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철학하기 - 낯익은 세상을 낯설게 바꾸는 101가지 철학 체험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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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생각만해도 왠지 벌써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고 마음이 부담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철학.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꼭 한 번 벗해야 한다고 현인들은 말씀해 오셨지만 살아보니 일부러 그런 복잡한 생각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길을 가다 아주 예뻐보이는 철학책들이 내 옷깃을 부여잡아도  '도를 아십니까' 묻는 사람들을 피하듯  일찌감치 무시하고 그냥 지나치기 바빴던 철학...

 

 하지만...

삶이 예상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거나 예기치 않았던 삶이 준비한 반전을 맞이하다 보면 도대체 사는 것의 의미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날이 사소한 불운들과 커다란 불행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겪다보면 도대체 이 모든 것들에 의미는 있기는 할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만 생각하는 삶은 근시안적이다. 그 때 그 때 닥친 일들을 헤치울 수 있을 뿐 보다 높은 곳에서 멀리 헤아리게 하지는 못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철학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부담스럽다. 뭔가 쉽게 철학이라는 것을 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라면 좋겠는데....

 

그런 당신을 위해 툭 떨어진 책...

 

 

 

 

 

 

 

 그것이 바로 로제 폴 드르와의 '일상에서 철학하기'이다.

 

 프랑스의 국제철학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에 관련된 책을 펴냈는데 그 철학책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철학을 난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알고보면 철학이란 그렇게 어렵지 않고 현실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으며 현실을 보다 더 생생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이는 로제 폴 드르와가 항상 책을 쓸 때 염두에 두는 점이기도 한데 그렇게 한결같이 이어져 온 로제 폴 드르와의 주제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난 책이 바로 이번에 나온 '일상에서 철학하기'이다.

 

 

 웃! 왠지 제목에서 부터 뭔가 난해한 게 느껴져... 하는 당신을 위해 책에 대해서 잠깐 얘기하자면...

 

이 책은 절대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게 되는 그런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에 가장 합당한 정의는 아마도 '놀이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여기에는 모두 101가지의 일상에서 별다른 노력없이 즐길 수 있는 철학 놀이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은 '별다른 노력없이'란 부분이다. 정말로 이 책에 실린 놀이들을 하는데는 별로 힘들일 필요가 없다.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라든가 '반짝이는 별 내려다 보기' 혹은 '소리를 줄인 채 TV 화면 보기' 같은 것이 부담을 줄 리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별 것 아닌 것으로만 보이는 이런 경험들이 과연 철학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

 로제 폴 드르와는 정말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별 것 아닌 것으로만 보이는 이러한 101가지의 경험적 놀이를 통해 분명히 철학적 경험으로 인도하고 있으니까.

 

 

 

이를테면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를 보자...

로제 폴 드르와는 101가지 모든 놀이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항상 그 놀이에 걸리는 시간과 필요한 소도구 그리고 그 효과까지 미리 설명해 두고 있는데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에 걸리는 시간과 필요한 소도구 그리고 효과는 그에 따르자면 이렇다.

 

소요시간 20 ~ 30분 / 도구 없음 / 효과 집중력

 

 내가 이 놀이를 택한 건 리뷰를 쓸 때마다 내가 늘 겪었던 경험이기도 해서이다. 나는 리뷰를 쓰기 전에 보통 먼저 머리로 대강의 윤곽을 그리고 나서 실제 글로 옮긴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글의 분명한 세부까지 다듬고 나면 슬며시 꾀가 생긴다. 이 정도로 마무리 해 놓았으면 그냥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되니까 나중에 써도 상관없겠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미루다가 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데 그렇게까지 세부적으로 다듬어 놓았던 내용이 막상 글로 옮기게 되자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걸 많이 경험했다. 그건 결코 내가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듬어 놓은 그 상태 그대로 옮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글로 실체화되려는 순간에는 뭔가가 맞지 않고 앞과 뒤가 틀어지며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블럭처럼 위태위태 하기가 일수였다. 이런 반복된 경험들이 내게 있었음은 로제 폴 드르와의 바로 이 글을 읽고서야 생각났다.

 

 우리가 머릿속에서 현실을 쉽고 분명하게 재현해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은 상당 부분 착각일 수도 있다.(p. 67)

 

 경험상 이 말은 진실이었다. 그저 옮기기만 하면 될 정도로 다듬어 놓았는데도 막상 글로 그대로 옮기기조차 쉽지 않았다.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란 놀이는 바로 이러한 떠올리는 것과 현실로 하는 것과의 괴리라는 재현의 어려움을 체험하는 놀이다. 그러면 이 놀이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철학적 경험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식에 혹은 마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착각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마음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우리가 서슴없이 남들 앞에서 남의 말을 듣기도 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카메라처럼 정확히 현실을 모사하고 또 재현해낼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상상으로 사과 깎아보기'를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로제 폴 드르와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당신이 이 체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현실에 얼마나 불충실한지,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재현하는 데에 얼마나 취약한지에 관한 것이다. 평소에는 "현실? 그쯤이야 뭐..."라고 생각하는, 유난히도 잘난척하는 우리의 정신이 말이다.(p. 7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 사과를 먹기 쉽게 조각내는 것처럼 각자의 마음이 소화하기 쉽게 잘라내고 다듬고 더러는 왜곡시킨 현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보다 온전히 총체적이고 진실된 현실을 담고자 한다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야 한다. 신이 입은 하나요 귀는 두 개를 만드신 것도 마음에 본래적으로 각인된 그러한 한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로제 폴 드르와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는 별 거 없어보이는 그런 경험들을 통해 철학적 경험들로 인도하는 책이다. 정말 놀이처럼 즐기다가 어느 순간 '돈오점수'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상식적인 견지에서 철학은 언제나 일상의 경계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되어왔다. 일상이 멈추는 곳. 철학은 일상에서 뚝 떨어져 나온 공간에서나 가능한 사색적인 활동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로제 폴 드르와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의 일상이야 말로 철학적 사색을 위한 더없이 훌륭한 공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특별한 공간을 선택할 필요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그저 한번쯤 상상해 보는 것, '뜨거운 태양 아래 배깔고 한숨 자기'나 '아무에게나 미소 짓는 것' 혹은 '헌책방에서 탐닉하기'나 '밤거리를 하염없이 돌아다니기'와 같이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고보니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비유는 도라에몽이 가지고 있는 '어디든지 문'일 것 같다.

 

 

 

 아무리 당신이 지루한 일상 속 공간에 있다고 해도 로제 폴 드르와의 이 문을 꺼내고 들어가기만 하는 새로운 경험과 의미로 채워지는 일상을 만나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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