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2011년에 나온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은 지금까지 보여준 우타노 쇼고 월드에 있어서는 다소 UFO와도 같은 작품이다. 라고 말하면 의미가 오리무중해질테니 더욱 알송달송하기 짝이 없는 우타노 쇼고 월드라는 말에 대해서 먼저 밝혀보자. 개인적으로 우타노 쇼고 작품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 내 관심의 더듬이가 향하는 쪽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꽤나 호불호가 갈리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나 '여왕님과 나' 같은 작품들. 물론 여기엔 그에게 또 한 번에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안겨 준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도 포함된다.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바로 이 작품들이야말로 여타의 다른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과 구별되는 우타노 쇼고만의 독보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우타노 쇼고의 독특성은 그야말로 현재 일본을 바라보는 일종의 필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왜 그런가? 단적으로 현재 우타노 쇼고가 밀어붙이고 있는 작품들에 내재된 세계관이 그야말로 아즈마 히로키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 잘 보여준 일본 특유의 포스트 모던적 특성을 마치 복제라도 하듯 충실히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밀실살인게임' 은 그러한 경향이 가장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밀실살인게임'과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을 같이 놓고 보면 우타노 쇼고가 현재 구축하고 있는 '월드'의 '코어'가 무엇인지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즈마 히로키의 그 책은 무엇보다 문화에 대한 오타쿠적 소비 방식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다. 히로키는 그 방식에 현재 일본의 포스트모던한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생각했다. 정보의 생산 보다는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에 얼마나 많이 저장할 수 있는가가 더 의미있는 시대. 현실에 통용되는 규칙과 가치 보다 오히려 가상 세계의 규칙과 가치가 더 우월한 시대(이를테면 미소녀 게임에 등장하는 히로인과 얼마든지 실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리하여 더이상 전통 근대의 사유 방식으로는 규명할 수 없는 그들의 사고 방식과 소비를 히로키는 과감히 '포스트 모던'이라 불렀고 그것은 또한 일본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에도 시대에 대한 강한 향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여기에 대해서는 미야베 미유키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앞으로 일본은 날로 보수화되어 갈 것이라 전망했다. 그리고 그 전망대로 우리는 일본 보수의 끝판왕을 현재 보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말한 우타노 쇼고의 작품들은 히로키가 말한 특성들을 마치 아주 푹 고아놓은 사골 국물처럼 잘 우려내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면 아즈마 히로키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 일본 포스트모던에 있어 총론이라면 우타노 쇼고는 그것을 현실적으로 응용한 각론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우타노 쇼고 앞에 흔히 잘 붙는 수식어는 '반전'이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벗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가 보여준 막강한 반전 때문에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에 브라이언 싱어가 그랬듯이, '식스 센스' 이후에 나이트 샤말란이 그랬듯이 '반전'이란 말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아무래도 독자의 지갑을 열게 하는데 더욱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장르 소설가이다 보니 스스로도 자신에게 붙어버린 라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들듯이 아예 그 반전을 스스로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말았다.
그러한 유희로서의 반전을 보여준 첫 작품이 내 생각엔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 아닐까 싶다.(일본 원전을 읽을 수 없는 관계로 번역판만 기준으로 한 생각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한 페이지가 멀다 하고 반전을 선사한다. 혼자만의 상상인가 싶으면 현실이고 현실인가 싶으면 상상인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소설은 '리얼한 것'으로 부터 점점 멀어져 오로지 유희만이 존재하는 게임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제목인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은 그야말로 적합해 보인다. 현실적인 것으로써의 '세상의 끝'이자 현실의 원칙 따위 우습게 무시하는 '게임'으로서의 시작이니까 말이다. 더구나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은 일본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1988년에서 1989년까지 모두 네 명의 여자 아이들을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의 사건 을 바탕으로 쓴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 범죄 때문에 이것이 히로키가 말하는 오타쿠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적 구현의 첫 시작이라는 점이 더욱 확증된다. 바로 그 미야자키 쓰토무는 무려 5천장이 넘는 호러 비디오를 소장한 이른바 호러 오타쿠로 그 호러 비디오 때문에 그런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거센 여론이 일어나 오타쿠라는 존재가 처음으로 일본 사회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타노 쇼고는 반전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 혹은 집착이 게임적 유희와 같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또한 오타쿠적 문화 소비와 연결된다고 보아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것이 시작이었던 듯, 그는 그것을 더욱 밀어붙인다. '세상의 끝'이 던져버린 것은 오로지 현실과 가상의 명확한 구분이라는 규칙이었으나 '여왕님과 나'에서 던져버린 것은 아예 누구나 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물론 일본 사회에서 실제 일어난 충격적인 범죄가 영향을 미쳤다. 바로 2004년에 일어난 나가사키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소녀가 같은 반 친구인 여학생을 커터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는 범인이 초등학생 여자아이라는 점과 범죄 장소가 초등학교라는 점에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한 마디로 어른들이 지금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인지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계관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움직이는 낯선 존재. 그렇게 우타노 쇼고는 그 사건 역시 그 전 사건과 일련의 연속성이 있다고 보았고 그렇게 완전히 달라져 버린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한 세대라는 점까지 반영하기 위하여 '여왕님과 나'를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밀실살인게임'은 이런 경향 속에서 이해해야만 왜 우타노 쇼고가 그렇게 썼는지, 그게 단지 팔릴만한 작품을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게 이해된다.
아무튼 쇼고는 그렇게 달려왔다. 그런 식으로 스타워즈에서 제국군이 '데쓰 스타'를 만들듯이 자신만의 월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2011년. 이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이 나왔다.
그런데 다르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보여 준 우타노 쇼고 월드와 노선을 같이 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더 이상의 유희가 없다. 작품은 '벗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의 편집자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해 쓴 것이지만 이 작품의 모델은 그것이 아니다. 사실 이 작품은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의 자기장 안에 있다. 무모하게 말한다면 그 작품을 일종의 리메이크라고도 할 만 하다. 주인공의 상황, 성격 그리고 전개에 있어서 유사한 점이 많이 눈에 띈다. 그래서 마치 그가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주었던 그 때로 다시 돌아가 새로이 시작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래, 이왕에 호기를 부려 본 거 나도 '여왕님과 나'를 쓸 때의 우타노 쇼고처럼 끝까지 가 보자. 그래서 단정지어 말하자. 이것은 결별이라고. 뒤이어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지금까지 보여준 우타노 쇼고 월드로 부터의 명백한 이탈이라고 말이다.
'세상의 끝 혹은 시작'이 무수한 반전들로 채워졌듯이 이 작품 또한 무수한 반전들로 채워진다. 후반에 커다란 반전들이 나온다고 해서 이 작품이 오로지 그것을 위해 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것은 일종의 크레셴도에 불과할 뿐 반전들은 작품 전반에 걸쳐 내내 등장한다. 그건 또 하나의 주요 배역이라 할만한 스에나가 마스미의 용모(주인공 히라타는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중년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20대였다.)에도 있고 동료직원들이 그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히라타가 마스미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원조교제 같은 것이 아니냐고 놀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뒤에 히라타가 여고생과 데이트를 하면서 이것저것 원하는 대로 사주는 장면이 나와 '뭐야 히라타 그런 사람이었어' 하는 순간 알고보니 아내의 여동생 딸로 밝혀지는 순간에도 있다. 이런 식의 보이는 것과 드러나는 반전의 진실들이 봄날 대나무 밭에 이리저리 돋아나는 죽순들처럼 곳곳에 산개해 있는데 이로써 느끼게 되는 건 여기의 반전들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희로써의 반전이 아니라 삶에 대한 어떤 통찰을 매개하는 것으로써의 반전. 다시 말해,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유명한 첫 문장처럼 삶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고 깊은 속내를 감춰두고 있다는 것을 우타노 쇼고는 반전을 통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에서 우타노 쇼고는 유희에 천착하느라 방기해 버렸던 삶을 다시금 껴안으려 하고 있었다. 환상이 아닌 현실, 도피가 아닌 책임. 그것이 다시금 그 옛날의 터닝 포인트로 돌아간 우타노 쇼고가 다시금 보여주려는 핵심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타노 쇼고는 작품에서 받게 되는 인상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현실과 연동하는 작가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하게 된 계기도 역시 현실로 부터 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건 이 책의 발간 연도를 생각하면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일본 국민들이 과연 그 해를 잊을 수 있을까? 미국인들이 9.11 때문에 절대로 2001년을 잊을 수 없듯이 일본 국민 역시 2011년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그 해 일본 역시도 9.11에 맞먹는 비극을 겪었으니까 말이다. 미국에게 9. 11이 있다면 일본에는 3. 11이 있다.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이 일으킨 비극의 날이. 똑같이 11일에 일어났다는 것이 왠지 모골마저 송연해지는 이 비극 앞에서 향후 미국 문학이 위안과 연대로 나아갔듯이 똑같은 아픔을 가져버린 일본 문학도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타노 쇼고 역시도 그 3.11 때문에 이같은 변화가 생겨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3. 11 이후의 일본 문학이 9. 11 이후의 미국 문학과 비슷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음은 이전에도 여러 징후가 있었다. 무엇보다 미나토 가나에의 변화가 그랬고 국내에 발간된 비교적 최근의 일본 문학들에서도 그런 특성은 현저하게 드러났었다. 무엇보다 2012년에 방영된 미나토 가나에의 속죄를 원작으로 한 구로자와 기요시 감독의 동명 5부작 드라마는 3. 11 이후의 일본 문학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자성에 대한 촉구였고 삶이 타자와 결부되어 있음에 더욱 눈과 귀를 기울이려는 흐름이었다. 거기에 지극히 현실과 동떨어진, 오히려 현실 보다 더 우위의 가상 게임에 천착하던 우타노 쇼고 역시 참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놀라웠다. 이것이 과연 '여왕님과 나' 그리고 '밀실살인게임'으로 이어졌듯이 또 하나의 연속된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을지 아니면 그냥 한 번 던져본 변화구에 불과할지 그건 아직 모르겠다. 현재의 일본 문학이 보여주는 자성의 기운이 갑자기 뒤덮게 된 우익의 장막 아래서 어떻게 그 생명을 이어갈지 궁금한 것과 똑같이 우타노 쇼고가 보여 줄 다음의 행보 역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