다 감상을 편지로 써 보냈다. 니논의 사랑은 아주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도중에 결혼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 헤세를 향한 니논의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결국 그 사랑은 결실을 맺어 헤세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헤세의 결혼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니논은 헤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아내로 남아있었다. 니논은 행복했을 지 몰라도 제3자의 눈에 그 둘의 결혼 생활은 그리 아름답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니논은 헤세에게 아낌없이 헌신했지만 헤세는 그만큼 니논을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결코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 한 쪽으로 너무 기운 사랑이었다. 니논은 희생하고 헤세는 그 혜택을 누렸다.

 그게 헤세였다.
 읽다보면 어쩔 수없이 서서히 그려지는 초상은 허세의 헤세다.
 '도대체 그가 시와 소설로 쓴 모든 말들은 다 무엇이었던가, 그냥 다 말장난에 불과했던 것인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해 보자. 헤세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청춘의 헤세는 연상을 좋아했다. 그의 첫 사랑이었던 유제니 콜프는 그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많았다. 헤세는 그녀를 열렬히 숭배했으나 유제니 콜프는 겨우 열 다섯 살에 불과한 헤세를 어린애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구애를 거절하자 헤세는 권총을 가지고 와서 괴테의 '베르테르'처럼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살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유제니 콜프는 '첫 사랑은 결코 이뤄지는 법이 없어요'하며 거절했다. 자살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헤세는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헤세는 첫 사랑부터 그랬다.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사랑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영혼이었다. 그저 자신의 사랑이 받아지나 안 받아지나만 중요했다.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만 소중했던 사람, 그것이 바로 헤세였다. 

 베르벨 레츠의 '헤르만 헤세의 사랑'은 그런 헤세의 모습을 가득 보여준다. 이 책의 원제는 '헤세의 여자들'이다. 제목 그대로 헤세를 중심에 두지 않고 헤세의 여인들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이 사이에 헤세와 그 여인들이 진실로 주고받은 서신들을 통해 책의 이야기가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님을 밝혀두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하나의 특색이다. 포르투칼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는 '글을 타인의 손을 통해 꾸는 꿈'이라고 말했다. 베르벨 레츠의 책을 읽다보니 정말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헤세의 작품을 통해 감명받고 깨달았던 것은 헤세의 진실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말하는 것과 행위하는 것만이 일치했을 때만 진실하다고 할 수 있으면 말이다. 그건 헤세의 꿈에 불과했다. 아니,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의 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녕 바라던 것을 우리는 헤세의 손을 통해 꿈 꾼 것이다. 그 꿈결에 우리를 젖게 했기에 우리는 헤세의 소설들을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문학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은 도대체 뭘까? 베르벨 레츠의 이 책은 결국 우리가 읽고 쓴다는 게 지극히 나르시시즘적인 행위가 아닐까 내비친다. 정말로 어쩌면 우리 모두는 타인의 글이 아니라 그 글이라는 수면 위에 비친 내 그림자만 보고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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