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열 갈래의 길
유예진 지음 / 현암사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인생은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다."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한 말이다. 세상에 알려진 소설 가운데 가장 난해한 소설이기도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대로 인생은 읽기에도 짧지만 이해하기에는 더욱 턱없이 짧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쉽게 이해의 물가로 인도하는 책을 찾을 수 밖에 없는데 유예진의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이 그 중 아주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다.




 다른 프루스트 안내서들과 달리 이 책은 독특하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인용했던 작가나 작품을 가지고 작가 프루스트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길잡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맹렬한 독서가이기도 했던 프루스트의 독서 편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기도 한데 유예진 작가는 바로 그것을 단서로 프루스트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쳤던 10명의 작가를 선정하여 그들과 프루스트가 주고받았던 영향 관계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프루스트 안내서보다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프루스트에 관심을 가질 정도라면 책을 좋아하는 이가 틀림없고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만큼 관심을 끄는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예진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 마르셀의 어린 시절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고 그를 독서라는 세계로 인도했던 할머니의 세계를 당대의 여류작가 세비네 부인의 서간문을 통해 이야기하고 마르셀이 서서히 유태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을 라신의 희곡들을 통해 들려준다. 이런 식으로 유예진 작가가 특별히 언급하는 10명의 작가들은 모두 작품 속 주인공 마르셀에게 아주 깊은 영향을 미쳤던 자들이었으며 마르셀은 또한 프루스트 자신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실제 프루스트에게도 굉장한 영향을 끼쳤던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서 그 10명의 작가들을 차례로 열거해 본다면 앞에서 소개한 2명 외에도, 프랑스 문인이라면 누구가 흠모할 수 밖에 없는 발자크가 있고 어쩌면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가일지도 모를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가 있으며 문체에 있어서 프루스트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보바리 부인의 플로베르가 있으며 프루스트에게 작가가 될 소명을 일깨워주고 실제로 잦은 작가들의 모임을 마련해 진정 오늘의 프랑스 문학의 산실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공쿠르 형제가 있다.(프랑스의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의 그 주인공들이다.) 또한 계속 길어지기만 하는 이야기로 프루스트 자신에게 내 작품도 그의 것처럼 미완으로 남는 게 아닐까 불안감을 항상 가지도록 만들었던 말라르메가 있고 소설에만 등장하는 상상의 작가 베르고트의 모델이 된 아나톨 프랑스도 있으며(정작 이 책에는 아나톨 프랑스는 베르고트의 모델 정도로만 소개되어 있고 유예진 작가는 프루스트가 확립했던 작가론의 모델로서 베르고트를 설명하고 있다.) 발자크와 플로베르가 프루스트를 낳았듯이 그 역시 운명처럼 한 명의 작가를 태어나게 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인 앙드레 지드와 프루스트를 현대적으로 되살렸으며 프루스트에 관해서라면 가장 깊이 있는 해석을 들려주는 롤랑 바르트 역시도 우리는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읽을만한 책이다. 굳이 프루스트에 대해 관심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냥 문학이란 것에만 관심이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책은 꽤나 들을만한 것들을 많이 이야기해 줄 것이다. 프루스트 개인에 대해서든, 소설에 대해서든 아니면 그를 둘러싼 당대의 사회상이나 프랑스 문학에 대해서든 말이다. 그만큼 이 책은 깊이가 있으며 작가와 작품 그리고 프루스트와의 연결지점들을 텍스트와 텍스트로 엮어가는 지점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는 발자크와 플로베르의 문체를 비교하면서 프루스트가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어 갔던 과정에 대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플로베르가 문체를 중시하는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구체적 맥락은 알지 못하였는데 유예진 작가 덕분에 비로소 말끔히 정리된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 작가를 꿈꾸고 있는 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예전에 프랑수아 트뤼포라는 프랑스의 영화 감독은 영화의 마니아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첫째는 그냥 영화를 많이 보는 단계

 둘째는 영화에 대해 쓰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이자 영화 마니아의 궁극적 단계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단계라고...


 이 단계는 그러나 오직 영화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독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그냥 많이 읽는 단계고 둘째는 책에 대해서 쓰는 단계며 마지막으로 궁극적 마니아의 단계는 직접 자기 책을 쓰는 것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프루스트가 직접 그 단계를 모두 거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그 사실을 바로 알게된다. 처음에는 그냥 책이 좋아서 무작정 많이 읽는 열정적인 독서가였는데 좋아하는 작가와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문체를 모방하여 글을 써 보거나 평론을 하는 등 점점 책에 대해 쓰게 되고 결국엔 나름의 문학관, 작가관 그리고 문체관을 정립해 결말은 커녕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무작정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자신만의 작품을 써 나갔던 그였으니까. 이제와 하는 말인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그 첫 권이 나왔을 때 누구도 이 이야기가 이처럼 아주 길어지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인 프루스트조차도 말이다. 아니, 딱 한 사람이 있긴 했다. 바로 아나톨 프랑스. 그는 첫 권만 읽고도 '이것은 오래 계속될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단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과연 대가들은 부분만 보고도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작가 본인도 정작 보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이자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독서에 대한 이야기이자 작가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냥 프루스트에 대한 안내서만이 아니라 꼼꼼하게 읽어보면 문학과 삶의 관계마저 엿보이는 썩 괜찮은 길잡이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해 줄 말은 그저 한 번 읽어보시라는 것 밖에는 없다. 다 읽고나면 뭔가 분명 든든한 느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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