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존재 1 - 담박한 그림맛, 찰진 글맛 / 삶과 욕망이 어우러진 매콤한 이야기 한 사발
들개이빨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큐 딸리는 머리로 생각해봤다.

삶의 비참함에 대해...

아마도 그건 살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허기를 채운다는 게 충분조건이 아니라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필수조건이 되어버렸기에...


이 빌어먹을 허기!

그건 나의 삶을 대한민국에 허다한 그렇고 그런 삶들 중의 하나로 얽매었고

끝도 없는 타협과 불합리한 권위와 어리석은 맹목 앞에서의 굴종을 낳았으며

결국 내 두 날개를 모두 잘라 작고 소심한 키위로 만들어 버렸다.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목이라도 조르고 싶은 심정이다.


나도 예전에 생각했다.

육두 문자를 오프닝으로 가볍게 읊조린 다음 왜 우리는 식물처럼 광합성을 못할까 하고.

설마 바로 그 말을 이 만화에서 보게 될 줄이야!



 사회 생활에 연륜이 쌓이고 인간 경험이 깊어지면 어느 순간 득도하게 될 때가 있다.

한 눈에 보기만 해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감히 잡히는 때가 말이다.

물론 그 감이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도 웬만큼은 들어 맞는다.

때로 그 혜안은 작품에도 적용되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이 장면으로 이 만화는 지극히 내 취향의 만화일 것임을 직감했고

결국 더없이 정확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바로 이 장면으로!



나도 고수를 생으로 씹는다.

왜 고수를 꼭 빼달라고 하는지 이해 안되는 사람이 나다.


그러니 안면몰수하고 누군가는 '주접 떨고 있네'할만큼 이 작품에 찬사를 늘어놓아 보자.

이제와 경고하자면,

그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똘끼 충만한 편견 가득한 리뷰다.

메롱, 속았지?

하지만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게 뭐가 나빠? 



 '먹는 존재'는 올해 읽은 그 어떤 작품보다 내가 가장 많이 공감한 작품이다.

 솔직히 나는 반했다.



거침없이 작렬하는 육두문자를 BGM으로 흘러나오는 그녀의 직설에 마조히즘을 느끼면서 반했고


상사에 대한 쉬발리얼리스틱한 저항에는 설레었으며


기존 만화의 음식 맛에 대한 표현을 모조리 작파하고 19금 애로의 경지로 승화시킨 것에는 경탄하였다.


 그럼에도 가볍지 않았고 직설로 무장한 분명 사회 밑바닥 삶에 대한 관심과 이해에서 길어진 그녀의 통찰은 열 권의 인문서보다 더 뇌리에 둔중한 충격을 주었으며 아픔과 분노에는 나도 모르게 덮고 있는 요를 꽉 쥘만큼 공감하게 만들었다. 하여 생각했다. '쉬르발! 이런 게 진짜 만화고 우리 인생사 아냐?'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좋은 작품은 효자손 같은 거라고.

그냥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게 아니다. 알지만 표현의 능력이 모자라 말로 되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우리를 대신해 적당한 표현을 찾아주는 것을 일컫는 것이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 답답할 때가 참 많지 않은가? 누군가 그 말을 딱 찾아 일러준다면 가려운 등을 효자손으로 긁은 것처럼 시원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효자손이다.


 나는 그런 걸 주는 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여긴다. 알맞은 표현은 중요하다. 그건 어떤 구체성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더라도 막연하다면 그건 나의 선택에, 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적합한 표현의 말로 구체화 되어야만 우리는 그것을 정초로 사유와 행위의 누각을 지을 수 있다.


 구약에서 신은 모세가 말을 잘 못해서 걱정이라고 하자 그를 대신해 말을 잘 할 수 있는 아론을 주었다. 나는 좋은 작품은 이런 아론이라 생각한다. 곰곰히 생각하면서도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흐지부지 사라져버렸던 사유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고 잘하면 실천까지도 나아가게 하는 존재.


말이 되는 지, 과연 이해 될런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진심이다.


 다른 거 없다.

 "앗! 이거야!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할만한 것들을 많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작품.

 그것이 내겐 정말 좋은 작품이다.


'먹는 존재'가 그랬다.

나의 '아론'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스토킹을 했다. 

그러다 찾아낸 작가의 블로그.

거기에 이게 있었다. 큭큭큭...


공자가 말하길 인생사 꼭 필요한 건 '음식남녀'라,

즉 '식'과 '성'이라고 했는데

실수겠지만 그걸 절묘하게 표현한 것 같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말할 건가요?


후후...


아론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얼른 나와서 갑갑증을 좀 뚫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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