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파일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4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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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문학 못지 않은 탄탄한 문장력, 현실감 넘치는 생생한 묘사 그리고 탄탄한 구성력으로 한국 장르 소설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던 'B컷'의 작가 최혁곤의 두 번째 장편이 나왔다. 그게 바로 'B 파일' 이다. 'B컷'이 2006년에 나왔으니 햇수로만 따지자면 7년만에 나온 셈이다. 제목에 꾸준히 B'를 쓰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여기에 어떤 작가적 신념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작품을 읽어보니 역시나 그렇다. 'B 컷'이 남에게 대놓고 공개하기가 꺼려지는 사진을 뜻하는 제목 그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려 'B급' 인생을 살게 된 은퇴한 남자 형사와 여성 킬러를 중심으로 평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를 살아가는 밑바닥의 삶을 조명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B 파일' 역시도, 이번엔 모두 네 명으로, 더욱 사람 수를 불려 'A 급'들만을 위한 룰이 지배하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생존과 진실을 위해 고군분투 하는 'B 급'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렇게 최혁곤에게 'B'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밀린 혹은 내몰린 삶을 뜻하는 말이며 그래서 단적으로 말해 '피해자'를 상징하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그 'B'가 내내 쓰인다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가해자들에게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면서도 목소리마저 빼앗겨 변론과 호소의 말을 할 수 없는 그들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돌려주어 자기 변론과 호소의 장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때문에 두 작품 모두 그러한 인생들의 시점으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B 파일'은 여러모로 'B 컷'과 연속선상에 있다 그래서 사람 수가 늘어난 것처럼 일종의 확장판 느낌도 난다.(무엇보다 이전 작품에서 깜짝 조연이었던 성전환자가 이번엔 주요 인물 네 명중 하나로 전면으로 나섰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풀려진 것일까? 그건 관찰자 시점의 개입이다. 이전의 작품엔 오로지 참여자들만 있었다. 생존에 급급했던 그들은 도대체 자기들이 왜 이런 아귀다툼에 말려든 것인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B 파일'엔 참여자들만 있지 않다. 그들 중 두 명은 냉정히 판이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찰자들인 것이다. 바로 이 시점의 필요 때문에 두 명이 네 명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읽다보면 이 네 명, 그러니까 스포일러 상 밝히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해 'B 파일'로 분류된 조선족 출신이지만 한국에와서 성공한 은행원 리영민, 고참 기자 윤, 성전환을 바라는 킬려 미호 그리고 윤과 같은 신문사 신참 기자인 에스더, 또한 그 관계에 있어 미묘하게 둘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리영민 과 윤' 그리고 '미호 와 에스더' 이렇게 말이다. 이건 그들의 독백을 듣다보면 어쩔 수 없이 공통점이 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리영민과 윤은 성공한 은행원과 고참 기자라는 것에서 드러나듯 킬러와 신참 기자인 미호와 에스더 보다는 위에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상위에 있는데도, 아니면 그 상위에 있기 때문인지, 보여주는 모습은 미호와 에스더보다 지극히 소극적이다. 자신들의 처지 역시 'B 파일' 즉 사회 약자임에도 불구하고(리영민은 차별받는 조선족이고 고참기자 윤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신문사의 핵심에서 밀려나 문화부에서 일한다.) 그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리영민은 같은 조선족 출신의 한국 사회 차별에 대한 불만을 귀찮게 여기고, 고참기자 윤은 여자 신참 기자가 상사에게 무참히 깨지는 광경을 보아도 시집이나 잘 갈 것이지 왜 사서 저런 꼴을 당하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이대로 내 것만 잘 챙기며 평온하게 끝까지 가고 싶다는 '무사안일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는 리영민과 고참기자 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선명하게 부각된다.

 

 먼저 리영민,

 

 누가 뭐래도 한국이 좋았다. 주위에서 악덕 고용주 욕을 해대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그건 시장의 수요, 공급과 관련된 문제다. 어느 체제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 않은가. 그건 민족과는 무관한, 전적으로 개인 능력과 결부시켜 봐야 한다. (P.22)

 

 그리고 고참기자 윤.

 

 내키지 않았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속내를 모르니 당연히 거부감이 앞섰다. 편집국장이 윤의 능력을 신뢰해서 이런 일을 맡길리는 없다. 그렇다면 한가해 보여서? 그 쪽이 맞을 것이다. 저 인간 잣대로 보면 공연 담당 기자는 인터넷에서 긁은 정보와 보도 자료로 짜집기 하고 월급 축내는 종자로 보일 테니(P. 26)

 

 이랬던 그들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픔 따위 '개인의 능력 차이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혹은' 어차피 밀려난 처지에 귀찮게 뭐하러'라는 말로 눈감았던 그들이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의 처지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위와 상황이 보호 장벽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든든해 보였던 안전망이 한 순간에 무너져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리영민과 윤은 한 쌍이다. 리영민은 실제 참여자로서 이 모든 걸 온전히 겪고 윤은 그 직업이 기자인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그것을 관찰한다.(어쩌면 윤 보다 훨씬 높고 안전해 보였던 편집국장이 갑작스런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것은 그가 사실은 리영민과 완전히 같은 존재라는 걸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반면, 그 반대편에 있는 미호와 에스더의 관계는 적극적이다.

 미호는 진짜 여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청부 살인을 하고 그러다 뜻하지 않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되자 오히려 그 대상을 찾아내 복수하려 한다. 아마도 최혁곤 작가는 이 미호라는 이름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신 시티'에 나오는 냉혹한 살인 기계 여자 킬러 '미호'의 이름을 따온 것 같다. 그 미호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집요하게 쫓아가는 인물이 바로 그(혹은 그녀)이다. 그건 신참기자 에스더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재수를 불사하고 기자가 된 것은 자신과 같이 기자였다가 억울하게 좌천당한 아버지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이들은 적극적이다. 그들은 부조리한 현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미호는 못 견뎌하는 남자의 신체를 진짜 여자의 신체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에스더 역시 자기 보다 미모도 수완도 '갑'인 CBS 여성 기자 양미라에게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이 양미라 기자가 너무도 얄밉게 나와서 끝까지 제대로 본 때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쉬웠다.) 더우기 이 에스더란 이름. 이 이름은 성경에서 집단 학살의 운명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한 여인의 이름으로 예로 부터 구원자의 상징과도 같은 이름이 아니던가! 그렇게 바꾸려한다. 모자라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힘으로 말이다. 이렇게 네 명을 둘로 나눈 관계는 차이가 난다.

 

 이러면 그냥 'B 컷'의 구도를 써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네 명으로 늘린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명이 나왔다면 그 중 둘은 다른 역할을 맡았다고 보아야 한다. 즉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의 역할을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직업 역시도 기자가 되었을 것이다. 왜 관찰자가 새삼 여기에 나와야 했던 것일까? 그건 'B 컷'과 대비해 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B 컷'은 참여자들만 있었다. 그래서 생존하기에 급급한 아귀다툼의 현장만 나왔다.(이건 앞에서도 말했다.) 다시 말해  'B 컷'은 현상 뿐이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 진짜 원인을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흔히 전작의 약점으로 지적된 과도한 세태 비판의 개입은 작품의 근본이 참여자들만이 존재하는 게임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성찰을 부여하려다 생긴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작가가 그 약점의 원인을 제대로 인지했고 그래서 성찰적 지점들을 무리없이 통합시키기 위해 따로 이 관찰자 역할들을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이다. 세상은 왜 7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똑같은 아픔이 반복되는가이다.  'B 컷'과 'B 파일'이 애초의 신념 그대로 피해자들의 진정한 변론과 호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반복되는 아픔을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하고 그 대답을 찾아야 한다. 바로 그 과정이 관찰이다. 돌아가는 판세를 보고 그것을 야기하는 회전의 중심축에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여 반복되는 비극의 연쇄를 끊는 것. 그것이 관찰인 것이다. 그러므로  'B 컷'과 대비하면 'B 파일'이 어디에 자리잡는지 곧 드러난다. 말했던 대로 그것은 성찰의 지점이요,  'B 컷'에서 이어지는 아픔의 연원들을 여기에 이르러 선명히 드러내려 한다는 것을. 최혁곤의 'B 파일'은 그러한 작품이다.

 

 이미 3부로 구성된 순서에서 이 작품이 추구하는 것이 드러난다. 3부는 이런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홍콩모텔 -> 2부  민주 일보 -> 3부 원더 랜드  

 

 

 읽어보면 이 순서가 그냥 놓여진 게 아니라 보다 분명한 목적을 두고 배열된 것임을 알게 된다. 또한 여기에서도 이 소설이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는 것이 성찰을 향한 '관찰'임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이 순서가 정확히 우리가 관찰하는 과정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관찰의 과정에 있어 언제나 첫 시작은 대상이다. 먼저 대상이 놓여져 있어야 관찰은 시작될 수 있다. 그렇게 살해된 한 여성의 시체로 시작을 여는 홍콩모텔은 죽음과 누명의 장소로 'B 컷'의 게임판이며 연이어 등장하는 'B급'으로 밀려난 네 명, 그 어느 누구도 살이의 피로와 아픔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진정 관찰을 위해 놓여진 대상인 것이다. 현상이 개화되면 관찰이 시작된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가늠해간다. 그게 바로 2부 민주일보의 과정이다. 아예 윤과 에스더가 일하는 신문사 이름을 제목으로 명기하여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관찰의 끝엔 결론이 있다. 파악한 원인을 통한 해명이 있다. 3부 원더랜드가 그렇다. 거기서 궁극적으로 이 모든 아픔들의 원인이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이 밝혀진다. 그렇게 이 소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이 밑바닥의 삶들이 이토록 힘든 이유는 당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지 않고 위로 부터 부과되어 온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피해자다. 그것도 자신들에게 아무런 원인이 없기에 아주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피해자. 제목 'B 파일'은 그것의 상징과도 같다. 누군가가 분류한 파일엔 'A 파일'과 'B 파일'이 있다. 'A 파일'은 지금은 미약하나 나중에 키워서 써 먹을 수 있는 존재들의 것이고  'B 파일'은 죽음조차 써먹을데가 없는 잉여인간들의 것이다. 하지만 최혁곤 작가가 내놓고자 하는 원인은 이 분류된 파일에 있지 않다. 그가 원인으로 제시하고 싶은 보다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이 파일 자체에 담겨진 사람들을 보는 시각이다.

 

 'A 파일'이든 'B 파일'이든, 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을 보는 시각은 똑같다. 그것은 사람을 사람이 아닌 이용 가능한 수단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이 목록에 오른 사람들의 존재 가치는 분류한 자에게 있어 도구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래서 쓸모가 없으면 쉽게 버린다. 그 누군가 중의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 없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충견을 원했는데... (P. 394)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위에 있는 자들이 아래에 있는 자들을 오로지 이와 같은 시각으로만 보고 있기에 우리의 현실은 이리도 '홍콩모텔'과 같은 느닷없는 추락,고통 그리고 죽음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왜 네 명 중 두 명인 리영민과 윤을 하필이면 보다 상층의 존재로 설정했는지 드러난다. 편집국장이나 양미라의 삼촌이 되는, 현재 잘나가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지위나 직업이 자신을 보호해 줄 튼튼한 장벽이라 여겼지만 보다 더 권력과 힘을 가진 자들이 한 번 움직이자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이 한 번의 파도에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모래성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로써 최혁곤 작가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탄탄한 안정은 부질없는 꿈이라고 말한다. 경찰 서장이 무심코 술김에 한 말 때문에 결국 옷을 벗게 되는 소설 속 장면처럼 말이다. 마치 천라지망처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항구적 불안. 바로 그것이 도래된 연유에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시각이 있다고 그는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지 않을까? 과연 우리는 자신할 수 있을까? 사업가들이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공장주들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국 노동자와 조선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면 성적 소수자와 같이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는 나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을 바라볼 때의 시각이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러고 보면 다른 두 명, 즉 미호와 에스더는 리영민이나 윤과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일단 미호는 존재 자체가 경계 위에 있다. 그는 남자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한다. 즉 태어난 것과 전혀 다른 타자적 신체를 받아들이려 하는 존재인 것이다.(이 때문에 궁극적으로 이 작품에 와서 전면에 등장한 것도 3부에서 제시한 저 시각에 어떤 대안 같은 것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비단 미호의 신체만이 아니다. 그/그녀가 걸어온 길 또한 그렇다. 그/그녀를 결국 킬러에 이르게 했던 살인들은 모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 결과였다. 그렇게 그/그녀는 타인을 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존재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로 보는 자였다. 이는 에스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경찰서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할머니를 무심코 지나치지 못하며 결국 할머니와 시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이렇게 미호와 에스더는 모두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자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아픔을 유발시키고 있는 현재의 근원적 시각으로 부터 모두를 치유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대안적인 시각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이 소설에서 유일한 구원자적 존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만큼이나 이야기했으니 이 소설이 내게 나무랄 데 없었다는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3부다. 미호와 에스더를 이리도 정성껏 구원자적 존재로 설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발력이 없다는 게 참 아쉽다. 몰입도도 좋고 이야기를 차츰 절정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좋아서 풍선처럼 한 번 거세게 폭발할 순간만을 기다리며 잔뜩 부풀리고 있는데 톡 터뜨려 주기는 커녕 그냥 입구를 더욱 묶어 버리니 뒷 맛이 영 개운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미호의, 그 이름의 진짜 주인이 되는 '신 시티'의 미호만큼이나  무자비한 복수신을 기대했는데 나오지 않아서 더욱 아쉬웠다. 이렇게 끝내기엔 그동안 죽은 사람들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최혁곤 작가의 잠자리가 과연 편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혹시 꿈마다 소설에서 죽은 원혼들이 '내 생명 돌리도~'하고 나오는 것은 아닐지. 뭐, 그만큼 아쉽다는 얘기다. 어쩌면 이것은 현실적 결말을 추구한 결과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현직 기자이다 보니(그는 현재 경향신문 기자다. 소설 속의 기자 묘사 장면들이 더없이 현실감 넘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다. 통화중 녹음 기능이 안되어 기자들은 아이폰을 이용하지 않는다든지, 수습 기자 때 경찰서를 돌아다니는 것을 마와리(일본말이다.)라고 부른다든지, 경찰서 기자실이나 편집실의 모습 같은 이런 저런 기자 생활의 디테일한 면면들은 이 책을 읽으며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자잘한 재미들이다.) 장르적 쾌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마무리지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만일 그랬다면 3부 부분을 더욱 늘려야했지 않았나 싶다. 인물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정리되는 느낌이 있다. 더구나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죽음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것도 의아하다. 다들 너무도 쉽게 납득해 버리는데 그런 행동들이 거기까지 공들여 설정해 놓은 것에 비추어 볼 때 너무 모순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화끈하게 폭발시켜 버렸으면 하고 자꾸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같은 B 파일의 존재로서 동병상련을 느꼈던 우리의 답답한 마음도 그와함께 휘발되어 버렸을 테니까...

 

 이런 저런 약점은 있지만 그래도 결론지어 말하자면 앞에서 죽 이야기 한 대로 그 속만은 꽉 차 있는 좋은 작품이다. 깊이도 재미도(뒷 부분이 많이 아쉽긴 하지만) 한국 장르 소설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아갔구나 하고 새삼 감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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