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 퍼펙트 베이비 - 완벽한 아이를 위한 결정적 조건
EBS <퍼펙트 베이비> 제작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현실적으로 육아와 그다지 관계가 없는 나인데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무엇보다 1부에 나오는 이야기가 참으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체질이 다르다. 아무리 많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이들은 전혀 살이 찌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 편으론 아주 적게 음식을 먹는데도 오히려 살이 부적 찌는 사람들도 있다. 뭐,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진짜 말하려는 것은 바로 다음에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유에 대해 과학은 지금까지 대체로 두 가지 이유를 말해왔다. 하나는 유전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이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이렇게 저마다 다르게 된 이유는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 다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라온 환경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퍼펙트 베이비'는 여기에 대해 '제3의 길'을 제시한다. 유전도 환경도 결정적인 인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퍼펙트 베이비'가 내세우는 새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그게 바로 '태아 프로그래밍' 이다. 여기서 태아 프로그래밍이란 말은 임신 중 태아가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태아로 그치지 않고 그 이후의 삶에도 계속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일컫는다. 즉 사람들이 저마다 달라진 데는 바로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아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었고 거기서 무엇을 경험했으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이론은 어떻게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을까? 여기엔 역사적 경험이 단단히 한몫했다. 그러니까 세계 제2차 대전 중 네델란드에서 있었던 일이다. 1940년 겨울, 독일은 네델란드를 침공한다. 하지만 네델란드의 완강한 저항으로 침공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마침 겨울이라 식량이 부족할 것을 예상한 독일은 침공에 힘을 쏟지 않고 네델란드 주위로 단단한 포위망을 형성하여 고립시키고는 그대로 네델란드 굶주리기 작전에 돌입한다. 독일의 계산대로 혹한의 겨울 속에서 네델란드 국민들은 튤립 뿌리까지 먹어가면서 극심한 굶주림의 고통을 당하게 되고 무려 만여명의 네델란드 사람들이 아사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참혹한 역사적 현실이 어떻게 태아 프로그래밍으로 연결된 것일까? 훗날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메디컬센터의 한 여성학자가 당시의 출생 기록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현재 어떻게 되어있을까?'란 호기심에 추적해보니 이 때 태어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만이나 당뇨, 심장질환등 성인병 비율이 유독 높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부모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때 태어난 이들은 부모에게는 없었던 병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어도 다른 자녀들과는 달리 유독 그 때 태어난 이들만이 성인병에 쉽게 걸렸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유전이라 할 수 없었다. 자녀들이 보여준 차이는 자라온 환경이 동일했으므로 환경의 탓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거기에 이유가 있다면 그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태아로서 경험한 극심한 굶주림이 이후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태아 프로그래밍은 그렇게 해서 세상의 전면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실험으로도 밝혀졌다. 임신한 생쥐를 네델란드 굶주리기 작전 상황과 똑같은 조건에 놓고 출산할 때까지 관찰한 것이다. 대조를 위해 역시나 임신한 생쥐를 보통의 상황 속에 놓아두고 서로 비교한 결과 굶주린 상황에 처했던 임신한 생쥐가 낳은 새끼수는 그렇지 않은 생쥐 보다 훨씬 적었고 그 새끼들의 체중 역시도 보통 새끼 생쥐들 보다 적었다. 즉 임신 중 어떤 상태에 있었으냐가 그 이후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보통 굶주린 가운데 태아 시기를 보내면 저체중으로 출산된다고 한다. 하지만 자라면서부터는 이러한 차이가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이 상황이 더 위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체중으로 태어난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에 비해 콜레스트롤은 1,3배, 중성 지방은 1,5배 그리고 내장 지방은 무려 2배나 더 높았다. 즉 그들이 평범하게 태어난 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은 것은 오로지 살찌우기 덕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저체중은 쉽게 비만으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극심한 굶주림을 겪은 태아는 오로지 그 배고픔을 면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된 장기에 대해서만 집중할 뿐 그것과 상관없는 장기는 그냥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아가 내버려두는 가장 대표적인 장기가 바로 '췌장'이다. 췌장은 인슐린을 생산한다. 인슐린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 미처 소화되지 않은 영양소들은 포도당이 되어 미래를 위해 혈액 속에 저장하게 되는데 이 포도당을 분해하여 세포 속으로 잘 스며들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슐린이기 때문이다. 췌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이 인슐린 분비가 어렵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혈액 속에 포도당이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쌓이게 된다. 그러면 포도당이 넘쳐서 소변으로까지 흘러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당뇨'다. 태아적 경험은 이런 메커니즘으로 비만과 당뇨를 불러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바로 그렇게 되도록 선택한 것이 상황이 아니라 태아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태아가 어떤 장기를 더 활발하게 가동시킬 것인가 선택한 것이다. 이는 장기만이 아니다. 여기엔 유전자도 해당된다. POMC란 유전자가 있다. 주로 체내의 지방 세포를 분해하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지방이 분해되지 않고 쌓여 비만에 이르게 된다. 열악한 임신 상황으로 태어난 저체중의 아이들을 조사해보면 공통적으로 바로 이 POMC 유전자 기능이 꺼져있음을 알게 된다. 놀랍게도 굶주린 상황에 처했던 태아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때는 필요없었던 POMC 기능을 꺼버린 탓이다. '아니, 어떻게 그럴수가? 유전자는 어디까지나 타고나는 것인데 어떻게 후천적으로 태아 마음대로 꺼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의문이 당연히 들 것이다. '퍼펙트 베이비'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 유전자의 DNA 정보는 주로 'GATC'라는 네 개의 기호로 코드화 되어 저장되는데, 훗날 이 'C'에서 'CH3', 즉 '메탈기'라는 게 붙어 있는 것과 붙어 있지 않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태어날 때 부터 그리된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처한 환경에 따라 붙어 있거나 떨어지거나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지금까지 우리는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죽을 때까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CH3 존재 덕분에 상황에 따라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변형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의 발견으로 유전자 기능 또한 개체가 얼마든지 임의적으로 스위치를 껐다 켜듯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후성 유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또한 나타나게 되었다. 태아 프로그래밍은 이 후성 유전학의 도움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부모에게 전혀 그런 유전 인자가 없더라도 태아가 어떤 후천적인 상황에 처함에 따라 새로이 유전 인자를 가지게 되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에게 전혀 그런 병력이 없더라도 태아는 걸릴 수 있다. 이렇게 '퍼펙트 베이비'는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그 뿐 아니라, 태아적 경험이 이후의 삶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비록 지금이 극심한 저출산 시대이긴 하지만 정부가 하는대로 그저 무턱대고 출산의 양만 늘릴 것이 아니라 출산의 질을 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임을 요청한다. 임신한 여성과 가정에 대한 정책으로 배려되지 아니하면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증가로 인한 장차 높은 성인병 환자의 급증으로 국가의 의료 부담마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훗날의 부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이제라도 임부와 그 가정들이 보다 편안하고 풍족한 임신 환경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퍼펙트 베이비'는 생각 이상으로 부모와 자식이 끈끈한 연대로 이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한 자녀를 '퍼펙트 베이비'로 만드는 데 있어 그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인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요즘은 점점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소홀히하는 추세가 늘어난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서라도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자각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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