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중국사 1
호승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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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그 가장 좋은 길은 그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역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떤 경험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 어떤 것이 형성되었고 또한 무엇을 지향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까지. 역사란 단적으로 그 나라의 심층을 속속들이 살필 수 있는 나이테와도 같다. 그렇게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인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으로, 전혀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들의 파워는 경제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미 앞으로의 세계 정세 판도가 중국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거세게 나오고 있는 참이다. 이러한 부상과 더불어 중국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늘고 있는 중국 관련 서적의 출판 현황만 봐도 증명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많은 책의 존재는 오히려 우리의 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책을 보아야 할 지 선뜻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히 제안하건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역사를 한 번 들여다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다 들여다보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임을 안다. 하지만 굳이 그 전부를 들여다 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중국을 낳은 것은 어디까지나 청 이후의 근대이므로 그 근대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었던 현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중국학자 조너선 스펜서는 중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그 시작을 청나라에서 찾고 있다. 청대 들어와서 형성되었고 정비된 모든 것이 그대로 지금 중국을 다지는 데 기틀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는 흔히 '사관(史觀)'이라는 말을 듣는다. 독일의 해석학자 딜타이 이후로 역사도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라는 게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사관이란 그 해석에 있어 기준이 되는 일종의 틀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사실을 놓고서도 역사학자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표방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사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이 청대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조너선 스펜서와 전혀 다른 사관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현재 중국을 낳게 한 근원을 어디로 볼까? 난 그런 의문에서 전혀 다른 중국 역사를 말해줄 책을 찾고 있었고 이왕이면 조너선 스펜서와 같은 외부인의 눈이 아니라 그 내부의 눈으로 바라 본 중국을 들려주는 책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게 바로 이번에 나온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라는 책이었다.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호승(1918~2000)이란 사람의 책이다. 호승은 중국공산당의 핵심이론가이지만 중국사학자로 더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핵심이론가라는 그의 약력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사관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조너선 스펜서와 같이 현대 중국의 시작을 청대에서 잡고 있는 것을 비판한다.

 

 소련의 일부 중국사 연구자들은 중국근대사의 기점을 17세기 중엽 청왕조의 건립 시까지 늘려잡고 있다. 이런 시대구분은 한편으론 서구 역사의 시대구분을 중국 역사에 무리하게 대입하는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중국 근대사의 주제를 중국 국내의 민족 모순에 국한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구분 방식은 비과학적이며 따라서 중국역사학계는 단연코 부정해왔다. (p.15)

 

 당시의 소련 중국사 연구자들 역시 호승처럼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적 입장에서 역사를 보아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호승의 말에서 보듯 중국역사학과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눈으로 중국 역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호승의 말은 중국 역사는 어디까지나 그 내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나를 말해준다. 내부의 눈으로 본 중국의 역사란 또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보았을 때 중국의 역사는 어떤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는가? 일단 그것은 시작점이 다르다. 호승을 비롯한 중국 역사학자 내부의 시선들은 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아편 전쟁에서 찾는다.

 

 왜일까? 이건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에서 근대란 어디까지나 봉건이 아닌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어떤 생산 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해왔고 거기서 봉건이란 쉽게 말하면 생산 방식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거기서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민중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것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생산도구와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는데 그게 바로 봉건제도의 핵심이다. 봉건이냐 근대냐의 구분은 민중이 자기 노동을 통해 생산한 것을 전유할 수 있느냐로 구분된다. 청대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청대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편전쟁인가? 그건 아편전쟁으로 서구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탈해 들어오면서 청대가 와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통적으로 군림하던 계급들이 와해되기 시작하면 항상 그것을 대체하는 계급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아편전쟁 이후로 중국에도 신흥계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서구 열강이 가져온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생겨난 자본가계급이었다. 이는 생산의 주요 형태가 소작에서 임금으로 바뀌는 것을 뜻했고 그렇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즉 무산계급이 태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때문에 호승은 아편전쟁을 중국근대사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에서 중국 근대사를 세가지 중요한 기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스스로는 그것을 '혁명 고조기'라고 부르고 있다. 즉 그에게 중국 근대사란 그렇게 나타난 중요한 세 차례의 혁명 고조기를 통한 무산계급과 농민 계급의 역량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게 세 차례의 혁명 고조기를 거쳐 무럭무럭 자라난 민중들의 역량으로 결국은 지금과 같은 사회주의를 이루게 되기까지의 과도기. 그것이 바로 호승이 바라보는 중국의 근대사다. 호승에게 있어 아직 사회주의가 도래하지 못한 중국의 근대사란 반(半)봉건, 반(半)식민의 시대다. 아직 무산계급이 여전히 자신이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봉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수많은 서구 열강에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으니 겉은 나라가 있으나 알맹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식민지의 상태라는 것이다. 진정한 중국의 현대는 오로지 그 반봉건과 반식민을 벗어난 상태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모택봉에 의해 이룩하게 되는 중국 사회주의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입장에서 그 현대로 나아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의 내용대로 하자면 민중의 역량이 강화되었던 기점들인 세 차례의 혁명고조기는 중요한데 그렇다면 그 세 번의 혁명고조기는 과연 무엇일까?

 

 그걸 말해 본다면 이렇다. 제1차 혁명고조기는 1851년에 일어나 무려 15년간 계속된 태평천국의 난이며 제2차 혁명 고조기는 1898년 일어난 무술유신운동과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 그리고 마지막 제3차 혁명고조기는 1905년의 동맹회 설립과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이다. 책은 이 세 차례의 혁명고조기에 무엇이 일어났던가를 보다 세밀하게 밝혀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이 책은 주로 네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중 1부에 해당하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까지의 부분은 아편전쟁이 일어난 당시의 중국 정치와 경제 상황과 그 전쟁으로 중국 내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밝혀 점차 혁명의 주요 주체가 되는 무산계급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역량을 강화해나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이 시기엔 무엇보다 태평천국을 일으킨 핵심 계층이기도 했던 농민들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당시의 무산계급은 아직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해 그 빈자리를 전통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농민 계급이 떠맡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한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봉건의 성격이 강했던 청 왕조는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하고 내부적으로는 점점 성장하는 민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회유책으로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이권을 노리고 달려드는 열강의 강요로 체제 변화에 나서게 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태평천국의 난으로 발아되었던 씨앗은 더 크게 성장하여 결국은 또 한 번의 농민들이 주축이 된 혁명운동인 '의화단' 흥기를 낳게 만든다. 의화단 흥기는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동학과 닮은 점이 눈에 띄는데 동학이 동학이란 종교가 그 바탕이 되었듯이 의화단 역시 '백련교'라는 종교가 바탕이 되었고 또한 동학혁명운동이 당시 농민에 대한 수탈과 학정으로 대변되는 봉건제도에 대한 반발과 일본에 대한 반제국주의 운동 모두가 합쳐진 것이었듯이 '의화단' 흥기 역시 두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의화단이 이토록 커다랗게 흥기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격심해지고 있는 서구 열강에 대한 반발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식민지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그 상황상 민족 해방 운동과 겹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중국도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학이 결국은 일본에 의해 좌절되었듯이 의화단 흥기 역시 이미 들어와있던 열강의 연합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동학과 의화단 모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 운동이었고 거의 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버리고 말았는데 이로써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농민혁명의 한계를 보게된다. 물론 여기의 실패에는 열강의 막강한 군사력이 단단히 한몫하긴 했지만 동학의 우금치 전투에서 보듯 전략과 전술에 따른 일사분란한 대응이 없었던 것도 분명 그 대패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혁명의 역량을 결집하고 나아갈 방향을 일사분란하게 정해주는, 머리와 같은 하나의 선도적 존재의 필요성이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호승은 제2차 혁명 고조기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그들을 제대로 이끌어줄 선도적 조직, 즉 중국 공산당의 필요성이었다고 말한다. 제3차 혁명고조기는 바로 그와 같은 중국공산당의 형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이다. 선도적 조직의 중요성은 상황 탓이다. 이제 중국 민중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청 왕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막강한 제국주의 세력들인 것이다. 강한 적을 상대할수록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건 적은 역량이나마 제대로 쓰여야 할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관리와 결집이다. 그래서 선도적 조직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 시기 중국도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자각에서 중국 지식인들이 중심이된 동맹회가 1905년 결성된다. 말하자면 종국에는 중국공산당에 이르고말 그 일보라 할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결정적으로 청왕조를 무너뜨릴 신해혁명으로 이르게 된다. 결정적인 탈봉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중요한 내용만 발췌하여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주로 이 책이 어떤 내용의 책인지 알려주는데 중점을 두고 설명해 봤는데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호승의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이런 사관 위에서 중국 근대사를 집대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방대한 분량만큼 내용은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아주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논지가 확고한만큼 중언부언없이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 호승이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주장한 세차례 혁명 고조기를 기준으로 중국 근대사를 보는 방법은 이 덕분에 중국 역사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았다고 하니 그것만봐도 여기에 투영한 그의 논지가 얼마나 선명한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적 입장이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호불호가 있을지 몰라도 중국근대사를 헤아리게 해주는데 있어 이만한 안내서는 또 없다고 생각된다. 중국근대사는 오늘날의 중국을 근본적으로 형성한만큼 중국을 알기위해서는 보아두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인데 그를 위해서라면 이 책 역시도 그만큼 필독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적 역사관은 중국 사회주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도록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지배적 창구가 되어왔고 그만큼 다져진 내실과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보다 깊이 이해함에 있어서는 보다 다양한 관점들을 두루 보는 것만큼 더 좋은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런 관점의 역사도 한번쯤 보아두면 어떨까 싶다. 더구나 이 책은 굳이 그런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중국 근대사에 대한 아주 상세하고도 충실한 설명을 담고 있으니 중국 근대사를 비행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항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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