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13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작 '에코 파크'로 부터 6개월 후. 종말을 뜻하는 자정의 시각. 해리 보슈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깜깜한 거실에 앉아서 색스폰 소리를 듣고 있다.' 프랭크 모건의 'CITY NIGHTS' 앨범을.(소설은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 앨범이 확실할 것이다. 나도 추천하고픈 멋진 음반이다.)



 그런데, 소설의 첫 시작부터 보슈가 프랭크 모건을 듣는 일은 좀처럼 없다. 유별나서 이런 의문이 든다. 왜 마이클 코넬리는 이런 설정을 한 것일까? 프랭크 모건은 마이클 코넬리에게 중요한 재즈 뮤지션이다. 성공한 작가가 되기 전 힘든 시절, 그 불안과 암울의 시기를 그는 프랭크 모건을 들으면서 견뎌왔다. 그는 '타임'지에서 '찰리 파커의 제자로 마약 중독자가 되어 감옥까지 갔던 과거를 극복하고 30년이 지난 후 다시 녹음할 수 있었던'(이상은 라인업, P 69) 프랭크 모건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프랭크 모건이 되고 싶었다. 힘든 과거를 극복한 생존자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 염원으로 그는 프랭크 모건의 음악을 자신이 한창 창조하고 있던 탐정의 사운드 트랙으로 결정한다. 이제 그 탐정은 내내 프랭크 모건과 함께 할 것이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틸 것이다. 동시에 모건과 같이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지 케이블의 '구슬프지만 희망을 주는 발라드인 '자장가'를 탐정의 주제가로 주었다.(같은 책, 같은 페이지) 보슈는 지금 바로 그 프랭크 모건의 앨범을 듣고 있는 것이다. 생존자의 음악이자 무엇보다 보슈의 분신과도 같은 음악을. 현재 트랙은 조지 케이블의 'ALL BLUES'다.


 그 때, 전화가 온다. 그를 사건 현장으로 부르는 전화다. 혹시 눈치챘는지? 해리 보슈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만한 '로스트 라이트' 이후로 소설은 늘 전화가 오는 것에서 시작했다. '클로저'도 '에코파크'도 모두 그랬다. 다시 경찰로 복직한 시점에 소설의 시작이 늘 걸려 온 전화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흥미롭다. 언제나 그는 수동적으로 호출되는 것이다. 그것은 내게 '소환'으로 보인다. 언젠가의 페이퍼에서 해리 보슈는 지금 새로운 시기가 진행 중이며 그것은 속죄의 여정이라고 쓴 바 있다. 전화는 바로 그 속죄를 위한 호출로 보인다. 그가 저지른 실수와 잘못에 대한 참회로써. 그것은 세상이 무시하거나 은폐해 버렸던 '로스트 라이트'를 찾아내는 것으로 완수될 것이다. 같은 전화지만 '혼돈의 도시'에선 받게 되는 분위기가 참 다르다. 자정, 불 꺼진 방, 'ALL BLUES'라는 음악 제목까지 너무도 음울한 상황에서 소환되는 것이다.


 이 변화된 분위기에는 어떤 연유가 있는 것일까? 그 제공은 전작 '에코 파크'에 있었다. 해리 보슈는 다시 한 번 실수와 잘못을 했고 커다란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또 실패했다. 봉쇄된 '에코 파크'는 영원히 지어지지 않을 후회와 죄책감의 성지나 다를 바 없었다. 이제 그는 그 값을 치뤄야 했다. 자정의 전화는 그 소환인 것이다. 6개월 뒤 해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업무가 바뀌었고 파트너도 달라졌다. 해야 하는 일은 특히 어려워서 해결에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살인 사건이었고 파트너는 자신과 무려 20살이나 차이나는데다 다른 문화권 출신이었다. 다시 적응해야 했고 다시 가르쳐야 했다. 그의 삶은 '리셋'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가다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쉰 여섯 살의 그는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로 지금보다 2~3킬로그램 더 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 흙갈색 눈은 맑고 또렷했고 산마루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도전을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보슈는 자기 눈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살인사건 수사의 기본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저 현관문을 나가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무리 먼 길이라도 기꺼이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어떤 총알도 자기를 맞힐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P. 13)


 조금 과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코넬리는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 보슈의 영웅다운 면모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함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해리 보슈에게 있어서만큼은 마이클 코넬리는 새디스트이니까. 맞다. 이건 덫이다. 나중에 뼈 아픈 자각을 안기기 위해 놓아둔 치즈 한 조각.  이 장면은 중요하다. 앞으로 소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시각이다. 소설의 원제는 'THE OVERLOOK'이다.


 OVERLOOK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내려다 보다, 감시하다 그리고 간과하다. 영어 시간이 아닌데도 이 의미를 모두 말하는 것은 이 세 의미 모두가 소설의 중요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차례로 이야기해 보자. 

 

 OVERLOOK : 1) 내려다 보다.


 소환한 사건은 한 남자가 스키마스크를 쓴 이들에게 권총으로 살해당한 사건이다. 장소는 멀홀랜드 댐 위의 산마루. 바로 가까이에 한 때 마돈나가 소유했다는 저택이 있는 그 곳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바라는 성공한 삶의 성소와도 같다.


 저택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서 집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에게는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이로운 장관을 선사할 것이 분명했다. 보슈는 그 인기 여가수가 탑에 올라가 서서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은 도시를 내려다보는 모습을 상상했다.(P. 17)


 여기, '내려다보다'가 직접 언급된다. 마돈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대표적인 여가수다. '아메리칸 드림'은 많은 미국인들의 욕망이다. 그걸 나타내려는것일까?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하루에만 족히 200명이 올라와 어슬렁거리는 곳이다. 여기서 마이클 코넬리는 미국인들이 꿈꾸는 욕망의 진짜 모습을 밝힌다. 그건 내려다보기 위해서라는 걸. 모든 것을 자신의 발 아래 두고 싶다는 군림의 욕망. 그것이 미국을 지배한다. 마돈나가 그것을 대변한다. 미국은 타인을 이 야경과도 같이 발 아래에 꿇리려는 욕망의 집합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 마돈나는 매일 밤 이것을 보았던 것인가?


 거기서 OVERLOOK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가 발아한다. 바로 '감시하다'의 OVERLOOK이다.

   

  OVERLOOK : 2) 감시하다


 그건 먼저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피해자의 신분증을 살펴보고 있는데 뜻밗의 인물이 나타난다. FBI 특수 요원인 레이철 윌링. '에코파크' 이후 6개월만이다. 보슈는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 6개월 동안 단 하루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보슈와 레이철 사이에 로맨스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에코사건'에서 레이철은 보슈에게 단단히 실망했다. 보슈는 그릇된 판단으로 레이철을 영영 잃어버렸다. 그녀는 그의 과오를 반사시키는 거울이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이 피해자는 감시 대상이라고. 그것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놀라는 보슈 앞에 피해자가 끼고 있는 반지를 보여준다. TLD라는 반지를.



실물은 이렇게 생겼다. TLD에서 D는 DIAMETER로 방사능 계측기를 뜻한다.


 아시다시피 암 치료에는 자주 방사능 물질이 이용된다. 때문에 병원은 그런 방사능 물질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것을 주로 다루는 의학자들이 끼는 반지가 바로 TLD 반지인 것이다. 피해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방사능 물질을 마음만 먹으며 쉽게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 있다. 다시 말해 방사능 테러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테러의 위협 때문에 미국은 TLD 반지를 낀 사람들을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정확히는 감시하고 있다. 때문에 사망자로 보고되자마자 바로 FBI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OVERLOOK이 가진 또 하나의 의미는 발현된다.


 미국이 가진 욕망의 진실을 본 보슈는 이제 미국이 온갖 감시로 얼룩진 세상임을 본다. 테러 방지란 명목으로 미국은 천지사방을 불철주야 감시하고 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도 FBI를 감시한다. 그들의 조수 노릇이나 하는 건 사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가 모두를 감시한다. 내부든 외부든 예외는 없다. 보슈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핫바지로 만들지 않을까 싶어 FBI에게 날을 세운다. 레이철 윌링도 그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알고보니 피해자는 범인의 협박 때문에 방사능 물질을 밖으로 빼돌려 가지고 온 것이었다. 범인들은 총으로 그를 죽이고 방사능 물질을 가지고 달아났다. 이제 언제 어디서 방사능 테러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토록 긴박하지만 미국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들은 혹시 다른 조직이 자기들 몰래 정보를 빼돌리지 않을까만 노심초사한다. 공조는 없다. 다른 조직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일 뿐이다. 이렇게 감시는 타인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된다. 결국 여기서 OVERLOOK이 가진 첫째 의미와 둘째 의미는 연결된다. 오로지 나만 군림하여 타인을 내려다보려는 욕망이 그대로 타인에 대한 감시를 초래한 것이다.


 군림만 하려는 욕망이 거대한 뿌리를 내린 미국에서 타인은 더이상 대화와 협조의 대상이 아니다. 보슈와 FBI 사이에 존재한느 것은 속고 속이는 협잡과 폭력 뿐이다. 둘 다 상대방은 오로지 이겨야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결국 OVERLOOK이 가진 마지막 의미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군림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만 자신들이 정말 돌아보아야 할 자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간과다. 뼈아픈 후회를 동반하고야 말 해서는 안되는 잘못.  




 OVERLOOK : 3) 간과하다.


 그들은 놓쳐버린다. 그건 그들이 정말 보아야 할 것이었다. 간과는 보슈가 신참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말해줄 때 나타났다.


 30년 전쯤 월셔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어. 여자와 그가 기르던 개가 익사체에서 발견됐지. (P. 119)


 30년 뒤에 어떻게 단서를 찾아 그 사건을 해결했는지를 통해 선배의 지혜를 들려줄 작정이었으나 애송이라 깔보았던 파트너는 보슈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을 한다. 개는 왜 죽였냐고. 보슈는 당황한다. 거기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 당시에는 개를 왜 죽였는가 하는 의문은 제기되지 않았다.(P. 120)


 그는 간과했던 것이다. 개의 죽음이라고 그 이유 같은 건 무시해버렸다. 보슈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인지 깨닫는다. 그는 사회가 간과해버린 '로스트 라이트'를 되찾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다. 그것이 그의 속죄였다. 하지만 어느새 그 역시 사회가 범했던 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속죄는 사회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것이었으나 소설에서 그가 보여주는 경로는 사회와 정확히 똑같았다. 그는 어리석었고 그 때문에 간과했다. 보슈만이라도 보아야 했었는데 남들과 똑같이 무심히 지나쳐버렸다. 이로써 마이클 코넬리는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명확히 드러낸다. 우리는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은 눈 뜬 장님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걸 보슈에게 느닷없이 닥쳐온 깨달음처럼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왜 우리는 그렇게 되는가? 애초에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정확히 'THE OVERLOOK'일 뿐이었다. 타인을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눈이 아니라 내가 군림하기 위해 내려다보고 혹시 내게 피해가 오지는 않을까 감시만 하는 눈이었다. 눈은 원래 바깥을 보라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눈이 보는 건 자기 자신 밖에 없었다. 그러니 장님과 마찬가지였다. 간과는 당연한 결과였다. FBI가 그랬고 보슈도 그랬다. 성과에 목마른 국토안보부를 이끄는 하들리도 마찬가지였다. 간과했기에 진실을 보지 못했고 어리석게도 계략에 휘둘렸다. 바보들의 우왕좌왕. 자신을 높이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간과는 결국 자기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마이클 코넬리는 그 간과, 궁극적으로는 자기 본위적 욕망의 함정을 일러준다. 목을 빳빳이 세우고 위만 보고 가다가는 발 아래 놓인 진창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걸. 'THE OVERLOOK'은 부머랭이다. 남을 해치우려 날리겠지만 그건 결국 당신의 뒤통수를 노릴 것이다.


 파트너의 질문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느끼게 된 보슈는 드디어 이런 말을 내놓는다.


 국민의 안녕과 사회안전은 산마루에 죽어 자빠져 있는 저 남자로부터 시작되는 거야. 우리가 그를 잊으면 다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고.(P. 130)


 이제 그는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줄줄 딸려나오는 기억들. 간과가 얼마나 커다란 비극을 가져오는지 그는 이미 베트남전에서 경험했음을 알게 된다. 한 마을을 접수하기 위해서 그 아래 땅굴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을 토벌할 필요가 있었다. 지휘관인 대위은 날마다 보슈와 같은 병사들을 내려보냈지만 사상자 수만 늘어났다. 하지만 포기하거나 다른 전략을 취하지 않았다. 간과 때문이었다. 그에겐 오로지 상관의 호감만 보였다. 병사들의 목숨은 보이지 않았다.


 대위는 3군단 지휘부로부터 대책을 마련하라고 날마다 독촉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날마다 늘어가는 사상자 때문에 괴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가 가능했지만 3군단 대령의 호감은 대체가 불가능했다.(P. 177)


 그 때, 보슈는 정확히 깨닫는다. '그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적어도 자신은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날, 또 하나를 더 깨닫는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종종 내부의 적과 싸우게 된다는 것을'



보슈가 베트남 전쟁에서 땅굴쥐였을 당시 소속된 부대의 휘장. '열대 번개'라는 번역보다는 '트로픽 라이트닝'으로 번역이 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지명인 '텐 사우전드 팜'은 만 개의 손바닥이라고 하지 않고 그대로 썼기에 더욱 그렇다. 참고로 트로픽 라이트닝은 제25보병 사단의 별명이다. 휘장의 모습 때문에 '일렉트릭 스트로베리'라 부르기도 한다. 벤 스틸러는 이것을 살짝 비틀어 '트로픽 썬더'라는 제목으로 코미디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 내부의 적이 바로 타인에게 군림하려는 욕망이었다. 그렇게 뼈져리게 깨달았으면서도 보슈도 결국 내부의 적에게 패배해버렸던 것이다. '에코 파크'에서 자신의 과오를 낳게 만든 것도 이 것이었다. 바로 이 깨달음을 위하여 그는 소환된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대사 중 하나를 가져온 다음과 같은 보슈의 말에서 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챨리는 파도를 안 타니까.(Charlie don't surf!)"(P. 174)  


 이 대사는 영화에서 서핑광으로 나오는 킬고어 대령이 한 대사다. 그는 서핑을 하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멀쩡하게 잘 있는 베트남인 마을을 헬기 부대로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바그너의 '발퀴레의 비행' 음악을 배경으로 수많은 베트남 민간인들이 헬기의 기관총에 난사당하고 폭발로 죽는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해변을 차지하냐고 묻자, 킬고어는 저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미국은 서핑을 하지만 베트콩은 서핑을 안 한다고. 대사에서 챨리는 베트콩을 부르는 미군의 은어다.(소설의 주에는 빠져있는데 아무래도 은어다 보니 밝혀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킬고어는 자신의 욕망말고는 다른 모든 것을 간과하는 극한의 장님이다. 이 대사를 인용함으로써 마이클 코넬리는 자기 본위의 욕망이 초래한 간과가 얼마나 큰 비극마저 불러올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그래서 마이클 코넬리는 이 소설을 썼던 것이다. 'OVERLOOK'으로 점철된 소설을.


 다시 소환된 해리 보슈가 걸어간 속죄의 여정은 이 'OVERLOOK'을 결연하게 거부하는 것이었다. 더이상 내부의 적에 휘둘리지 않고 타인들을 인정하고 자신과 대등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이번에 보슈가 찾아야 할 '로스트 라이트'였다. 그건 소설 후반부 다음과 같은 보슈의 고백에서 나타난다.


 우리 모두는 배수구를 빠져나가는 물처럼 하루하루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그 검은 수쳇구명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이들도 있고 좀 멀리 있는 이들도 있다. 그 검은 구멍이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빙빙 도는 물이 언제 자기를 움켜쥐고 그 어두운 수쳇구멍 속으로 밀어넣을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건 맞서 싸우는 거야. 보슈는 혼잣말을 했다. 쉼 없이 버둥거려 보는 거라고. 그 물에 휩쓸리지 않도록 계속 버텨 보는 거야. (P. 267)


 그 물이 내부의 적이며, 'THE OVERLOOK'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멋진 소설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아니라면 누가 과연 이 정도로 주제로 인도하기 위해 세밀하게 형상화하고 정교하게 배치할 것인가? 마음으로 읽다가도 어느 순간 머리로는 두번 세번 읽게 되는 소설. 그러기에 마이클 코넬리를 좋아하고 해리 보슈와의 동행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 지금까지 한국판 제목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는데 이번 작품만큼은 원제 그대로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 위에서 언급한 페이퍼는 아래의 먼댓글로 달아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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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이클 코넬리의 두 번째 기회, 그 속죄의 여정...
    from 헤르메스님의 서재 2014-07-30 06:43 
    누구에게나 두번째 기회가 있는 법이다. 물론 운이 따라야 한다. 누구는 잡고 누구는 잡지 못한다. 미키 할러는 운이 좋았다. 그는 보슈가 말했듯이, 자신의 죗값에 대해 '탄환의 심판'을 받았으나 다시 살아났으니. 단순히 살아났다는 것만이 아니다. 삶 자체가 변했다. 진정한 구원이 어디에 있는 지를 깨달았고 그를 위한 속죄의 삶이 시작되었다. 해리 보슈도 운이 좋았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거리가 어두운 것은 밤보다 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