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디오 키드 -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유쾌한 빈혈토크
김훈종 외 지음, 이크종 그림 / 더난출판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읽으면서 배가 아팠다. 왜 이렇게 다들 재미지게 살고 있는거야!
 그래, 나 속좁다. 남들이 나보다 재미있게 삶을 즐기고 있는 거 붕어빵을 먹었는데 앙꼬 대신 소금이 가득 들어있는 것처럼 얼굴 찌푸린다. 특히 이재익 작가. 대학 시절부터 미녀들을 골라 차에 태우고 다니며 클럽을 전전하기만 했는데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거 읽다가 그만 덮어버릴까 생각하기도 했다. 책에 이렇게 행복한 이야기만 있으면 어쩌라는거야? 다른 이들의 삶은 이토록 시궁창 같은데... 영락없이 우리는 땡볕에 사막을 횡단하고 있는데 이들은 오아시스 속에서 둥가둥가 우쿠렐레나 튕기고 있는 꼴이잖아!

  뭐? 내 배를 식중독처럼 아프게 만든 책에 대한 소개가 정작 없다고? 구태여 궁금해할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그렇게 물으니 말해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네. 좋아. 그 책, '20세기 라디오 키드'라는 책이다. 실물이 궁금해? 실물은 이렇게 생겼다.


 속이 왠지 더부룩 답답할 때,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된다면 한 번 들춰보면 되겠네. 그러면 설사약을 먹은 듯이 화악 내려갈테니까. 무협에서 흔히 말하듯, 독은 독으로 치유한다는 말을 믿는다면 말이지. 복통을 복통으로 다스려보는 것도 새로울 것 같기는 하다. 그건 그렇고, 제목이 라디오 키드인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세 명이 공저했는데 그 저자들이 모두 SBS 라디오 피디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의기투합하여 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 오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걸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게 바로 이 책이다.

 놀만큼 놀았고 재미를 느낄만큼 느꼈고, 또 즐거움을 추구할대로 추구하면서 살아갈 이들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겨 있는 셈. 그러니 나처럼 어렸을 때 별 추억도 없고, 젊었을 때 화끈하게 놀지도 못한 사람은 읽으면서 어째 배가 살살 뒤틀리듯 다소간의 경련을 느낄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독자에게 마치 '메롱' 하듯이 실려 있는 것이다.  

 이 낼름거리는 혀와도 같은 책은 일종의 추억담 모음집이다. 재미지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만 뚝 떼놓고 보면 우리가 살아온 풍경과 그리 다르지 않을 이들의 추억이 여름방학 숙제로 흔히 했던 곤충채집처럼 핀으로 꽂혀있다고 보면 과녘 적중이다. 에잇! 단적으로 말해버리자! 그래, 이 책은 '키덜트'들을 위한 책이다. 키덜트인 그들이 키덜트들에게 배철수의 노래와도 같이 '모여라!' 하는 책. 그것이 바로 '20세기 라디오 키드'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한껏 나와서 역시나 일본에서 키덜트 붐을 일으켰던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제목 '20세기 소년'을 패러디한 그대로 말이다. 그렇게 키덜트의, 키덜트에 의한, 키덜트들을 위한 책이다.

 사실 이 키덜트들은 요즘 마케팅의 주요 타겟이다. 일본이 그랬듯이 자신의 추억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소비를 하는 이들은 상품을 팔고자 하는 이들에게 군침이 도는 좋은 먹잇감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응답하라 1994' 가 대세다. 얼마전 신문 보도를 보니 요즘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3위가 바로 '응답하라'라고 한다. 이 '응답하라'가 주로 소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추억'이다. 어렸을 적, 혹은 젊었을 적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었던 것들.

 '응답하라'는 사라져 버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과거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 시대의 물건, 그 시대의 스타, 그 시대의 감성 속으로.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나로 언제까지나 있고 싶은 키덜트들을 위한 롤러코스터인 것이다. 이 책도 그와 비슷하다. 그 시대의 추억과 감성 속으로 우리를 깊숙이 데려가려고 (애를) 쓴다. '솔직히 말해. 당신도 나와 비슷한 걸 겪었잖아?'하고 책이 말해오면  '그래, 그런 것도 있었지." 끄덕이게 된다. 비슷한 경험이 공감의 바탕을 형성하고, 그 공감의 파동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과거 속의 나를 삽입하면서... 

 키덜트는 일종의 퇴행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퇴행은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무의식적 몸부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단순하게 말해, 현재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 과거가 정말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오늘의 고통을 잊고 싶은 마음이 그것을 아름답게 채색할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키덜트의 만개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금은 깡그리 잊혀졌지만 '아이러브스쿨' 말이다. 어린시절 동창생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던 그 '아이러브스쿨'이 성행했을 때 한국은 IM로 휘청이고 있었다. 갑자기 닥쳐온 엄청난 한파. 그 현실의 강추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덥혀줄 온기를 과거에서 찾았다. 아무 걱정없이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그 때에게서. 그렇게 그들은 과거로의 퇴행을 통해서 현실의 고통을 무마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 현실은 현실!
 과거는 그저 유희의 대상일 뿐, 거기서 현실의 치유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건 오늘의 모습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뭐, 다들 유희로만 즐기고 있는데 나만 괜히 진지해져서는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면 좋겠지만. 다행히, 이 책엔 그리 깊은 이야기는 없다. 그저 '그땐 그랬지' 하는 정도의 낄낄거림만 있을 뿐. 문방구 앞에서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듯, 그렇게 잠깐 과거에 젖어볼 수 있는 책이다. 우연히 학창시절 동창생을 만나 옛날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취하기 위한 술이라기 보다는 질겅질겅 씹으며 수다를 돕는 안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아픈 배를 쥐어가며 이야기를 너무 길게 했다. 나름 진지해져 버리는 바람에 머리도 아프다. 어쨌든 난 리뷰를 이렇게 남겼고 읽느냐 마느냐는 당신이 결정할 문제다. 아무튼 내가 여기서 분명히 경고했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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