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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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영화 '역린'이 개봉한다. 군대에서 전역하고 복귀한 현빈이 처음으로 택한 작품에다가 '다모'로 유명한 연출가 이재규의 첫 영화 감독작이기도 해서 현재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출연진도 쟁쟁하다. 정조가 가장 신임하는 내관 상책 역은 정재영, 정조를 노리는 살수의 역은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로 유명세를 탄 조정석이(아무래도 '더킹 투하츠'의 인연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정조의 숙적인 야심가 정순왕후에는 한지민, 정조의 엄마인 헤경궁 홍씨는 김성령이 맡아 열연한다. 영화는 정조가 즉위한 지 1년이 되는 날인 1777년 7월 28일, 그 '하루'를 담는다. 그 날 밤에 정조는 홀로 책을 읽고 있다가 자객의 침입을 받는다.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로 이를 '정유역변'이라 한다. 들려오는 시사회 평은 그리 좋지 않다.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이 영화의 단점은 너무 지나치게 설명적이라는 것이다. 복잡한 등장인물의 관계와 그들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 너무 치중해 정작 영화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원래 원 소스 멀티 유즈로 기획되었던지 원작 소설과 영화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제목은 동일하다. 작가는 최성현. 원작자가 영화 시나리오까지 맡았다. 이름이 어딘가 낯이 익다했더니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만화 '교무의 원' 스토리 작가였다.



 그래서 약간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 작품도 처음엔 꽤나 독특하면서도 근사한 스토리를 보여주다가 나중에 가서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특색이라면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그러면서도 그 하나 하나를 모두 실감나는 캐릭터로 빚어낸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저마다 다른 과거, 다른 사연 그리고 다른 신념들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기에 그들의 갈등 역시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동시에 약점도 된다. 모든 인물에 다 스포트라이트의 몫을 떼어주려다 보니 말해야 할 사연은 많아지고 관계는 복잡해지며 결국 스토리마저 뒤엉키게 될 위험이 생기는 것이다. '교무의 원'이 그 비슷한 과정을 밟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시사회의 평들도 수긍하게 되는 면이 있다.


 그건 어쩌면 두 권에 걸쳐 하고 있는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에다 다 담으려다 보니 하게 된 고육지책인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이 많아 관계는 복잡하고 또 등장인물들이 왜 이러는 것인지 그 사연 또한 설명해야 하기에 스토리에 이것 저것 올려놓은 짐들이 많아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원작을 읽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다. '교무의원'에서 보여주었던 후반의 혼란스러움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잘 정리되어 있고 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바이지만 개연성도 잘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 나온 것은 1권으로 영화 보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확히는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이 소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 가를 보여준다. 정조의 목숨을 노리는 노론과 어떻게 해서 그런 관계를 갖게 되었는 지를 '사도세자'를 통해서 보여주며 조정혁이 맡은 살수는 또 어떻게 해서 살수로 자라난 것인지를 말해주며 또한 정재영이 맡은 내관 상책은 어떻게 내관이 되었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영화에 나오는 과거의 장면들이 바로 이 1권이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원작 자체는 재밌다. 사도세자가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의 뜻과는 달리 소론을 등용하여 진정한 탕평책을 펼치려 하자 누명을 쓰고 죽는다는 것을 이야기의 주된 가지로 삼고 한 편에서는 정유역변의 단초가 되는 살막(암살단)이 형성되어가는 이야기를 접붙이고 있다.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 시대 중 가장 인기 있는 소재로 지금까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나 드라마 '이산'이나 '무사 백동수'등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사도세자와 노론의 갈등조차 딱히 새로울 것이 없지만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첨가한 살막의 이야기가 자못 흥미를 돋운다. 원래 무협 스토리 작가라서 그런지 살막 부분의 이야기는 흡사 무협지를 읽는듯한 맛이 있다. 특히 초반에 나오는 사도세자의 호위 무사 황율과 나중에 살막의 우두머리가 되는 죽장검의 광백이 맞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연출의 호흡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에 차라리 이 쪽의 분위기와 이야기를 주된 가지로 삼는 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사도세자든, 정조든 그 쪽 중심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이미 많이 들어봤으니까 말이다. 위에서 그렇게 뜨거운 궁중 암투가 벌어질 무렵 정작 밑바닥 민초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것도 좀 색다른 맛이 날 것 같고 의미있을 것 같은데.


 뭐,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내 작은 욕심일 뿐이고 벗하기엔 괜찮다고 보여진다. 그러고 보니 사도세자의 이야기 역시 전혀 새롭지 않은 건 아니다. 일단 늘 영조와 사도세자로 표현되던 것을 그 이름인 이선(사도세자)이나 이금(영조)으로만 계속 부른 것은 참신했고(나름 독자에게 새롭게 들리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아마 2권에서 정조도 내내 '이산'으로 나올 것이다.) 혜경궁 홍씨에 대한 해석도 이채로웠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납득되지 않는 동기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궁금하다.(잘 납득되지 않는 것은 사도세자 역시 마찬가지다. 운명이 정해졌기에 그런지 인물이 다소 평면적이다. 그가 굳이 아버지와 적대하려는 이유가 개인적으로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좀 세부적인 에피소드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영화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면 소설이 그것을 명쾌하게 정리해줄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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