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의 연인 1 - 제1회 퍼플로맨스 최우수상 수상작
임이슬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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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의 인연'이 아니다 '유성의 연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혼동하지 말길. 이 소설은 제1회 퍼플 로맨스 소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니까. 말인즉슨 로맨스 소설이다. 장르라면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는 내가 그래도 인연이 먼 장르가 있다면 그건 단연 '로맨스'다. 혼동해서 읽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궁금증 때문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로맨스 소설 공모전을 보게 되었다. 저번에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에서도 대상 작품이 로맨스 소설인 걸로 알고 있다. 대상만이 아니다. 수상작이나 응모작 중에 로맨스 소설이 꽤 많았다. 어떤 공모전은 아예 로맨스 소설만을 뽑질 않나, 왜 이리도 유독 로맨스 소설인 것인지, 정말 인기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렇다면 왜 인기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온 김에 읽게 되었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시대적 배경은 조선 광해군 1년 1609년이다. 이렇게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얼마전에 방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그 때 도민준이 처음으로 UFO를 타고 조선에 온 때가 바로 그 해였다. 날짜는 8월 25일. 실록에 이르기를 그 날엔 강원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이한 물체가 하늘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소설도 거기에 영감 받아 만들어졌다. 맞다. '별에서 온 그대'처럼 우주인과 지구인의 로맨스다. 설정이 비슷해서 표절인가 싶겠지만 소설이 드라마보다 먼저 나왔다. 1회 퍼플 로맨스 대회가 열렸던 것은 2012년이니까. 뭐, 어쨌든. 여기서 우주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여성 우주인과 조선의 남성 선비의 연애담이다. 그들이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출중한 외모에 걸맞는 출중한 능력까지 겸비한 선비 정휘지는 뜻하지 않은 모함에 휘말려 강원도 양양에서 귀양 살이를 하고 있다. 어느날 모범생 선비답게 책방에 들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행패를 당하고 있는 여자 무당을 도와주게 된다. 여자는 결초보은의 심정으로 그 도움에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다면서 점을 보라고 한다. 정휘지는 처음엔 사양하다가 너무나 간곡히 부탁하는지라 점을 보게 되는데 그 여무당은 정휘지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귀인'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당부를 덧붙인다.


 "반드지 잊지 마십시오. 가장 먼저 눈에 띈 물건을 몸에 지니고 그 누구에게도 뵈지도 주지도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선비님.(P. 15)


귀양 살이하는 처지에 그런 인연이 어찌 있을꼬 반신반의했던 정휘지였는데 귀양하던 거처에서 하나있던 하인을 심부름 보내는 바람에 직접 장작을 구하러 숲에 들어갔던 정휘지는 하늘에서 갑자기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하얀 살결에 푸른 눈을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정휘지는 선녀를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바로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우리가 너무 잘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을 살짝 변형해서 만들어졌다. 여무당이 사슴이고 정휘지보고 절대 남에게 주지 말라고 했던 것은 선녀의 날개옷이며 정휘지는 나무꾼, 우주인은 선녀인 것이다. 정작 그 우주인은 성년을 맞이하여 비로소 원했던 대로 혼자 우주여행을 할 수 있게 되어 펜팔을 하던 2609년의 한국 친구를 만나러 지구로 온 것이지만 도중에 뜻하지 않은 사고로 그만 천년 전으로 슬립해 여기에 불시착 하고 만 것이다. 그런 그녀의 이름은 '용'을 뜻하는 미르.


 정휘지와 미르는 만나자마자 우리말로 술술 대화를 이어가는데 '이거 가능한 상황이야? '싶지만 미르가 원래 한국인과 펜팔 했다는 설정으로 잘 넘기고 있다. 그런데 미르가 지구의, 그것도 한국의, 거기다 천년전의 조선의 문화에 너무나 무리없이 잘 적응하고 있어 도대체가 우주인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소설 중반에 정휘지가 호랑이의 습격을 받아 죽을 고비에 처하고 또 정희지의 친구 수하가 고을에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도중 정체불명의 짐승에게 습격을 받아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미르는 자신이 가진 힘으로 그들을 완벽하게 치유한다. 그 때라야 가끔 '아! 얘. 우주인이었지.' 깨닫는 정도다. 일부러 주인공을 우주인으로 설정했다면 완벽한 타자로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문화적 격차에서 비롯되는 소외감과 갈등을 넣었음직도 한데 그것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그냥 지구인, 조선 여자와 다를 바 없이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왜 굳이 여자 우주인으로 설정했는지 약간 의문이다. 이야기가 단조로웠기에 그런 것들이라도 투영되었으면 이야기가 한결 더 풍성해졌을 것 같아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다.


 로맨스 소설의 공식엔 충실하다. 정휘지를 사모하는 여인인 수연과의 삼각관계도 나오고 미르를 사모하는 도하의 삼각관계도 나온다. 둘 다 주인공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성격인 것도 다른 로맨스 작품에서 흔히 보던 공식이다. 둘 다 사실은 주인공의 질투를 유발하여 더욱 둘이 가깝게 만드는 역할인 것도 마찬가지다. 공식에 충실함은 사실 양날의 검이다. 장르적 충성도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지 훤히 내다보게 만들어 식상함을 주기도 한다. 장르의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이야기의 신선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독자의 뇌리에 인상 깊게 새기려면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유성의 연인'은 양양 고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음모를 넣어 신선도를 높이려 했지만 제대로 세공하지 못했고 결말까지 흐지부지된 감이 없지 않아서 병살타에 그치고 말았다. 이왕 위기 상황을 만들었으면 정휘지와 미르가 함께 소동의 와중에 있고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좋았으리라 싶다.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불궈지는 중후반에서 정휘지만 그 수사에 뛰어드는 바람에 정휘지와 미르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더하여 이런 상황으로 미르가 더욱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면서 우주인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비한 정체성이 줄 수 있는 매력을 모조리 휘발시켜 버렸다. 여기서 미르는 그냥 조선 여인 같다. 더구나 이런 로맨스 소설은 사랑을 통한 성장을 말하기 마련인데 미르는 아무런 성장이 없다. 해프닝 정도의 사건들만 있고 고난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정휘지도 마찬가지다.


 대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란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이다. 무엇보다 도래한 그들 모두가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인해서였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지구와 우주인 그리고 천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만이 아니다. 떠나온 세계에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 가족들 때문이다. 포기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도 영원히. 즉 사랑 때문에 돌아가기를 포기하는 것은 그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넘어온 자의 어깨엔 떠나온 세계 전체가 얹혀있는 것이다. 육중하게도.


 사랑과 온 세계가 지금 맞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지 모르지만 과연 그 세계 전부를 이길 수 있을까? 하여 이별은 예정된 것이라 말하는 거다. 사랑은 이길 수 없다. 선녀는 결국 하늘로 돌아갔다. 그 이후의 모든 시공을 초월한 사랑의 결말도 그랬다. 결국 이러한 이야기에서 사랑이란 이별을 제대로 하기 위한 사랑이다. 보내주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 혹은 그녀가 포기해야 할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사랑을 통해 알기에 보내줄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성장이다. 마음의 그릇이 타인을 가득 담고도 넘칠만큼 커지는 것이다. 바로 사랑이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그들이 이별할 때 흐르는 눈물 속에서 더 크게 자라난 사랑을 보고는 감동하는 것이다. 성장이 없으면 감동이 없다. 헤어짐도 아프지 않다.


 아쉬운 것은 이것이다. 작가의 주안점이 성장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 성장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끔 세부적으로 세공까지 했다면 더할나위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나도 한 가지 배운다. 사랑이야기가 그저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로만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거기엔 뭔가 사랑으로 그 영혼이 더 커지게 만드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걸. 그것도 독자들이 감응할 수 있는. 그러고보니 예전에 산드라 블록이 주연했던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생각난다. 그 영화의 원작은 로맨스 소설이었다. 원작이 로맨스 소설의 대표적 존재라 할 수 있는 할리퀸 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 영화는 동경과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여주인공인 산드라 블록은 처음엔 동경을 사랑으로 알지만 뜻하지 않았던 사건과 이에 결부된 이런 저런 만남들을 통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그녀로 하여금 진짜 사랑을 보게 한 것이 바로 성장이었다. 성장이 그녀에게 참된 사랑을 볼 수 있는 개안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관객도 그만큼 덩달아 성장한다. 로맨스 소설이 의미 없지는 않다.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로맨스 소설이 폄하되고 있는 것(어쩌면 이건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른다.)은 작가들의 책임일수도 있다. 로맨스 소설이 간직하고 있는 광채를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다비드상을 조각했을 때 그는 다만 원래 대리석 안에 깃들어 있던 것을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어 드러나게 했을 뿐이라고 고백했다. 사랑은 원래 환하고 아름다우며 고귀한 것. 앞으로 로맨스 작가들이 소설이라는 정과 망치를 통해서 그 온전한 모습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느끼는 일이 삶에 플러스가 되면 됐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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