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지도 -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제리 브로턴 지음, 이창신 옮김, 김기봉 해제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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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에 미친 사람을 뜻하는 '맵헤드'를 쓴, 그 역시도 이름난 지도광인 켄 제닝스는 어린 시절 지도가 나오지 않는 판타지 소설은 들춰보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웃겼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도가 들어있는 이야기들이 좋았다.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가장 많이 들여다 본 교과서가 사회과 부도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였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실은 지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사건을 읽게되면 반드시 그 곳의 위치 그리고 형세를 보아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런 내가 '12개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라는 부제가 붙은 제리 브로턴의 '욕망하는 지도'를 읽게 된 것은 내일 아침에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듯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읽어 본 소감? 한 마디로 경이로운 책이다. 구글 어스를 처음 보았을 때 잡지 'PC월드'의 편집장 해리 매크래컨은 "황홀하다"고 했다고 하는데 나 역시 이 책에 대해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듯 하다. 만일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떤 것의 매력을 알려주고 지금까지 바라보았던 이상의 시야를 열어주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이 그렇다. 번역되지 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았고 이미 바깥의 상찬을 익히 봐왔던 터였는데 과연 거짓이 아니었다. 나처럼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순식간에 홀라당 읽어버릴지도 모른다. 덕분에 나는 지금 엄청난 후유증을 치르는 중이다. 위장이 뒤틀려 며칠 동안 고생한 것도 모자라 지금은 잇몸이 부어올라 제대로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그러니 읽을 때 여유를 두고 읽으시길. 급히 먹다 체한다라는 말이 책에도 그대로 통용되는 말임을 이제서야 몸으로 알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는 가상이 실제를 대체했다면서 그 대표적인 예로 지도를 든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실제 그 장소에 있을 때조차 그 곳이 내가 찾아가는 곳인지 알기 위하여 지도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이제 실제는 가상의 보완이 없으면 그 존재조차 인정받기 어렵게 되었다. 그처럼 지도는 가상으로 엮어진 기호의 체계인데 바로 그 때문에 기호가 그러하듯이 있는 그대로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많은 인간적인 것에 좌우되기 십상이다. 이를테면 이 책의 제목처럼 욕망 혹은 가치관 같은 것들. 제리 브로턴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지도를 만들려는 욕구는 인간의 기초적이고 지속적인 본능이다."라고 말했다. 본래 생물에겐 '인지적 관계대응'이라고 해서 거대하고 두렵고 인식할 수 없는 '저쪽' 세상과의 관계에서 나를 구별하고 정의내리기 위해 공간적 환경과 관련한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며 상기하는 행위를 본능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 제작까지 나아가는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나처럼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어쩌면 나의 나됨을 붙잡고 싶은 욕망의 발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냥 지도가 아니라 '세계지도'를 대상으로 한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지도는 좀 특별한 의미의 영역을 가진다고 한다. 다른 지도 제작과는 다른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기 때문이다.(P.30) 지금과 같이 인공위성을 이용한다든지 하는 것과 같은 혁신적 기술이 태동하기 전에는 세계지도를 제작하는 데 있어 특별히 두 가지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하나는 머리 위의 하늘이고 다른 하나는 상상력이다. 이 후자가 특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람들이 파악할 수 있는 세계란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와는 달리 지극히 협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막대한 외부를 어떻게든 지도에 나타내려면 상상력에 의존하는 것 말고 달리 뭐를 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해서 지도는 실제의 공간을 복사기로 밀어내는 듯 만들어지지 못하고 인간적 욕망의 간섭 아래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건 결코 미개한 기술 때문이 아니다.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보여주는 구글 어스에서조차 이러한 욕망의 간섭과 위험은 여전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으니까.

 그러므로 지도란 결국 만드는 '나'의 표현이다. 나의 욕망, 가치관의 상관물이다. 따라서 지도를 들여다 보는 일은 단순히 공간의 위치를 특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이들의 욕망, 가치관을 들여다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지도란 책이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란 책을 읽어보면 허클베리 핀이 자신이 도와주는 한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당신의 얼굴은 책 같아요. 그들은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얼굴에서 다 읽게 될 거에요."
지도가 바로 그렇다. 제리 브로턴은 자신의 책을 통해 이것을 입증한다. 그렇게 우리는 제리 브로턴의 인도로 12개의 세게 지도를 만나면서 허클베리 핀이 말했던 그대로 당시 그 지도를 제작했던 이들이나 국가의 심중에 무엇이 있었는지 혹은 바랐는지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 무엇을 읽는가? 먼저 이 책은 지도로 읽는 세계사이다. 우리나라 책에는 부제로 쓰였지만 원래 제목은 이것이었다. 제목 그대로다. 정말로 우리는 지도를 매개로 역사적으로 세계가 변천해 온 과정을 읽을 수 있다. 특히나 3장,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헤리퍼드 마타문디'와 5장,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는 마르틴 발트제묄러의 세계지도'를 비교해 보라. 여기서 우리는 정확히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굴곡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300년경에 제작된 헤리퍼드 마파문디

(중세 시대의 대표적 지도로 영국의 해리퍼드 성당의 별관에 보관되어 있어 그렇게 불리고 있다. 마파문디라는 말은 넵킨을 뜻하는 라틴어 '마파'와 세계를 뜻하는 라틴어를 합친 말이다. 현재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시 중세의 가치관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도 맨 위에 예수님이 보이고 예루살렘이 지도의 중심에 놓여져 있고 그 곳이 속한 아시아가 지도의 2/3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의 위쪽이 우리가 흔히 예상하는 북쪽이 아니라 동쪽이라는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도의 위쪽은 북쪽으로 하는 게 좋다고 하여 그 때부터 북쪽으로 해왔는데 여기서는 무시된 것이다.(이는 중세 지도의 특징이기도 하다.) 더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격자선도 보이지 않는다. 하나의 거대한 구안에 갇힌 세계는 이 지도가 보여주려는 게 세계가 아니라 예수가 다스리는 세상이라는 기독교를 보여주려는 듯 하다.
 

 '미국의 출생성명서'로 유명한 마르틴 발터제묄러의 세계지도
(1507년에 제작되었고 목판 인쇄되었다. 1998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무려 천만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해 더욱 유명해졌다. 지도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미국 의회도서관은 특히 유명한 곳이다. 세계에서 희귀하다는 지도가 거의 다 여기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출생증명서'라는 말은 이 지도의 진위를 처음 검증하고 이 구입의 필요성을 미국 의회도서관에 알린 영국의 유명한 지도 거래상이자 아메리카지도 전문가인 필립 버든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는 처음 이 지도를 보았을 때 미국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 다음으로 중요한 미국 문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지도는 독일의 한 백작이 소유했었는데 그 매각 의뢰서를 '발견자들'로 유명한 대니얼 부어스틴(여기서 이 이름을 만나게 될 줄이야.)이 썼다고 한다. 이 지도가 그만한 가치를 가지는 것은 처음으로 아메리카를 독립된 대륙으로 묘사하고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붙여 준 지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이 지도에는 당시 한창 꽃피우던 르네상스적 정신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파문디와는 다르게 더이상 예수 같은 성경 상의 인물도 등장하지 않고 다시금 프톨레마이오스의 전통으로 돌아가 지도의 위쪽도 그의 권고대로 북쪽으로 잡고 있다. 거기다 르네상스 시대에 새로 발견된 지역들을 프톨레마이오스의 고전적 세계모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노력도 현저하다. 이처럼 지도에는 당시 지배하던 가치관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세계지도를 통해 세계사를 읽는 일이 허언이 아닌 것이다.)

1969년에 발표된 영국의 락그룸 'EAST OF EDEN'의 데뷔 앨범 커버

 (여인의 나신에 메르카토르의 지도가 문신처럼 그려져 있는 멋진 커버로 내가 좋아하는 앨범이기도 하여 이 자리에서 소개해 본다. 앨범 이름 역시 메르카토르 프로젝트이다. 한 마디로 메르카토르가 지도를 통해 하려고 했던 일을 음악을 통해 하겠다는 뜻을 표방한 것. 이들은 주로 인도 음악 스타일을 많이 연주했는데 그런 면에서 관용을 지도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메르카토르의 이념을 잘 따르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LP로 보면 더욱 근사한 커버다.)

 그런데 이렇게 읽다보면 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지도를 만들고 보고 읽는 '인간'이다.

 지도에 투사하고 있는 가치관, 지도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들을 읽다보면 저 마파문디와 발터제묄러의 세계지도 차이에서 보듯 인간들의 생각들이 어떻게 바뀌고 그 욕망 또한 어떻게 달라졌던가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파문디에선 없었던 국가와 개체의 발견이 발터제묄러에서는 나타나는가 싶더니 종교개혁과 더불어 나타난 메르카토르의 투영법이 사실은 오로지 하나만 군림하며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과 변방만을 만들어내던 세계를 떠나 어디까지나 모든 지역을 똑같은 존재로서 공평하게 다루려 한 이념이 투영된이었음을 알게되면서 개체라는 독립성의 발견과 함께 이 장의 제목대로 '관용'에 인류가 눈을 뜨게 되는 것을 목도하는가 하면 바로 그 관용이 개체의 독립이 더욱 굳어짐에 따라 서로 자기가 중심이 되려는 욕망으로 변질되어 결국은 매킨더에 의해 만들어져 이후 전쟁을 일으킨 주요한 원인이 된 '지정학'의 탄생으로 굴절되는 걸 보면서 자연히 인간의 마음이 흘러온 길을 더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세가지를 준다.
 하나는 지도와 그에 관련된 많은 이야기거리들을. 다른 하나는 지도의 변천을 둘러싼 세계 역사의 변화를. 마지막으로 그 경로를 따라 이행해 온 인간 마음의 발자취를 말이다. 단적으로 지도라는 것이 이렇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풍부한 텍스트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깊이 느끼게 된다. 그러니 지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어찌 황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몸이 비상벨을 아무리 울려도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래서 요모양 요꼴로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왠지 풍요로워진 느낌이다. 아무튼 좋은 책이다. 아마도 당신에게는 여덟 번째로 권하는 것 같다. 만나는 이들마다 권하고 다녔는데 제대로 헤아려 보질 못했네. 몸이 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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