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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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읽은 느낌부터 말할까?
 분명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에서 그 제목을 따왔을 이 소설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는 미싱 링크(missing link)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그동안 죽 국내에 출간된 미타이 기요시 시리즈를 '마신유희'까지 다 본 사람에 한해서다. 특히나 '마신유희'가 가장 심한데, 거기서는 명탐정 미타이 기요시가 무슨 '절대 천재'처럼 묘사되어 있다. 시리즈의 두번째인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까지만 해도 점성술사 말고는 변변한 직업조차 없었던 그가 이제는 공학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뇌과학 전문 교수인 것이다. 그것도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그는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다. '마신유희'를 읽으면서 '도대체 이 간극은 어떻게 된 거야?'하는 생각을 곧잘 했다. 해설의 글에서도 별다른 설명은 없이 미타라이 기요시를 이미 천재 중의 천재로 일컫고 있었기에 도대체 어찌된 연유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나처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제는 안심하시라!
 드디어 우리는 해답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맨 위에서 '잃어버린 고리'를 뜻하는 '미싱 링크'를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 바로 이 책이 거기에 대한 해답이다. '초(超)천재' 미타라이 기요시가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지, 우리는 바로 여기서 마음껏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미타이 기요시의 인사'엔 모두 네 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는 미타이 기요시 시리즈의 첫 단편집으로 1987년에 나왔다. 맞다. 82년에 나온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로 부터 무려 5년이 지나서다. 81년에 나온 '점성술 살인사건'과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생각한다면 꽤나 오래 걸려서 첫단편집이 나온 셈이다. 이 같은 간극은 미타이 시리즈로선 아주 이례적으로 길다. 바로 뒤이어 나온 '이방의 기사'도 88년에 나왔고 그 뒤로 죽 훑어봐도 2년 이상의 간극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 사이에 85년에 나온 '여름, 19세의 초상'말고는 별다른 작품 또한 없으므로(그의 또다른 시리즈, 요시키 다케시도 89년이 되어서야 두번째 장편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가 나왔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작품 정말 물건이다. 꼭 한 번 벗해보시길.) 여기 실려 있는 네 단편들을 1년에 한 편씩 썼다고 해도 왠지 믿겨질 정도다. 아무튼 시마다 소지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세월이 여기에 녹아있는 것이다.

 

 작품을 읽어보고 느낀 것인데 나는 이게 시마다 소지가 '미타이 기요시'란 캐릭터를 개인적으로 아꼈기 때문은 아닌가 싶어진다. 그렇게 여기게 된 이유는 여기에 실린 '숫자 자물쇠', '질주하는 사자', '시덴카이' 그리고 '그리스 개' 모두가 하나같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미타라이'라는 인간의 매력을 흠뻑 맛보게 하는데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소설엔 그냥 명탐정만은 아닌 인간, '미타라이 기요시'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한없이 오만하고 경찰이 두 손든 난해한 수수께끼가 아니면 잘 나서지도 않는, 정의감 보다 자기의 쾌락을 위해서만 움직이는 추리 오타쿠로서의 그의 모습 보다는 그도 불쌍한 이들에 대해서는 연민('그리스 개'에서 원래 의대에서 천재로 통했던 그가 의대를 그만두게 된 이유에서 나타나듯)과 공감을 가질 줄 아는(크리스마스에 불쌍한 한 아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미라타이의 모습은 뜻밗이었고 그래서 더욱 뭉클하기까지 했다.) '인간' 미타이 기요시의 모습이 더 많이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실린 네 단편들은 다 미스터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중심이기도 하다. 한데 '미타라이의 인간적 매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미스터리들마저 미타라이의 인간적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세공된 것은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달리 말해, 이번엔 어떤 미타라이의 인간적 매력을 보여줄 것인지가 먼저 선택되고 그에 따라 미스터리의 설계가 이루어진 것 같다. 혹,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더딘 걸음이 되었던 것도 시마다 소지 자신이 이 미타라이란 캐릭터를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게 할 것인지 공들여 설정하느라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말미엔 '신(新) 미타라이 기요시의 의지'란 제목의 시마다 소지가 직접 쓴 '미타라이 캐릭터'에 대한 후기치고는 다소 긴 글이 있는데 어째 범상하지가 않다. 그는 타인을 대하는 미타라이 기요시의 태도가 자신이 생각하는 현대 일본인들의 문제점에 대해 하나의 대안으로써 형성했다고까지 하고 있으니. 미타라이는 시마다 소지에게 그냥 훌쩍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부여한 의미가 너무도 커서 시마다 소지는 미타라이 기요시는 영화든, 드라마든, 만화든, 그 어떤 것이든지간에 각색되는 걸 반대했다고 한다.

 

 그만큼 아끼는 캐릭터이니, 그 매력의 세공을 위해 1년쯤 걸렸다해도 어째 무턱대로 '그럴리가' 할 수 만은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이만큼 '인간' 미타라이 기요시를 열대의 스콜 한 가운에 있는 것과도 같이 흠뻑 느끼게 하는 것은 달리 또 없으니 미타라이 기요시에게 개인적 매력이나 흥미를 느꼈다면 꼭 빠뜨리지 말아야 할 책으로 보인다.

 

 명색이 그래도 리뷰인데, 실려있는 네 개의 단편들에 대해서 그나마 대략적이더라도 설명은 해야할 것 같다.

 

 '숫자 자물쇠'는 알리바이 트릭에 관한 것이고, '질주하는 사자'는 태풍이 부는 날 밤, 그것도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아주 짧은 시간에 11층의 꼭대기 방에서 한참 떨어진 열차 선로 위에 시체가 있을 수 있게 되었나 하는 범행 방법의 트릭을 다룬다.(엘러리 퀸 같은 본격 미스터리라, 과연 엘러리 퀸이 했었던 '독자에 대한 도전'까지 들어가 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만든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기인 '시덴카이'를 말하는 제목의 단편은 분명 셜록 홈즈의 '붉은 머리 연맹'을 오마쥬한 것으로 그와 똑같이 등장인물이 당한 기묘한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힌다. '그리스 개'는 스미다가와 강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유괴에 관한 미스터리다. 여기엔 또 본격 미스터리라면 빠질 수 없는 암호 미스터리까지 나와서 감칠맛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시덴카이'다. 캐릭터의 묘사가 좋았고 마지막에 당한 이의 독백도, 그것을 묘사한 시마다 소지의 연출도 좋았다.(진짜 매력적으로 연출되었는데 스포일러가 될까봐 밝히지 못한다는 게 유감이다.) '숫자 자물쇠'는 시마다 소지에게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와 같은 면모가 엿보여서 더욱 소중한 단편이다. 그러고보면 '시덴카이'도 비슷한 것을 보여준다. 이 단편집이 '인간' 미타라이 기요시에 치중하고 있는 걸 보면 시마다 소지 자신도 초기에는 매그레와 비슷하게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를 이끌어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각 단편들은 인간 미타라이 기요시의 베일들을 하나씩 벗기고 있다. '숫자 자물쇠'에서는 그 이름이 '화장실'과 비슷하다는 것을 밝히고(이 때문에 '시덴카이'의 화자는 미타라이의 명함을 보고 분명 자신을 놀리기 위해 지은 가명 같은 것이라 여기기까지 한다.) '질주하는 사자'에서는 그동안 시리즈를 봐 온 나 역시 전혀 몰랐던 전세계에서마저 손꼽히는 기타 연주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드러난다. 태풍이 몰아치는 고층의 아파트에서 그는 불어닥치는 태풍 소리를 압도하고 현역 재즈 연주가들조차 덜덜 떨릴 정도의 빠른 속주와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준다. 그것도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자 집에서 치면서 그만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마도 여기서부터 미타라이 기요시의 넘사벽 천재 만들기는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던 것 같다. '시덴카이'에서는 해리 케멀먼의 '9마일은 너무 멀다'처럼 남은 7년동안이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기이한 경험을 멀리서 엿듣는 것만으로도 단번에 해결해 준다. 마지막 '그리스의 개'에서는 그가 일본 제일의 의대에 다녔으며 거기서조차 넘사벽의 천재로 인정받았다는 걸 알려준다. 미타라이란 이름은 아무래도 '톱-랭크'와 같은 의미인가 보다. 그러던 미타라이가 왜 점성술이나 하면서 할 일없는 백수로 있게 된 것일까? 그 이유를 그 단편은 말해준다. 어딜가나 여성들이 꽃으로 날아드는 벌들처럼 달라붙는 미타라이이지만 왜 그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개랑 하겠어!"라고 대답하는지 그 이유를 우리는 바로 거기서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미타라이란 인물에 크게는 매력, 아무리 적어도 호기심을 느끼지 않기란 힘들다. 읽었을 때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은 왜 그토록 미타라이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는데(같은 의문을 미타라이의 단짝 이시오카도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만 삐딱한 것은 아니지 싶다.) 이유가 있긴 있었다. 난 그걸 최근에 나온 미타라이의 만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다른 곳으로는 절대 미타라이 시리즈를 각색시키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런 시마다 소지의 지조도 세월에 부대끼다 보니 물러진 것인지 미타라이 시리즈의 단편들이 만화가 되어 나오고 있다. 지금도 모닝이란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데 벌써 단행본으로 두 권이나 나왔다.

 

 

 

 

 위에서 아래로 각각 1권과 2권의 표지이다.

 그리고 2권의 커버에 그려진 저 남자가 바로 '미타라이'이다. 헐~

 

 

 

 보다 자세히는 이런 모습...

 시마다 소지가 만들어 놓은 것만 해도 넘사벽의 천재인데,

 만화가는 한 술 더 떠서 넘사벽의 꽃미남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과연, 이런 용모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인가...

 

 아무튼, 1권에 2편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이 만화 '미타라이 탐정의 사건 기록' 2권에 바로 '숫자 자물쇠'가 실려있다. 미타라이의 진한 인간적 매력이 우러나온 이 단편이 만화로는 어떻게 묘사되어 있을지 궁금한데 언젠가 부디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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