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르 1 : 하이에나의 숨결 로트르 1
피에르 보테로 지음, 이세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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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판타지 문학만을 전문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소담출판사에서 이번에 내놓은 '로트르'라는 작품은 몇 년 전 '에윌란의 모험'으로 국내에 소개된 피에르 보테로의 신작이다. 작가는 2009년 11월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아깝게 사망했는데 그러니까 '로트르'는 그의 유작인 셈이다. 유작이라서 그런지 왠지 페이지가 더욱 허투르 넘어가지 않는다. '로트르'의 기본 얼개는 전작 '에윌란의 모험'과 유사하다. '에윌란의 모험'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진짜 비밀을 깨닫고 모험의 여정을 나서는 것처럼 '로트르' 역시도 그러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나탕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이질(異質)의 감각 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 이질의 감각이 너무도 심해서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조차 못했는데,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집의 화재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요행히 목숨을 건진 나탕은 정말로 자신이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보통 사람 이상의 특별한 능력으로 세계를 암묵적으로 이끌어왔던 '파미유'라는 존재라는 걸. 부모님 역시 자신과 같은 '파미유' 였으며 그들의 능력이 고루 자신에게 전해졌다는 것 또한. 그 능력으로 알고보니 부모님은 수상한 존재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도피한다. 그러다 같은 파미유인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의 인도로 샤에라는 소녀를 만난다. 샤에는 나탕보다 더 이질적인 존재였다. 왜냐하면 나탕은 그저 감각만이 이질이었는데 샤에는 아예 육체 자체가 이질이기 때문이다. 샤에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변해버렸다. 그것도 거대한 하이에나로.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파미유'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각자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일곱개의 파미유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탕의 할아버지 앙통은 그러한 파미유에 대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바르트가 너에게 파미유마다 고유한 능력을 타고난다는 얘기는 했을 게다. 바티쇠르(짓는 자), 메타모르프(변신하는 자), 게리쇠르(치유하는 자), 네 어미의 파미유인 음네지크(기억하는 자), 스콜리아스트(주해하는 자), 그리고 우리 코지스트(생각하는 자)가 있단다."

  "그러면 모두 여섯뿐인데요."

  나탕이 지적했다.

  "일곱번째 파미유는 사실 파미유 반열에 오를 자격이 없어. 약하고 비겁하지. 가장 먼저 망조가 든 것도 그 파미유였고. 자기들은 가소롭게 기드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다만."(p. 199) 

 

 앙통의 말투가 가진 뉘앙스에도 드러나듯이 이 일곱 개의 파미유들은 같은 존재지만 함께 협력하지는 않는다. 각자가 가진 능력이 저마다 최고라며 오히려 반목한다. 나탕의 아버지가 파미유임을 포기하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파미유들은 절대 능력이 다른 파미유와 결혼해서는 안되는데 코지스트인 아버지가 그 반대를 무릎쓰고 음네지크인 어머니와 결혼하는 바람에 코지스트의 최고 수장이기도 한 나탕의 할아버지 앙통에 의해 파문을 당해 그리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질적인 육체의 샤에도 파미유라는 것이 밝혀진다. 바로 변신하는 자, 메타모르프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파미유들을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코지스트는 이 샤에를 메타모르프가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보낸 스파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심문하기 위해 감금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지만 이미 사랑을 느껴버린 나탕은 샤에를 구해내고 자신을 샤에와 만나게 해 준, 결국 '기드'라는 파미유로 정체가 밝혀진 인물의 도움을 받아 코지스트의 추적을 피해 숨는다. 그리고 그 기드에게서 봉인되었던 악의 존재 로트르가 풀려났으며 자신과 샤에만이 로토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1권까지의 이야기 인데('로트르'는 모두 3권으로 이루어져있다. 발간은 첫 권만 되었다.) 얼른 보아서도 이 이야기가 사실은 지금  유럽에서 거세게 불붙고 있는 인종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트르'는 2009년에 프랑스에서 발간되었고, 차별을 받아오던 이민자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창 폭동을 일으켰던 무렵에 쓰여졌다.)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전작 '에윌란의 모험'과 비록 그 얼개는 비슷하나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두 작품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별한 능력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에서 이것은 입증된다. 즉 '로트르'에서 나오는 특별한 능력들은 '에윌란의 모험'과 달리 프랑스에 존재하는 사회 계층이나 인종의 은유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최하층의 파미유로 경멸을 받는 기드가 사실은 프랑스에 존재하는 이민자 집단을 은유하는 것임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의 이름에서 이것은 바로 드러난다.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전 아저씨를 동네에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요."

  "내 이름은 라피 하디 맘눈 압둘 살람이다. 하지만 날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라피라고 부르지.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p.75)

 

 

  완전히 이슬람의 뉘앙스를 풍기는 이름이 아닌가? 이러한 라피는 사실 샤에보다 더욱 이질적이다. 이질적인 육체를 가진 샤에 조차도 본 적이 없는 존재로 그렇게 아예 사회 전체에 대해서 이질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이 라피를 이민자 집단의 상징과 달리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이 작품 '로트르'는 그렇지 않아도 전직 교사인 피에르 보테로는 이 작품의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프랑스의 가장 커다란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의 프랑스는 어떤가?  그동안의 차별을 더 이상 못견뎌서 이민자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만큼 프랑스는 계층에 따른 차별, 인종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해왔던 사회였다. 그건 소설에서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절대시 했었던 파미유와 판박이였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물론 아니다. 현실에서도 거센 폭동을 불러 일으켰듯이 봉인에서 풀려난 거대 악 '로트르'에 직면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파미유에서 최상층으로서 이 체제가 더없이 굳건하다고 자부했던 코지스트들 조차도 로트르의 위협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즉 차별에 바탕을 둔 사회는 파미유만큼이나 취약하고 불안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달라져야했다. 서로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보듬어안고 존중해야 할 계기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피에르 보테로는 바로 이것을 들려주기 위하여 '로트르'를 쓴 것이다. 정말 소설 속의 '로트르'처럼 파국을 몰고 올지도 모를 미증유의 사태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때문에 '이질성(異質性)'으로 뭉쳐지나 적대가 아닌 사랑과 도움의 동반자적 관계를 이루는 나탕과 샤에 (그리고 라피)가 구원자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로트르는 너희 둘의 핏줄에 여섯 파미유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란다."(p. 276)

 

 다시 말 해, 이들이 보여주는 모든 것이 실은 피에르 보테로가 전하고 싶은 대안인 것이다.

 

 소설은 전작 '에윌란의 모험'이 그랬듯 역시나 흡인력이 굉장하다. 조금 훑어만 보려 했다가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보테로 전하고자 하는 것을 소설적 재미도 놓치지 않고 잘 우려내었다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진 최고의 장점이다. 좀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보고 싶기에 유작이라는 것이 너무도 아쉽다.

 

 '하늘에서 평안히 거하시기를...'  이렇게 뒤늦은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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