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 돼지가면 놀이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6
장은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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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이 출간되었다. 5집 이후 4년만의 출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더 오래 묵힌 세월 탓인지 더 몰입하게 만들었고 더 재밌어졌다. 모두 1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의 표지는 가장 처음 나오는 단편인 '돼지가면 놀이'를 테마로 만들어졌는데 돼지의 모습이 얼른 감독 장 피에르 주네의 데뷔작인 영화 '델리카트슨'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한 때, 대표적인 컬트 영화로 여기저기에서 추천되던, 영화광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영화였는데 아무리 유명했어도 세월의 무게는 이길 수 없었는지 어느새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감독 장 피에르 주네의 이름조차 '델리카트슨'이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 보다는 '아멜리에'로 더 기억되고 있는 형편이니. 아무리 그래도 '델리카트슨'이 보여주었던 영화적인 새로움의 충격엔 '아멜리에'는 발 끝도 못 미친다. 진정한 주네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은 바로 이 '델리카트슨'이 아닐까 한다라고 쓰고 있지만 지금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글은 '델리카트슨'이 아니라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6'에 대한 것인데 말이다. 얼른 손가락으로 머리에 경고의 충격을 주고 항로를 수정한다.

 유재중의 '돼지가면 놀이'는 한국전쟁 직후, 강원도 해안면의 '펀치볼'이란 마을에서 괴기 사건을 경험한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싫어하는 손자에게 들려주는 독백으로 되어 있다. 사이 사이 손자가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인지 흥신소에 의뢰해 보고 받은 글이 나와 있지만 '돼지가면 놀이'는 전형적인 괴담 형식으로 되어 있다. 나중에 가면 소설이 주고자 하는 공포 자체가 바로 이 '괴담'이 전해지는 형식 자체에 있었음이 밝혀진다. 읽을 분들을 위하여 그 공포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으련다. 다만 스즈키 고지의 '링'과 비슷하다고만 말하고 싶다. 이렇게 '돼지 가면 놀이'는 형식과 주제가 일치하고 있으며 진짜 공포는 돼지 가면을 쓴 자들의 살육이 아니라 훗날 어떤 여름이나 겨울 밤, 친구들과 괴담을 주고 받을 때 홀연히 상기될 지도 모른다. 그걸 마지막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돼지 가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돼지 가면은 닐 조던의 영화 '푸줏간 소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육한다. 패트릭 매케이브의 소설(제발 우리나라에 출간 좀 해 주길!)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미쳐버린 세상에서 진실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소년이 나름 세상을 바로잡고자 벌이는 살인을 그리고 있는데 누구나 한번쯤 겪는 시대에 대한 절망을 참 잘 그려낸 작품이다. 요즘 보면 더욱 소년의 절망에 공감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라고 또 쓸데없이 영화 이야기를 해버렸군 ㅠ ㅠ).

 김재은의 '숫자꿈'은 환상을 혐오해 마지 않는 지극히 현실 중심적인 주인공이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홀연히 떠오르는 숫자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숫자란 다름아닌 숫자의 주인공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려주는 기호였다. 현실주의자에게 느닷없이 환상의 세계가 도래해 버린 것이다. 죽음의 방식을 말하는 숫자라는 아이디어가 좋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인사 담당으로 타인을 만나는 주된 매개체가 입사지원서의 증명 사진이라는 점을 얼굴 위로 떠오르는 숫자로 연결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에는 표현되지 않은 내용인데, 사실 숫자의 환상이 갑자기 그에게 도래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입사 지원서의 증명 사진 얼굴들을 보면서 내내 자신이 채점한 점수를 떠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 점수는 그대로 탈락으로 이어졌을테니 환상 세계에서 그가 보게 된 죽음 숫자와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자신의 주된 일상 행위가 그대로 공포의 매개체가 되어버렸다는 점이 이 소설의 탁월한 매력인데 멋진 설정만큼 그 연결을 잘 살리지는 못한 것 같고 전개가 이런 소재물에서 흔히 흐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좀 실망스러웠다.

 박해로의 '무당 아들'은 독자를 가지고 노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공포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공포로 능수능란하게 변한다. 하지만 역시 매끄럽지 못한 결말이 텁텁한 뒷맛을 남긴다.

 김희선의 '여관바리'는 일상과 공포를 잘 조합했는데 나도 그런 곳에 자야 했을 때는 혹시 여기가 누군가 자살한 곳은 아닐까 생각하곤 했었기 때문에 더욱 실감나게 느꼈다.

 정세호의 '낚시터'는 영화 '캐빈 인더 우즈'와 비슷한 설정으로 환상과 공포를 잘 조합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보고 함부로 연락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적도 없지만.


 장은호의 '며느리의 관문'은 지금처럼 조건이 결혼의 결정적인 동인이 된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인데 전개가 다소 식상한 편이다.

 우영희의 '헤븐'은 강렬한 도입부로 시선을 확 사로 잡는다. 잘 달리다가 후반에서 좀 휘청거린다. 마지막을 왜 굳이 그렇게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너무 반전에 구애받지 않았나 싶다.

 황태환의 '고양이를 찾습니다'는 처음 읽을 땐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소재와 전개인지라 왜 여기에 실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무리없이 공포의 세계로 데려간다. 분위기를 돌변시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끌어간다는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하지만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에서 썼던 방법을 여기서 쓰고 있다는 점이 좀 걸린다. 나만 괜히 그러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김유라의 '구토'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과음으로 도로에 구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환경 정화를 위해 권장 소설로 삼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후반에 짧게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있다. 짧지만 꽤나 강렬하다.

 엄길윤의 '파리지옥'은 지극히 일상 공간인 '편의점'을 공포의 무대로 삼았다. 편의점 알바로 일하고 있거나 일한 경험이 있다면 환영할만한 대목이 있다. 강자 앞에선 약하고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한 보편적 한국인의 비굴한 초상을 조롱하는 게 마음에 든다. 재밌게 읽었는데 마지막 장면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내 이해가 짧은 탓으로 설마 마감 시간에 쫓겨 서둘러 결말을 내린 것은 아니니라 믿는다.

 이렇게 10편의 이야기를 읽은 소감을 말해본다. 일장일단은 있었지만 모두 가득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들이었다. 확실히 한국 공포 문학이 발전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다. 다음 작품집은 또 얼마만한 세월을 기다려야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얼른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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