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배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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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면서 한번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경우가 있으실 겁니다. 저는 정말 많이 그랬습니다.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말이있죠. 처음에 맛있는 것만 쏙쏙 골라 먹으면 나중엔 맛 없는 것만 남아있다고. 제 경우엔 그게 좀 빨랐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제 인생의 맛있는 것은 이미 다 먹어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무리 둘러봐도 지금 제게 남아 있는 건 맛없는 것들 뿐. 그렇게 맛없는 것들을 매일 먹어야 한다면 연어처럼 시간을 거슬러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솔직히 김선영 작가의 '특별한 배달'을 읽으면서 놀랐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주인공 슬하가 완전 제 모습의 판박이였기 때문입니다. 슬하는 매일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지내야 하는 현재의 삶이 너무도 고달파서 늘 지금과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에 대한 책들을 정말 닥치는 대로 찾아 읽습니다. 거기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미오 나의 미오'와 같은 판타지도 있고 미치오 가쿠가 쓴 '다차원 우주론인 평행우주'와 같은 책도 있습니다. 슬하는 그런 책들을 통해 늘 기면증을 일으키는 힘겨운 현실을 버텨 나갈 희망을 얻습니다. 하지만 슬하에게 그 희망이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상상이 아니라 꼭 현실로 이루어지길 바랐을만큼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절박함이 슬하로 하여금 그 어려운 물리학 책까지 들여다 보게 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현실이 마치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가 된 마냥 질식할 정도로 갑갑하게 느껴질 때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거로 정말 많이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슬하가 그 구멍에 가고 싶었던 마음 그대로 저 역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책을 저 역시 닥치는대로 찾아 읽었습니다. 슬하가 읽었던 '미오 나의 미오'와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는 저 역시 읽은 책이었습니다. 그렇게 슬하와 저는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슬하가 현실에서 느끼는 아픔 역시도 어떤지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저에게 이 소설 '특별한 배달'은 특별한 책이었습니다.


 

 등장 인물 하나하나가, 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저에겐 그리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떠나간 엄마를 원망하고 서열화된 사회를 원망하며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 부르며 목적도, 소망도 없이 사는 태봉의 모습 또한 언젠가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현실이 주는 결핍이 너무도 크면 차라리 먼저 그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 생존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포도를 아무리해도 따지 못하자 저건 그냥 신포도일 뿐이야 하고 외면해 버리는 여우처럼 말이죠. 더 이상 결핍으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하여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입니다. 태봉이 잉여인간으로 자처했던 것도 그런 것이었겠죠. 사실은 더욱 제대로 살고 싶다는 절박한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태봉은 남편이 투명인간으로 되어가는 것이 안타까워 자신이 먼저 사라져 버리겠다며 떠나간 엄마를 모순일 뿐이라며 이해하려고도 용서하려고도 하지 않지만 사실 삶에는 얼마든지 그런 모순이 있게 마련입니다. 노래 가사에 흔히 나오는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처럼 말이죠. 엄마의 행동이 모순이라면 태봉 자신의 행동 역시도 모순 입니다. 모순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지금 우리가 가진 이해의 범주 바깥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넓어지면 그 모순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태봉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슬하는 이해할 수 있듯이 말이죠. 태봉에게 엄마의 사라짐은 그가 삶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바꾼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태봉은 그 엄마의 사라짐으로 세상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종종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은 우리의 원망을 낳습니다. 여우의 포도에 대한 태도는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상처를 미연에 막기 위해 덮어놓고 부정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슬하도 그랬습니다. 슬하도 태봉과 똑같이 사랑하는 한 존재의 사라짐이 세상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드는 계기를 낳았습니다. 그 존재는 바로 동생 상하였습니다. 상하와 슬하는 입양된 아이였습니다. 슬하는 자신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을 엄마가 미리 알렸기 때문에 원래부터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진 관계인 이상 이대로 내내 지속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런 생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게 바로 상하의 파양이었습니다. 상하가 엄마의 통제를 자꾸만 벗어나자 더 이상 엄마의 자식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슬하는 바로 거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슬하는 엄마가 왜 승하를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 번 자식으로 여기며 키우겠다고 입양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쉽게 내버리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엄마를 원망합니다. 자신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위로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고 힘들게 하니까요. 그리고 자기 역시도 그 상하처럼 엄마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경우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엄마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사회마저 원망하게 됩니다. 엄마로 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고 또 설령 했다고 한들 그걸 내내 지속하기란 정말 어려우니까요. 그렇게 태봉과 슬하는 사실 하나입니다. 태봉의 잉여인간 자처나 슬하의 다른 가능성 꿈꾸기는 그들이 가진 원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슬하와 똑같이 과거로 되돌아가고픈 욕망을 무던히도 가졌던 저 역시 세상을 향한 원망의 굴절된 표현이었던 것이구요. 우리는 그렇게 늘 바깥을 원망합니다.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바뀌어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태봉이 엄마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듯이, 슬하가 엄마와 세상이 바뀌길 바라듯이 원망에 대한 치유 역시 바깥으로 부터 와야 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특별한 배달'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생각이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입니다.

 

 문제는 시야입니다. 생각해보면 원망 역시 모순과 마찬가지로 이해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원망 역시도 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바깥에 머물러 있을 뿐인 것이죠. 태봉이 엄마가 떠난 이유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면 그의 삶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또한 슬하가 자신이 어떻게 엄마에게 입양되었는지 또 상하가 어쩌다 파양되었는지 그 내력을 제대로 알고 이해할 수있었다면 슬하의 삶 역시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그것을 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 나름의 방법으로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의 존재 가치 또한 떨어뜨리고 맙니다. 이것을 통해 소설은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는 바깥에 대한 원망은 바로 그 시야의 좁음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말이죠. 아마도 후반에 태봉 아버지의 일기나 슬하 입양에 대한 엄마의 고백, 그리고 상하 파양에 대한 한 수녀의 증언으로 밝혀지는 모든 진실들은 다름아니라 바로 이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 때 태봉과 슬하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더하여 저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태봉과 슬하만큼이나 저 역시 세상을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과연 제가 아는 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볼 수 있는 것까지만 알 수 있을 뿐인데 말이죠.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루살이 앞에서 메뚜기가 내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야기를 그저 공상이라고만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메뚜기에게 곰은 사계절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지만 여름 한 철 밖에는 살지 못하는 메뚜기는 무려 계절이 네 개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이 볼 수 있는 시야의 한계를 자신이 알 수 있는 절대라고 생각한 탓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하루살이, 메뚜기와 별 반 다를 바 없습니다. 내게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교만합니다. 사실 바로 이게 아닐까요? 우리가 가지는 원망은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만하기에 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래서 이 소설에 슬하가 '웜홀'이라 부르는 구멍과 같이 다소 판타지적 소재가 들어간 것이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웜홀' 같은 것이 얼마든지 가능할 정도로 삶이란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거대하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말이죠. 태봉에게도, 슬하에게도 그랬듯이 삶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더 넓게 볼 수 있게되자 자신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누그러지게 되었습니다. 분명 우리에게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그 '너머'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왜 우리들은 그 '너머'를 그저 없는 것이라고만 생각할까요. 그 '너머'에 지금의 세상마저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는 다양하고도 풍부한 가능성이 존재할지도 모르는데 그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좁은 내 시야를 내 전부로만 생각하고 살아갈까요? 그러므로 태봉과 슬하가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바깥으로 부터 올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좀 무리해서 말하면 그 것들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내내 존재해 왔습니다. 다만 우리의 시야가 닿지않는 그 '너머'에 있었고 보이지 않는다고 그 '너머'를 보려는 노력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바람에 찾지 못한 것이었죠.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지만 정작 자기 집에서 그 새를 찾은 치루치루와 미치루 처럼 말이죠. 무엇보다 태봉 아버지가 태봉에게 선물한 금괴가 이것을 단적으로 나타낸다고 보여집니다. 그 금괴의 의미에 대해 아버지는 쪽지로 이렇게 설명하죠.

 

    아버지는 순도 100퍼센트의 금을 만들고 싶었다.

    100퍼센트는 연금술로도 극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만,

    1퍼센트의 불순물, 그것은 허용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 미니바에는 1퍼센트 이상의 불순물이 있을 수 있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빠는 버려진 것들 속에도 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맞습니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도 얼마든지 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우리들은 쉽게 그 가능성을 버려버리고 난 안된다며 잉여를 자처하거나 과거 회귀만 꿈꾸기에 급급하죠. 그러므로 진정한 길은 이러한 가능성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시야를 더 넓게 만드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물론 바깥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길은 물론 소설에 다 나와 있습니다.먼저 오수의 자작시에 나오는 개망초 꽃처럼 더 이상 타인의 잣대로 자신을 재단하지 않고 스스로를 그대로 긍정하고 그러면서도 또한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보다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기 위해 나와 다른 생각들에게도 얼마든지 귀 기울여 듣는 것이죠. 김선영 작가의 '특별한 배달'은 바로 이러한 변화로 '나 자신'을 퀵으로 배달하는 작품입니다. 정말 제 자신이 태봉의 오토바이에 태워져 문득 전과는 다른 나로 도착한 느낌을 받았기에 얼마든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슬하가 자유로워졌듯이 저도 이제 자꾸만 과거로 달아나고 싶었던 마음으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역시 얼마나 제 주위에 '웜홀'이 나타나길 바랐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깨달았으니 그것을 꿈꾸기 보다 더 많이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소설의 끝은 '방방' 입니다. 높이 뛰어오를수록 더 많이 볼 수 있는 방방은 정말 결말에 어울리는 소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슬하가 그 방방에서 뛰어오를때 어딘가에서 동생 상하의 이런 말이 들려옵니다.

 

 - 누나 떨어져도 무조건 받아주는 쿠션이 있잖아. 그냥 믿고 더 높이 뛰어올라. 겁먹지 말고.

 

 저에게도 이 책이 그럴 것 같네요. 안심하고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더 높이 뛰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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