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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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확실히 2000년의 9.11 이 미국 문화 전반에 가한 충격은 대단했다. 포스트 9.11 이란 말이 어느새 비평계의 용어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미국의 문화, 그것도 영화나 장르 소설을 비롯한 대중 문화는 분명히 9.11 의 전과 후로 그 경계가 나뉘게 되었다. 다시 말해 9. 11의 이후에 미국에서 생산된 대중 문화의 산물들은 그 영향으로 부터 달아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즉 9. 11 은 문자그대로 트라우마였다.

 

 그것이 트라우마라는 징후를 보이고 있음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개인적으로 슈퍼 히어로 최고의 걸작으로 생각하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2'와 '다크나이트'는 9. 11의 강박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들이 영웅으로 겪는 곤경과 지게 되는 책임은 9. 11 이후의 미국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서의 대안에 대한 간접화법이기도 했다. 그건 소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폴 오스터는 최근에 나온 '보이지 않는'이란 소설에서 9. 11이 안겨준 상실과 고통을 과거의 회고를 통해 그 원인의 궤적을 복기해 봄으로써 치유의 통로를 찾는다. 이렇게 과거로의 회귀는 포스트 9. 11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라 할만한데 바로 이것이 트라우마를 가진 자의 증상이라서 흥미를 끈다.

 

 트라우마는 절대 치유되지 않는 상처이며 지워질 수 없는 얼룩이다. 그것은 불현듯 엄습해서 현실을 뒤흔들어버리는 그저 압도될 수 밖에 없는 아픔이다. 그 환기되는 아픔을 통해 트라우마는 현재라는 시간 자체를 정지시키고 당하는 주체를 늘 과거로 되돌린다. 그는 그 연장된 과거의 시간에서 도저히 달아날 수 없다. 그렇게 그는 현재를 살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현재란 단순한 환영에 불과하고 정말로 그가 살아가는 건 영원한 과거일 뿐이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압도이며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몰입이다. 바로 이와 똑같이 과거에서 그 원인을 되새겨보려는 소설들 역시도 과거로 돌아가는 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건 필연이요 숙명이며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 비슷하게 묘사된다. 9. 11 의 트라우마성은 이러한 유사성에서 더욱 확증된다.

 

 폴 오스터 만큼 9 .11을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스티븐 킹이다. 2000년 이후에 나오는 그의 소설들의 중심엔 무엇보다 9.11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그의 모든 소설들은 9. 11 에 대한 이러저러한 사유의 지점들을 나타낸다. '셀'은 그만큼 똑같은 공황과 미국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9. 11의 은유이며 그걸 보다 공동체 중심의 시야로 넓혀 살펴보려 했던 것이 '언더 더 돔'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뇌리에 그야말로 9 . 11 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음을 뚜렷이 드러내는 작품은 바로 2008년에 나온 단편집, '해가 저문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이나 그 후엔 은유나 비유로 삽입되었던 9 .11 이 이 단편집에서만큼은 그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첫 단편 '윌라' 부터 마지막 단편 '선셋노트'까지 거기서 스티븐 킹이 이야기 하는 것은 9 .11 이 우리에게 무엇이었고 우린 그것으로 인해 어떻게 바뀌었으며 이제 그 상처와 상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야말로 정신분석가 앞에서 자신의 트라우마와 그것과 더불어 사는 현재의 모습이 어떠한지 담담히 고백하는 단편집인 것이다.

 

 이 '해가 저문 이후'에서 스티븐 킹은 9.11을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할 말을 거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재의 아픔을 술회한 끝에 찾아오는 것은 이제 완전한 치유를 위해 그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다. 폴 오스터 역시도 그랬다.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보이지 않는'는 이전 두 작품에서 현재 진행중인 상처와 상실을 충분히 드러낸 뒤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스티븐 킹도 그와 동일한 궤적을 보여준다. 그렇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현재의 상처를 객관화하여 온전한 치유의 대안은 무엇인지 탐색하는 작품이 바로 2011년에 나온 '11 / 22 / 63'인 것이다.

 

 

 제목의 '11 / 22 / 63' 은 존 F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오스왈드에 의해 피살당한 날이다. 모든 미국인들이 미국의 꿈이 죽어버린 날로 기억하는, 한마디로 대참사의 날이다. 제목이 이렇게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날로 된 것은 바로 소설의 이야기가 어떤 특정의 공간이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한다는 걸 알게 된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미국 역사가 이토록 암울하게 흘러가게 되어버린 결정적인 날이라 여겨지는 1963년 11월 22일에 일어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즉 단적으로 말해 '과거로 돌아가 역사의 비극을 막는다'는 이 이야기는 그대로 폴 오스터가 '보이지 않는'에서 보여주는 것과 동일하다. 그러니까 여기서 존 에프 케네디의 죽음을 막는다는 것은 사실 9. 11을 막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스티븐 킹은 '해가 저문 이후'의 후기에서 존 에프 케네디의 암살을  9. 11 만큼이나 미국 역사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비극으로 꼽았었다. 스티븐 킹에게 존 에프 케네디 암살은 9. 11과 그 역사적 중요성에 있어서 동의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1/ 22 / 63'을 단순히 시간 여행자를 그린 소설이 아닌 '해가 저문 이후'에서 9 . 11이 남긴 현재적 상처들을 숨김없이 토해낸 스티븐 킹이 이제 그 아픔에서 어느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 지금의 비극을 야기한 원인들을 되짚어 보고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이것이 케네디의 암살을 막는다는 것의 궁극적인 의미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가능한 대안을 탐색하는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 이건 그저 구원의 도래만을 바랐던 그가('해가 저문 이후'에 일률적으로 흐르는 인물의 수동성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남긴 것들'과 'N'은 그 성향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단편들이다.) 이제 스스로 일어나 그 구원의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과도 같다. 그래서 시간 여행이 하나의 공간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스티븐 킹은 설정한 것이다. 스스로 먼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주인공이 과거를 왜 고치려 하는가? 그리고 끈질기게 과거가 수정당하는 것을 막으려는 불가사의한 힘은 무엇인가? 과연 지울 수 없는 과거의 비극은 현재적 노력으로 봉합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등등의 작품을 읽는 사이 떠오르는 의문들 하나하나는 그대로 다시는 9 . 11이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거대한 물음들의 조각들이며 이에 ' 11 / 22 / 63'이 보여주는 여정은 바로 그에 대한 스티븐 킹의 응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소설은 그야말로 '사유의 네트워크' 라 할 수 있다. 여행의 풍경이 그저 객관적인 풍경이 아니라 사실은 나라는 주체와 풍경이라는 객체과 만나 어우러진 일종의 감성적 혼합물이듯 그대로 사유속의 여정이라 할만한 소설을 읽는다는 것 역시도 우리가 읽게 되는 건 온전히 그대로 스티븐 킹만의 사유인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들어 끊임없이 간섭하고 단락시키며 또는 수긍하거나 배척하는 우리네 사유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얼기설기 엮어진 테피스트리적 혼합물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자극되며 반성되고 성찰로 나아가는 소화의 과정을 스티븐 킹과 더불어 마치 '2인 3각'을 하듯이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들뢰즈가 고백했던 것. 그러니까 자신을 두고 뻐꾸기 처럼 남의 등에 달라붙어 기생하면서 사유를 살찌운다고 했던 것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스티븐 킹의 등에 달라붙어  우리에겐 어쩌면 강건너 불구경일 수 있었겠지만 미국 역사에 있어서는 일대 터닝포인트가 되어버린 '9 . 11' 이 정작 당사자인 미국인들에겐 어떤 것을 남겼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현재적 아픔을 통해 어떤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지를 그 사유의 흐름을 통해 알게되고 보다 우리 내면의 폭을 살찌우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이 소설을 추천한다면 바로 이 점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소설에서 더욱 성숙해진 스티븐 킹은 분명 이것을 보다 확실하게 보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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