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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리부트 - 전2권
에이미 틴터러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REBOOT
죽었으나 다시 살아 돌아온 자들을 '리부트(REBOOT)'라 부른다.
때는 근미래의 지구. KDH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많은 인류가 죽는다. 그런데 KDH 바이러스가 가진 힘은 사람을 죽이는 데만 있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바이러스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도 있었다.
리부트로 되살아나는 것 자체는 단순히 KDH 바이러스의 또 다른 작용에 지나지 않았다. KDH에 감염된 사람들 대부분은 사망에 이르렀지만, 몇몇 (어리고 강한) 사람들에게는 바이러스가 다르게 작용했다. KDH 바이러스가 아니라 다른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도. 생전에 한 번이라도 KDH에 감염된 적이 있다면 리부트가 될 수 있었다. 리부트가 될 때 시체는 사망 전보다 더 굳세고 강력한 육체로 되살아난다. (P. 21)
하지만 리부트, 즉 되살아난 자들은 그것만 변하는 게 아니다. 육체가 달라진 만큼 마음도 달라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이전의 인간다운 마음을 잃어버린다. 감정을 잃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마음도 잃어버린다. 맞다. 그들은 '사이코패스'다.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태연히 죽일 수 있다. 여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상관없이. 머리를 잘리지 않는 한, 총을 맞아도 죽지 않고 부러진 뼈도 시간이 지나면 곧 원상태로 복구되는 불사신의 몸이지만 사람들이 리부트를 싫어하고 리부트가 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리부트들을 '생전 모습의 악한 복제판'이라 부른다.
'렌 178'
그녀가 주인공이다. 렌은 리부트다. 렌은 12살에 리부트가 되었다. 이름 뒤의 178이란 그녀가 죽어있었던 시간을 말한다. 즉 렌은 178분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말이다. 리부트들 사이에선 뒤의 숫자가 높을수록 강하다. 150을 넘어가는 리부트는 잘 없다. 하물며 178분 근처는 손에 꼽을만하다. 그만큼 렌은 강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그만큼 인간다움에서 멀어지는 수치이기도 하다. 오래 죽으면 죽을 수록 육체는 강인해지지만 마음은 얼어붙어만 간다. 그 숫자는 냉혹의 수치요, 괴물의 수치다. 숫자가 적은 리부트들도, 사람들도 모두 렌을 두려워한다. 가까이 오는 것조차 꺼린다. 그건 또한 고독의 수치이기도 하다.
차디찬 마음을 가진 그녀에게 삶의 의미 따위는 없다. 그저 명령이 떨어지면 사람이나 탈주한 리부트들을 사냥하는 것 뿐. 그녀는 병기와 다름없다. 그런 그녀가 소속된 곳은 인발진. 일종의 기업이다. 언젠가 되살아온 리부트들을 도구로 써먹을 수 있다는 주장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설립된 단체다. 말하자면 일종의 군수 회사다. 인발진은 리부트들을 군인이 아니라 무기처럼 관리한다. 지속적으로 리부트들을 모으고 렌과 같은 경험이 많은 리부트들을 조교로 시켜 신입 리부트들을 지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캘럼 레예스 22가 신입 리부트로 렌이 있는 곳에 온다.
'캘럼 레예스 22'
십대의 남자 아이. 렌은 이미 6년간 리부트로 일했으니 나이는 얼추 비슷할 것이다. 그가 죽은 시간은 숫자 대로 겨우 22분. 렌은 놀란다. 40분 미만의 사람을 좀처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2분이면 거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과연 캘럼은 다른 리부트들과 달리 실실 웃고 있다. 그런데 그런 캘럼이 렌에게 허물없이 인사한다. 거의 인간이나 마찬가지면서도 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해지려고 애를 쓴다. 렌은 확신한다. 저 정도의 숫자라면 분명 두 달 안에 죽게 될 것이라고.
왜일까? 렌은 캘럼이 신경쓰인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괴물이 아니라 인간을 대하듯이 해주었기 때문일까?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캘럼이 리시의 훈련생으로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리시는 이미 52명의 훈련생을 죽였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캘럼도 그럴 것이다. 렌은 그게 신경쓰인다. 숫자가 적은 훈련생을 맡는다는 것은 조교로서도 큰 모험이다. 오로지 명령 수행과 이기적 타산밖에 남지 않은 렌은 원래 그런 무모한 선택을 할 리 없었다. 하지만 렌은 자신도 모르게 캘럼을 자신의 훈련생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이제 전체 사회를 동요시킬 그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RETURN
아마도 눈치챘을 것 같은데, 리부트는 좀비의 또 다른 변형이다. 자의식이 있고 인육을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 그 밖의 다른 것은 좀비와 다를 바 없다. 렌, 그녀는 죽음에서 돌아왔지만 아직 인간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그건 겨우 반 밖에 되지 않은 '리턴'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리부트는 무슨 이야기인가? 그건 바로 인간으로 돌아가는(RETURN) 이야기다. 그런데 인간이란 무엇일까? 과연 렌은 어떻게 되어야 우리는 렌이 드디어 인간으로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리부트의 진짜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것. 렌이 그 '인간다움의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정녕 그녀가 완전히 '리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질문을 풀기 위해, 그 이타카를 찾기 위해 작가 에이미 틴터러는 사랑을 가져온다. 그렇다. 이 소설은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여전사가 나오고 칼이 바람을 가로지르며 여기저기서 총탄이 난무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로맨스다. 헤겔은 사랑은 가장 친밀한 타인과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만들어 준다고 한 바 있는데 '리부트'의 사랑 역시 그렇다. 그 사랑을 통해 렌은 자신이 되찾아야 할 인간의 진짜 모습을 깨닫게 된다. 바로 '캘럼'이라는 일종의 롤 모델을 통해서...
ROMANCE
리부트는 모두 2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권은 어디까지나 렌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2권에서는 렌과 캘럼이 돌림노래를 하듯 서로 번갈아가며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즉 1권과 2권의 형식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2권을 읽을 때 좀 난점이 있다. 1권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처럼 읽다가 렌과 캘럼의 이야기를 혼동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2권을 읽을 때는 챕터 앞에 나오는 사람의 이름을 꼭 확인하고 읽는 게 좋다. 이렇게 소설은 좀 독특한 구성을 지니고 있는데 작가, 에이미 틴터러가 이처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렌이 캘럼과의 사랑을 통해서 점점 각성하게 될 참된 인간다움이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건 바로 타자를 자기와 대등하게 받아들이는 게 인간다움의 진정한 '이타카'라는 것이다. 때문에 에이미 틴터러는 2권에서 렌과 똑같은 비중으로 캘럼에게 주역을 허락한 것이다. 이는 리부트들을 관리하고 있는 인발진과 탈주한 리부트 마이카의 행태에서 더욱 드러나는데 이 둘엔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타인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발진과 마이카에게 자신과 다른 존재는 그저 도구와 방해물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렌이 결정적으로 캘럼을 데리고 인발진을 탈출한 이유는 인발진이 리부트들에게 놓고 있던 수상한 약 때문이었다. 렌은 룸메이트 에바의 사건을 통해 그 약이 리부트의 자의식을 제거하여 인육을 뜯어 먹는 괴물로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인발진은 리부트들을 좀 더 손쉬운 도구로 만들기 위해 좀비화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캘럼도 그 약을 맞게 된다. 워낙에 캘럼이 죽이라는 인발진의 명령을 무시한 탓에 목숨이 위험하긴 했지만(리부트가 인발진의 명령을 거부하면 즉시 처형이다.) 그 치료제를 찾기 위해서라도 인발진에서 탈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발진은 타자인 리부트들을 결코 자신과 대등한 존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리부트인 마이카는 어떤가?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들을 괴물 대하듯 하고 노예처럼 부리는 인간들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 인발진뿐 만 아니라 보통의 민간인들 역시 그에게 오로지 제거해야 하는 종양일 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닮았다. 인발진은 좀비를 만들고 마이카는 괴물들로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고향인 이타카로 가기 위해 헤쳐나온 난관이나 마찬가지다. 렌의 사랑인 캘럼은 이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그에겐 뭔가를 나누는 선이라는 게 없다. 그에게 자신을 괴물보듯 하는 부모나 동생도, 자신을 비웃고 경멸하는 상위 리부트들 또한 다 포용의 대상이다. 그는 누구도 죽이지 않고 자신을 배척하는 이를 돕기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뛰어든다. 모두가 나 자신처럼 소중하다. 그게 바로 캘럼이다. 렌은 그 캘럼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이타카로 가는 것이다. '리부트'의 사랑이란 오디세우스의 배와도 같다.
이제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녀가 언제 진정 '리턴'이 되는 지.
그건 바로 냉혹한 그녀의 두 눈에서 공감의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다.
내가 읽은 리부트는 이런 소설이다.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날로 심해지는 시대에, '의리'란 말이 어느새 유행어가 될만큼 사람 냄새가 몹시도 그리운 시대에, 우리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참된 인간다움을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2권 분량이지만 읽기에 별 부담은 없었다. 이야기 전개 속도가 빠르고 흥미로운 사건들이 이야기가 좀 늘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튀어나와 가속도를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좀비의 아이디어를 새롭게 변형하여 현재 판타지 소설의 주류적 경향이라고 해도 좋은 디스토피아와 잘 버무렸다고 보여진다.
동영상은 '리부트'의 북트레일러다. 원서의 출판사가 만든 것인데 소설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가져와 본다.
맨 앞에 나오는 소년이 켈럼22, 네번째의 기묘한 눈을 가진 소녀가 바로 렌178 이다. 폭스사에서 영화로 만든다고 하는데 영상으로는 이 둘의 여정이 어떻게 표현될 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