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밥이다 - 매일 힘이 되는 진짜 공부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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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638페이지의 두툼한 부피감으로 날 압도하는 김경집의 '인문학은 밥이다'는 선언과도 같은 제목에서 은근히 암시되듯이 그야말로 '인문학 입문의 결정판'과도 같은 책이다. 일단 목차로 들어가보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실감할 수 있을텐데, 인문학의 텃밭과 다름없는 철학이나 종교, 역사나 문학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문학 입문서에서는 잘 나오지 않는 미술이나 음악, 정치와 경제 그리고 환경과 젠더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우리가 실생활에서 접해볼 수 있는 모든 분야를 인문학이라는 필터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보게 된 건, 무엇보다 저자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다.


책으로서는 두 번째 만남인 이 저자는 일전에 '눈 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으로 만나본 적이 있는데, 지금 무엇보다 왜곡되고 어긋나버린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검증에 나섰던 그 책은 예전부터 비슷한 의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내게 그야말로 오랜 갈증이 해갈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랬던 저자이기에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이름으로 나온 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을 읽게되면 속표지에 나오는 지은이 소개글부터 읽게 되길 바란다. 그걸 읽어보면 어떻게 이 책이 나왔으며 이런 책이 가능했던가를 이해할 수 있다. 인용해보자면 이렇다.


 서른 살 무렵에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며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살겠다고 마음먹었고, 두 번째 25년을 마친 뒤 미련없이 학교를 떠나 지금은 충청남도 해미에 있는 작업실 '수연재'에서 '나무처럼 사는' 바람을 품고 살고 있다.


 읽었을 때, 참 멋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아마 나도 언젠가는 미련없이 오늘의 모습과 결별하고 원하는 대로 읽고 쓰면서 살고 싶다라는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은 그리 품었어도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삶에서 훌쩍 벗어나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황야와도 같은 불안한 미래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과감히 실천했고 보란듯이 자신이 원했던 삶에 천착하고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자신의 말엔 확실히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믿음직스럽기도 하도 그렇다. 아무튼 '인문학은 밥이다'는 그러한 그의 결심과 실천 때문에 나올 수 있었고 또 그만한 각오와 내력이 스며있었기에 이 같은 분량과 전 분야를 아우르는 넓은 망라가 가능했던 것 같다.


 대저 두께와 내용의 질은 반비례 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 책만큼은 그렇지 않다. 전 분야를 인문학이라는 필터로 아우르면서도 내용이 무너지거나 전개가 산만하다거나 하는 일 없이 꼭 있어야 하고 필요한 말만이 담겨져 있는데, 이렇게 핵심이 되는 줄기를 돋우고 그에 따른 교통 정리가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에게 오랜 세월에 걸친 경험의 내공이 쌓여져 있는 탓이 아닌가 한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글을 보면 25년간 자신이 학교에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쳤는지 나와 있는데, '인간학'이라는 강의의 성격상 학교의 전 전공을 상대해야 했던 그는 무엇보다 먼저 수강하는 학생들의 전공에 맞춰 자신의 강의 방법을 수정해 나갔다. 즉 이공계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강의할 때는 이공계 지식과 연계했고 음악과 학생들에겐 또 음악적 지식과 연계해 설명하는 식으로 해 나갔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오랜 세월 인문학이라는 어떤 고정된 경계를 고수하기 보다는 강의 할 때마다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과감히 다른 분야로 경계를 넘나드는. 소위 말하는 '통섭'을 실천해 온 것이었다. 이 책이 널리 아우르면서도 꽉 찬 중량감을 지닐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난해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입문서다. 그러니 초심자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이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건 '접속'의 경험 이다. 자본주의가 확립된 뒤로 자본주의에 특유한 생산 방식인 '분업' 또한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면서 점차 지배적 생산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에 그치지 않고 학문 세계에까지 영향을 줘버린 것이었다. 원래 플라톤이 말했듯이 학문이란 나뉨이 없는 것인데 그 분업의 영향 때문에 학문은 지나치게 갈라지고 세분화되어서 덕택에 이전에 없었던 각종 학문들이 생겨났지만 서로간에 소통은 없는 상황이 닥쳐오고 말았다. 그래서 서로가 저마다 쌓아올린 상아탑에 갇혀 나홀로 떠드는 아우성만 있을 뿐, 서로 협력하기 보다는 그저 타인의 몰이해를 탓하며 비난과 공격만을 일삼아 함께 했다면 더욱 발전했었을 학문은 소통 부재와 분쟁에 그만 발목을 잡혀 정체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학문을 이 같은 늪에서 구해내고자 일찌기 많은 학자들은 학문 서로간의 소통을 호소했는데 바로 김경집의 이 책 역시 그러한 입장 위에 서있다.


 이 책이 전 분야를 망라하게 된 진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인문학이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좁은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보다 널리, 다양한 분야와 상호 교류하면서 '2인 3각' 경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서로 도와가며 같이 보조를 맞춰나가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에 따르면 삶은 인간에게 무엇보다 하나의 총체적 경험으로 다가오는데 세분화된 학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특유한 학문적 경험만을 내세울 뿐으로 그리하여 살아가는데 현실적 도움은 주지 못한다고 한다. 학문은 결코 상아탑에 머무르는 지식이 되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실제 삶에 유익함을 주어야 제대로 된 학문이라 믿는 저자는 때문에 학문이 진정 진짜 삶에 유익함을 줄 수 있게 만드려면 무엇보다 그 총체적 경험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이 무엇보다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인간학은 인문학이며 동시에 인문학은 인간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교양을 함양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인문학을 통해 배운 것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인문학으로 유연해진 사고방식의 덕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며, 인간에 대한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다. 이를 깨우쳐 인격의 도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P. 636 ~ 637)


 말하자면 이 책은 지은이의 이 같은 신념을 하나의 책이라는 물리적 경험으로써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삶과 유리되지 않는 학문, 그냥 공허한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격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학문, 바로 그 인간과 세계 모두에게 지하에 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은 모든 수목과 동물들에게 생명의 젖줄이 되고 있는 '지하수'처럼 끊임없이 생명을 공급하는 인문학이란 어떤 모습인지 보이는 것이다. 입문서라는 한계 때문에 세밀한 붓터치가 아니라 대략적인 스케치에 그치고 만다는 게 참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인문학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체감해 볼 수 있다. 각 분야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인문학의 모습을 보는 건 이 책을 통해 얻게 되는 덤이고 우리가 진짜 깨닫는 것은 지식은 결코 삶과 그리고 인격과 분리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를 참으로 실망시키는 지식인들이 많다. 판사나 의사, 변호사들이 여성들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몰카로 찍는가 하면 유명 대학의 교수씩이나 하는 분들이 지켜야 할 자신의 학문적 신념을 배신하면서까지 정치권과 야합하기도 하고 장관 후보자들은 마치 필수 경력이기라도 하듯 위장전입이나 탈세와 같은 범법의 전력들이 꼭 하나씩은 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지식이라는 건 그저 돈벌이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것도 다 지식이 삶이나 인격과 유리되어 있다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는 탓이 아닐까. 여성학자 조여정이 쓴 '글 읽기와 삶 읽기'라는 책이 있다. 시리즈인데, 그 2권을 보면 우리가 치뤘던 도덕 시험 사례를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지식이 삶 그리고 인격과 분리된 경험을 고착화시켰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예를 들어보자면 흔히들 많이 치뤘던 'O, X' 시험을 통해서다. 그러니까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O'표 하시오.', 혹은 '나쁜 사람에게 'X'표 하시오.' 같은 것들. 그렇게 우리는아주 어릴 때 부터 삶에서 꼭 지켜야 하는 윤리마저 자세한 설명과 실제 경험으로서 알기 보다는 그저 암기라는 주입된 형태로 학습했고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는 윤리를 태연히 위반하는데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머리 따로, 몸 따로'의 프랑켄쉬타인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의 근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른바 드라마 속의 현빈이 말하는 대로 '사회지도층'이라는 인사들이 자신이 배운대로, 익힌대로만 행동해주었더라도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8할은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정말로 예외가 되어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전혀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그 태도에 우리의 비극이 있는 것 같다. 비온 뒤 담쟁이 넝쿨처럼 죽죽 자라나는 그 태도를 더 이상 수수방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책을 벗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인문학이 밥과도 같이 우리 삶에 실제로 아주 많이 도움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왔지만 우리가 정말 여기서 캐내어야 하는 보석은 결코 지식이 삶과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는 신념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보니 인류 역사상 모든 현인들은 무엇보다 현인의 덕목을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삼았다. 오래 살아남은 옛말치고 틀린 말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바로 그 비웃음 속에 우리의 비극마저 잉태되어 있음을 한시바삐 깨달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당장 읽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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